삿 6:1-10
외적의 침입이 잦아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뒷길'로 다니기 시작했다.
삼갈 때에도. 야엘 때에도. 큰 길에는 사람들의 발 길이 끊어지고.
길손들은 뒷 길로 다니기 시작했고.
급기야. 미디안 때에는.
사람들이. 산에 있는 동굴과 요새에 자신들의 도피처를 마련해 살곤 하였다.
왜냐면. 이 놈들이 쥐 잡듯이 이스라엘을 괴롭혔기 때문에.
도저히. 인간답게/정상적으로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그들의 눈을 피해. 숨어 살려고 했지만.
그들은 귀신 같이. 때를 알고.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다.
곡식을 심어놓을 때면. 때를 맞춰 쳐들어 와서 훼방을 놓고.
추수할 때면. 어김없이 쳐들어 와서. 곡식을 약탈해 가고.
먹을 것. 마실 것. 어느 하나도 남겨놓지 않고.
그야말로. 메뚜기처럼. 모든 것을 약탈해 가고. 모든 것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
"주님. 제발 좀 우리를 도와주시라"고.
"주님. 제발 좀 우리를 살려달라"고.
"주님. 제발 좀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보내주시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울부짖고. 또 울부짖은 것이다.
근데.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구원자'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예언자/선지자'를 보내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한 답은 아닐 것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문제를 해결하고.
지금 당장 피할 길을 마련하는 것이 급한 문제인데.
이런 상황에서. '영웅/구원자'가 아니라. '선지자'가 찾아오다니.
그렇다고. 선지자가 좋은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위로의 말을 건내는 것도 아니다.
약속의 말을 건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잘못을 끄집어 내고.
그들의 허물과 치부를. 샅샅이/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응답이. 못내 아쉬웠을 것이다.
아픈 사람 위로하고. 달래주기는 커녕.
아픈 데를 때리고. 또 때리는 하나님의 모습이. 못내 야속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선. 이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를 개선하고. 어떤 수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원했을 것이며.
터진 웅덩이에. 돌을 괴고. 임시방편으로 어떤 문제를 조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근간부터 살피고. 근원적으로 돌이키기를 바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제의 원인/근본을 바르게 파악하지 않고는.
모든 백약이 무효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도. 이와 같다.
우리는. 삶이 힘들어지면.
그때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부르짖는데.
사실. 하나님을 찾게되는 근원적인 마음은.
"하나님. 이 문제 좀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
내 삶에.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는데.
하나님 이 문제를 어떻게 좀 풀어주시고. 건져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때마다 <구원자 하나님>으로 우리 곁을 다가오신다.
우리가 싸놓은 똥을 치우며.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수습하며.
어떻게든. 똥 독이 오르지 않도록.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주님의 품으로 건져 올리신다.
하지만. 주님은. 이것을 넘어.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원하신다.
그것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 무엇이. 어떻게 잘못 되었는지"
근원을 살피고. 근간을 돌아보길 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구원자> 하나님으로 오시는 것도 맞지만.
동시에. <선지자> 하나님으로. 또 <예언자> 하나님으로.
우리를 찾아오기도 하신다.
왜냐면. 그래야 우리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우리의 인생을 보시며.
때로는. '수리/보수(repair)' 하는 정도로. 우리 삶에 개입하기도 하시지만.
때로는. '리모델링(remodeling)' 하는 정도로. 우리 삶에 말씀하기도 하신다.
하지만. 어쩔 때는. 이도 저도 정말 아닐 때는.
완전히. '재건축(reconstruction)' 할 정도로. 우리 삶에 말씀하기도 하신다.
왜냐면. 이래선 도무지 살 수 없으니까.
수리/보수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 될 것도 아니고.
리모델링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 될 것도 아니고.
이제 이 집은. 더 이상 아무런 생명력이 없다고 생각할 때는.
오래된 집을 허물고.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할 때가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를 돌아본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자' 하나님일까,
아니면. '선지자/예언자' 하나님일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지/보수/수리'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전면 리모델링'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전의 집을 완전히 허물고. '새로운 집'을 짓는 것일까.
Vi-Sion T.F.T를 시작하며. 참 많은 물음과 생각이 오간다.
그리고. 무엇이 주님의 뜻인지 몰라. 참 어렵고 쉽지 않다.
하지만. 주님 앞에 간절히 바라는 한 가지는.
주께서 우리 가운데. '말씀' 해주시고.
우리가 주님의 그 음성을. '겸손히 듣기' 원한다는 것이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걸러내고 싶은 말은 걸러내는.
그런 어리석은과. 그런 우를 범하지 않고.
오직 우리가 주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반응하고. 겸손히 돌이키는.
그런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시간. 주님 앞에.
오늘 나의 삶과. 우리 공동체를 겸손히 올려드리길 소원한다.
주께서. 우리를 '주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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