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17(수) 요일 2:1-6
요일 2:1-6
요한은 우리에게.
"나의 자녀들아"라고 부른다.
진실한 표현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까닭은.
너희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단지. 율법의 명령/주문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기억하고.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돕기 위함이다.
결국에. 사랑하는 자녀들을 잃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의 참 평안과 복을 만끽하고.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과 같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왜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면서도.
'죄'를 지을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왜 우리는 그게 쉽지 않을까?
"죄의 본성"에 담긴 3가지 속성을 생각해보니.
이런 듯 하다.
1) 잠시 : 잠시라도. 만족을 누리고. 고통을 피하고자 우리는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택한다. 잠깐이라 하더라도 그게 어디인가? Input 대비 Output이 분명하지 않은가!
2) 즉시 : 지금 당장의 만족과 기쁨을 위해.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택한다. 기다림은 내게 너무 힘든 것이며, 하나님은 즉시 나를 책망하지 않을 것이며 그 분은 나를 기다리라는 확신(?)이 자리하고 있다.
3) 혹시 : 혹시라도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조바심과,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함이 우리를 재촉한다.
회개를 하지 않는 까닭도 이와 유사한 것 같다.
하나님 앞에 정직히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1) "잠시라도" 견디기가 힘들고.
2) "즉시" 보다는, 미루고 싶고.
3) "혹시"라도 이런 씨름을 하지 않고. 하나님이 "퉁" 쳐주시겠지라는. 일말의 요행심리 때문이다.
나는 어떠한가?
나 또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일들이 재밌고.
때때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하나님과의 사귐보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바랄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오는. 영원한 기쁨.
그 영원한 생명을. 알고. 누리는.
내가 되기를 기도한다.
feat. 이것이 영원한 삶 (https://youtu.be/6jZzT6fJ5w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