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3(목) 행 26:12-23
행 26:12-23
어제는. 조금 본질적인 고민을 해 보았다.
"나는. 캠퍼스 사역을 '왜' 하고 있을까?"
"후원자들이 나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춘 것 같고.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는데.
나는 잘 하고 있는걸까?"
조금은 센치하고. 상념에 젖어 있는 것 같지만.
요즘을 살아가는 나의 실제적인 고민이다.
지난 2달 동안. 열심히 발을 굴려 보았지만. 때로는 헛바퀴 도는 것 같고.
앞으로의 일 또한 예견 할 수 없으니. 답답한 마음에 힘겹기도 하다.
그래서. 어제는 동료 간사들에게.
'슬램덩크'라는 만화의 한 장면을 패러디해서. 이런 글을 보냈다.
"예수님. 사역을 하고 싶어요..."
이것은 '정대만'이라는 극중 인물이. 안 선생님을 찾아가서 한 말인데.
그는. "농구를 미치도록" 사랑했던. 남자 중의 남자였다.
하지만. 부상 때문에. 더 이상 농구를 할 수 없게 되자.
"농구를 미치도록" 증오하기 시작했다.
농구부를 때려 부수고. 없애려 하였다.
자기가 농구를 할 수 없게 된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농구를 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미치도록 농구를" 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깽판을 부리다가.
안 선생님께.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표한다.
"선생님. 농구를 하고 싶어요..."
근데. 그게 요즘 내 마음이다.
"사역을 하고 싶어요..."
학생들을 사랑해서. 이 일이 너무 좋아서. 사역을 시작했다.
하지만. 냉담한 학생들의 반응에.
잠들어 있는 것 같은 캠퍼스 현실에 마음이 주저앉는다.
그래서. 내가 너무 사랑했던. 이 일을 멈추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이 마음을 받아 달라고...' 더 이상 구애하고 싶지 않고.
이제 나도. 싫은 얘기보다는 좋은 얘기만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강한 부정'의 반대말은 '강한 긍정'이라는 말처럼.
나의 본심은. 정말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고.
정말 미치도록. 이 일에 '올인(All in)' - 모든 것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막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고 속이 상한다.
그래서. 어제는 뚱딴지 같은 생각을 해 보았다.
"학생들에게. 학사들에게. 재신임 투표를 받아볼까??"
후원하는 학사들에게. 이렇게 물어보는거다.
"지금의 상황 속에서 무엇을 바라고 기대하시나요?
우리의 사역에 어떤 마음으로. 후원을 하고 계신가요?"
그리고.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여러분에게. 제가 필요한가요?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나요?"
어찌 보면. 유치하고 이처럼 우스운 일이 없을테다.^^;
하지만. 인간적으론 솔직히 그런 마음이 든다.
그래야. 내 마음이 조금 편해질 것 같고.
가시방석 같은 지금의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고민을 덜게 될테니 말이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 아침. 말씀의 자리에 앉았는데.
사도의 고백. 이 부르심이.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 아닐까 싶다.
1) 자! 일어나서. 네 발을 딛고 서라.
내가 너를. 이 일의 일꾼으로 삼고. 증인이 되게 하였노라
2)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노니. 그들의 눈을 뜨게 하여라.
3) 그들의 눈을 뜨게 하여서. 그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오게 하며.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권세로 돌아오게 하여라.
4) 그들이 죄사함을 받아서. 거룩하게 하며.
5) 나의 유업/기업을 잇도록 하여라
사도는 그 부르심을 거스르지 않고. 거역하지 않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오늘. 아그립바 왕 앞에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 날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여기 서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도우신 것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나를 도우실 것을 믿습니다.
그분은 나의 선한 목자. 내 아버지 되십니다."
사도의 이 고백이. 어찌나 절실히 내 마음에 와 닿는지..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처럼 느껴진다.
물론. 하루 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또 다시 이 마음이 흐려지고. 낙심하기도 할 터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진리는 변함이 없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고. 주님이 이 일에 우리를 택하셨다.
주님이 우리를. 당신의 종으로. 당신의 일꾼으로.
당신의 증인으로. 우리를 세우셨다."
그렇기에...
지치고 힘들 때마다. 주님 앞에 나아와 이 부르심을 재확인하기 원한다.
그리스도께서 매일 아침. 당신의 부르심을 재천명 하였듯이.
오늘 우리도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
날마다 죽어야. 날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다(고전 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