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3(토) 막 9:38-50
막 9:38-50
제자들이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 다투었을 때.
예수님은.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한다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요한은 이 말씀을.
자기들 안에서의 서열 문제로.
국한하였던 것 같다.
"예. 주님!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길래. 그 사람들은 우리가 막았습니다. 어디 우리 허락도 받지 않고. 입을 함부로 놀릴까요? 깜도 안 되는 것들이..."
그러자.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냐!"
"그들도 우리랑 한 편인데. 도와 주지는 못할 망정. 왜 마음을 실족케하냐..."
요한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주장하며.
경계를 나누고. 우열을 가릴 때.
예수님은 모든 경계를 허물고.
한 가족이 되기를 바라신다.
실로 그렇지 않은가?
그들이 주님의 제자가 된 것은.
그들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었다.
오직 주님의 선택적인 은혜 때문이었다.
제자들이. 그들과 비교해서 나은 것이 무엇인가?
오랫동안 제자 훈련을 받았던 그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해. 우물쭈물 하고 있을 때(막 9:28)
배우지도 못했고.
제대로 된 훈련을 배우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귀신을 쫓아냈다.
단지 흉내내기가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진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잠히 생각해 보니.
이름도 알 수 없는 그들의 믿음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오늘날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도 이와 같다.
비록. "무명의 그리스도인"이지만.
하나님만을 찾고 의뢰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한국 교회를 지탱하고 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교회를 섬기며. 주님을 찾는 자들이.
우리 공동체의 숨은 힘이다.
나는 요한과 같은가?
아니면. 무명의 그리스도인과 같은가?
주일을 앞두고.
잠잠히 나를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