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2(수) 행 9:32-43
행 9:32-43
베틀로 옷감을 짜기 위해선. "씨줄과 날줄"이 필요하다.
씨줄이라 함은. 가로로 놓은 실이며.
날줄이라 함은. 세로로 놓은 실인데.
둘 중 하나면 있으면. 그 옷은 쉽게 뜯어지기 마련이다.
씨줄과 날줄이 얽히고 설킬때. 그제서야 튼튼한 옷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도 동일하다.
우리가 아무리 서로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통치가 없다면.
우리의 모임은. 인간적인 동호회 수준에 그치게 될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을 구하면서.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고백은. 요란한 빈 수레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기에. 온전한 주의 제자로 빚어지기 위해선.
씨줄과 날줄의 은혜가 함께 필요하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수많은 줄이. 서로 얽히고 설켜 있는 듯 하다.
실제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사방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한 곳에 가만히 있어도 될텐데. 그는 왜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을까?
어떻게든 예수와 사람들을 엮기 위해서이다.
이 과정에서.
'애니아'와 '다비다(도르가)'를 돕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다비다(도르가) 사건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착한 일과 구제 사업에 열심이었던 사람이었는데.
그가 병들어 죽자. 많은 사람이 슬퍼하였다.
그리고. 많은 과부들이. 베드로 곁에 서서 이렇게 울며 말한다.
"제발. 이 사람을 살려주십시오.
도르가가 우리와 함께 지낼 때 만들어 준.
속옷과 겉옷들이 여기 있습니다.
이 사람이 우리에게 남긴 흔적과 사랑이 얼마나 큰 데.
도르가 없이는. 우리는 못 살겠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과부들의 탄식과 눈물이 얼마나 컸을까.
그 모습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저려온다.
그러자. 베드로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주님. 이 여인들의 탄성과 아픔을 들어주십시오.
이 여인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이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결국. 다비다는 주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똘똘 뭉쳐있는.
하나의 공동체였던 것이다.
말씀을 보면서. 나 또한 소망 가운데 기도하게 된다.
1) 나도. 베드로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라면.
또 누군가의 필요를 채우고. 섬기기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지체않고 갈 준비가 되어있을까?
2) 나의 삶도. 도르가처럼.
누군가에게 의미있고. 아름다운 삶으로 기억되어 있을까?
나의 삶을 돌아볼 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3)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못 잡아 먹어서 안달난 공동체가 아니라.ㅎ
정말 서로를. 마음 다해 사랑하고 아끼는 공동체일까?
4) 우리는. 주님의 은혜와 긍휼 아래에서.
주님의 사랑으로 물들고. 깊어져가는 공동체일까?
무수히 많은 질문과 묵상들이. 머릿속을 오가며.
이 수많은 바람들이. 기도로 드려지게 된다.
바라기는. 진정 우리가 그런 주님의 백성되길 소망한다.
하나님의 애끓는 사랑과.
형제자매를 향한. 진심어린 사랑의 나눔이.
오늘 우리 삶에. 우리 공동체에.
또 이 땅에 온전히 흘러넘치길. 기도하며. 주님 앞에 무릎 꿇는다.
이 기도를. 멈출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