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7(금) 행 19:11-22
행 19:11-22
하나님은 바울의 손을 빌어서. 기적을 행하셨다.
사람들은. 기적 자체를 보고. 신기해 하지만.
하나님에겐. 기적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
도리어. 귀신을 내어쫓고. 사람을 살리며.
이땅에 참된 자유와 평화가 임하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 하나님에겐 그것이 중요할 뿐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다급한 마음, 절박한 마음마저도.
하나님은 기꺼이 받으셨다.
그렇지 않은가. 바울의 손수건. 바울의 앞치마가. 그게 뭐란 말인가.
하지만. 그것들을 아픈 사람 위에 얹기만 해도.
사람이 낫게 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곤 했다.
왜냐면. 하나님이 기적이란 방식을 통해서. 그런 방식을 통해서라도.
사람들을 낫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개똥만큼도 없고.
오직. 돈벌이에만 관심인 사람이 있다.
마술사 시몬이 대표적인 사람이었으며(행 8장).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스게아의 7아들'도 똑같은 부류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도 못하지만.
'귀신 축출가 행세를 하고 떠돌아 다니면서'.
육체적/정신적 질병으로 고통하는 사람과 그의 가족들에게.
이중으로 고통을 주었다.
돈을 뜯어내고. 되도 않는 이상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괴롭히고.
그야말로 '등골 브레이커'다.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을까.
결국. 그들의 나중은 이전보다 더 형편없어 질 따름이었다.
'등골 브레이커'는. 그 책임을 사람들에게 돌렸다.
믿음이 부족하다고. 돈을 요구하며.
더 괴상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괴롭혔을테니 말이다.
이에. 귀신들이. 웃으며 조롱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냐..ㅋㅋㅋ"
참. 슬프고 가슴 아픈 현실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것 같아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
눈먼 돈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
사람들을 유린하고. 이용하며. 악을 일삼는 사람.
이것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묵인하고 침묵하는 사람.
잘못된 관행과 부정이 만연하기에. 나 하나쯤이야 하면서 숟가락 얹는 사람.
예수의 이름마저도. 내 삶과 성공과 안정을 위해서라면.
악세사리처럼 걸친다고.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결국. 사도 바울이. 마지막 때에.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다고 경고하는 것처럼.
오늘날 과학기술은 하이테크놀러지. 점점 더 발달해 가는데.
우리의 인격은 그것을 따라 가지 못하고.
다만. 못된 꼼수만 더해 가는 것은 아닐까. 깊이 반성해 본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스게아의 7아들. 그들은 유대인 가문. 그것도 제사장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보증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가. 우리를 증명할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스게아의 7아들은. 가나안 7족속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오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진정 주님의 기쁨이 되며.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알아가는 삶이 되길 소망한다.
멀리서 그 사람을 찾을 필요가 없다.
오늘. 여기. 바로 내가.
주님의 기쁨이 되는. 참된 예배자 되길 소망하며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