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시편

2020.06.08(월) 시 150편

The Sabbath 2020. 6. 8. 08:17

시 150편

시인은. 목소리 높여. 주님을 찬양한다.
그가. "놀라운/위대한 일"을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는. "놀라우신/위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묻는다.
"때때로. 주님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나혼자 내버려진 것 같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인생 속에서도.
그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은. 미련한 것 아닌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암시/자기체면을 거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의 믿음이 '요상한' 것으로 보일테다.
어리석고, 불쌍하고, 미련하게 보일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님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은.
"주님 밖에는" 우리의 도움/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리얼하게 말하자면.
우리 인생에.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붙잡을 것 하나 없는데..
우리가 그 주님 말고.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겠는가.
주님 말고는 '믿을 구석'이 없는데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속 시원하게. 우리 마음을 내어놓고. 울 수 있는 분이 계시니 말이다.
언제든. 다시 돌아가서. 그분의 품에 안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아. 이렇게 고백한다.
"할렐루야. 주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
주님이 위대한 일을 하셨으니.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은 더 없이 위대하시니.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호흡이 있는 자마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할렐루야."

오늘 우리의 삶도 그렇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어서. 주님께 찬양/감사하는 것은. 물론이며.
우리 인생에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은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한 일이다.
"어렵고. 힘든 순간"에. 주님께 도움을 청하며. 주님께 비빌 수 있어서 감사하며.
그 주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아버지 되어 주셔서 감사하다.

그래서일까? 이적의 '다행이다'라는 노랫말이.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 노래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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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 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 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는 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 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 때문이란 걸.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나눠 먹을 밥을 지을 수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저린 손을 잡아줄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되지 않는 위로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