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1(목) 느 10:1-31
느 10:1-31
집회를 마치며. 그들은. 언약 갱신을 체결하였다.
율법의 말씀을 따르기로. 작정한 것이다.
서약의 첫 내용은 이것이다.
"하나. 우리는. 이방사람과의 결혼을 금지하겠습니다.
하나. 우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겠습니다.
하나. 우리는. 안식년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겠습니다."
그들은. 서약서에 담은 내용을. 디테일하게 조율하였고. 이 글을 함께 읽었다.
그리고. 이 의식에 참여할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직접 기록하도록 하였다.
다른 사람에게 묻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 일에. 직접. 주체자로 참여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자. 제사장과 레위 사람. 백성의 지도자들은 물론이며.
성전 문지기와 노래하는 사람. 성전 막일꾼까지. 이 일에 참여하였다.
그들은. 언약 백성의 일원으로서. 이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지기로. 결단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엄숙하고. 진중한 마음으로. 이 의식에 참여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진실하고. 의롭게 살기로. 하나님 앞에 결단한 것이다.
말씀을 읽으며. 오늘 우리 모습을 되돌아 본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지나치게 형식적인 모임을 갖고 있거나.
너무 가볍고. 어설픈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면. 이런 것이다.
우리는. 복음 전도를 너무 중요한 사명/과제로 여기다 보니.
복음을 지나치게 단순화 시켜버렸다.
쉽게 말해서. 복음을 '싸구려'처럼. 변질시켜 버린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죽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마음에 받아들이면. 당신은 구원을 얻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습니까?"
그리고. 마음 속으로. 계속 종용한다.
"믿어. 제발 믿어줘. 복음은 어려운 게 아니야. 정말 쉬워.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기만 하면 돼.
그러면. '영생/구원'을 얻을 수 있어. 얼마나 쉽니."
전도자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복음에 다른 것을 더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왜 우리가. 구걸하는 것처럼.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당당하고. 떳떳하게 복음을 전할 수 없는가?'
'왜 우리는. 자신있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외판원처럼. 복음을 전하기(팔기) 위해. 안달이란 말인가?'
조금은. 씁씁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세례식을 진행할 때도. 비슷한 마음이다.
세례식은. 개인의 신앙 고백을 확인하고.
예수의 제자로 살기로. 확인/결단하는 시간이다.
그런 측면에서. 복음을 듣고.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 발을 디디는 첫 과정이라면.
세례식은. 우리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이는. 엄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세례 교육/문답은. 요식행위로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일학교 세례 문답은. 교역자 혼자 열을 내다가 마치는 경우도 많고.
참여자는. 억지로/겨우겨우.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개인의 신앙 고백은 확인할 길이 없고. 기계적인 물음과 답변만 오간다.
일정한 나이가 차면. 학습/입교/세례를 받고.
정해진 횟수를 채우면. 세례식을 받을 수 있으니.
이게 무슨 세례식이란 말인가...
그렇기에. 세례 문답을 할 때면. 현타가 올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잔소리를 늘어놓고 싶은 마음도. 한두번이 아니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ㅠㅠ
그렇기에. 우리는.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제 아무리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 하더라도.
내용은. 그릇에 담는 것이기에. 그릇이 없다면. 내용을 담을 수가 없다.
'형식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나 조차도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오늘 우리의 모습을. 한번쯤은 진중하게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우리의 신앙고백에. 진실함이 더해지길 기도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에게 어떤 분입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기 원하십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어떤 삶을 살겠습니까?"
진중한 물음 앞에. 진실한 답변을 듣기를 기도한다.
청산유수처럼. 많은 말을 쏟아내지 않아도 괜찮다.
파르르 입술을 떨면서. 한마디 겨우 답한다 하더라도 괜찮다.
오히려 그게 더 나을수도 있다.
가벼운 백마디/천마디의 말보다. 진중한 한마디가. 더 무거운 법이니까.
바라기는. 오늘 우리의 삶도 그러하길 기도한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오늘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나는. 매일매일. 거듭나며.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는가?"
주님이 우리에게. 진솔히 물으신다.
이제는 우리가. 진솔하게 답변할 차례이다.
당신의 입을 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