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9(월) 시 18:1-19
시 18:1-19
다윗의 인생을. 한마디로 논하자면. ‘부르짖는 인생’이었다.
골리앗을 이기고. 전쟁의 영웅이 된 것도 한순간이었을 뿐.
그는 오랜 세월. 도망자 신세로 살았었다.
다윗의 목숨을 노린 것은 사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 미친 척하며. 목숨을 구걸하였고.
훗날 자신의 아들이었던. 압살롬의 반역/쿠데타를 경험하기도 하였다.
왕으로서 많은 사람의 주목/이목을 받았던 만큼.
또 많은 사람의 반대와 저항을 받았던 것이다.
그만큼. 다윗의 인생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었고.
찬란한 영광이 있었던 만큼. 깊은 수렁과 환난 또한 있었다.
그렇기에 다윗은. 부르짖고. 부르짖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다윗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똑똑히 마주할 수 있었다.
그의 부르짖음을. 우리 주님이 외면하지 않으시고. 들으셨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도 그러하다.
“다윗은. 고통 가운데. 주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려 달라고. 부르짖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그의 기도/간구를 들으셨다.
주님께. 부르짖은. 다윗의 부르짖음이. 주님의 귀에 다다랐기 때문이다(6절)”
그렇기에 다윗은. 주님께 계속해서 부르짖는다.
주님께서. 그를 원수들의 손에서부터 건져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3절).
다윗의 인생을 바라보며. 우리의 삶도 그러하길 기도한다.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아가는가?
우리는 ‘부르짖는’ 인생을 살아가는가?
우리는 누구에게 부르짖는가?
우리는 우리의 구원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가?
아니면. 재력(돈)과 권력(힘)을 가진 사람을 의지하며. 그에게 잘 보이려 하는가?
우리는 정말.
우리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그에게 부르짖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기’보다. ‘원망하고, 체념하기’에 빠른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의 무릎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음으로. 단단해지기보다는.
굳은살 하나 없이. 말랑말랑해진 것은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나의 믿음이. 죽은 모형이 되어갈까 두렵다.
나는 오늘.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나는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
그렇기에. 이 아침. 말씀을 묵상하며. 회당장 야이로의 모습이 계속 오버랩된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간절함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만진. 혈루병 여인과.
‘딸이 죽었으니. 더 이상 주님을 괴롭히지 말라고’ 체념하고 단념하던. 하인들.
그렇게. 회당장 야이로에겐. 2가지의 선택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회당장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였다.
눈앞에 주어진 현실에. 좌절하고 절망하였던. 하인들처럼 살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그 손을 내밀었던. 혈루병 여인처럼 살기를 바랐던 것이다.
나는 오늘.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나는 오늘.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
우리에게 두 가지 길이 놓여 있다.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바라기는. 우리가. 의지적으로. 마음을 다해. 주님을 찾고 부르짖는 자 되길 소망한다.
그래야 우리 마음이 주님께 힘을 얻고. 당신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가 그러하기를.
우리 인생이. ‘부르짖는 인생’ 되기를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주님께 의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