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6(화) 요 6:22-40
요 6:22-40
디베랴 사람들이 배 몇 척을 끌고. 예수를 찾아왔다.
'예수에 관한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엔 예수가 없었다. 제자들도 없었다.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하여 그들은 배를 나누어. 열심히 예수를 찾았다.
그런 측면에서.
그들의 '열심'은 본받을 만하며.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들을 칭찬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들의 속셈/본심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언제부터 나한테 관심이 있었냐.
너희가 나를 찾는 까닭은. '나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 손에서 나오는 콩고물'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냐.
하지만. 내 너희에게 진심으로 말하노니.
너희는. 결국에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원히 변함이 없는. 생명의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
이것이. 참으로 복되고. 기쁜 일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어떤 생각이 드는가?
'분명' 맞는 말을 하셨는데.
왜 이렇게 '듣기 불편하고. 거북하게' 느껴질까?
'그렇게 애써 당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는 것이. 그렇게 힘든걸까?'
예수님의 까칠하고. 시크한 모습이. 못내 아쉽고. 속상하게 느껴진다.
우리 주님이. 이렇게 야박한 분이셨던가…
그렇게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오병이어 사건에 등장하는 '무리들'과.
오늘 본문에 나오는 '무리들'의 모습이. 비교되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졌다.
"오병이어 사건 때는.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에게 모여드는 것을 보시며.
분명히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몰려드는 사람들을 향해.
왜 이렇게 시큰둥 하며. 따박따박 말씀하시는 걸까?"
말씀을 묵상하며.
나는 그 차이가. '컨텍스트'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였다.
실제로 오늘 본문 23절을 보면.
'디베랴에서 온 배 몇 척'이란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나는 이것이 그들의 신분/위치를 상징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오늘날 '배 한 척'을 갖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배 한 척'을 갖기 위해선. 무수히 많은 돈이 들어가고.
그것은 그들의 신분과 위치. 재력과 힘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배를 갖고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힘/재력을 갖고 있는 표시였고.
그래서.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은. 늘 자신의 두발을 의지해 뛰어다녔다.
오병이어 때도 그랬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외딴 곳으로 떠나시자.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하여. 그곳으로 함께 달려가서. 그들보다 먼저 그 곳에 이르렀다(막 6:33)'
왜. 애써. 달음박질해서 예수를 따라갈까?
'배가 없으니까'
'배가 있다면' 예수님의 뒤를 손쉽게 따라갈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들은. 그럴 만한 형편/처지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뛰어갈 뿐이다.
'먼 발치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며. 애써 수고하며. 주님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그들의 형편/처지를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아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기 시작했다(막 6:34)'.
말씀으로 그들을 먹이며.
보리떡과 물고기로. 그들을 풍족히 먹이셨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람들은.
추정하건대. 그렇게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왜? 배가 있으니까.
그것도 '배 몇 척을 들고'.
예수의 행적을 찾기 위해. '여러 배에 사람들이 나눠탔다(24절)'.
그런 측면에서. 그들은 차이가 났다.
앞서 오병이어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 없으면. 못 살 사람들'인데 비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 없어도. 아무 문제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주님은. 그들을 다르게 대하셨다.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예수님만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에겐'
우리 주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그들을 먹이고 입히시지만.
'예수님을. 우리 인생에 하나의 악세사리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우리 주님께서 그들을 야박하게 몰아치시며. 팩폭을 날리시는 것이다.
"니들 그렇게 인생 살지 말아라.
나를 이용하고. 나를 통해 복을 얻고. 나를 통해 뭐라도 얻을 심산으로 나를 따라 다니지 말고.
오직 나를 갈망하며. 오직 나를 기다리며. 오직 나를 찾고. 오직 나를 만나길 소원한다.
나는 니들 인생의 수단/도구가 아니다.
나는 니들 인생의 목적/소망이다."고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도 그러하길 소원한다.
오늘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분은 내 삶의 목적인가. 아니면 내 삶의 수단/도구인가?"
"나는 우리 주님이 없으면 못 산다는 절박함으로 당신을 따르는가.
아니면. 우리 주님을 내 삶의 악세라리/옵션사항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가?"
"우리 주님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령한 빵/영원한 생명이신가,
아니면. 그분은 한번 먹고 없어질. 일회용/소모성 간식인가?"
바라기는.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
'내 삶의 옵션. 하나의 수단.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정말 예수 그리스도 없으면. 죽어 못 산다'는 간절한 기대와 갈망으로 서길 소원한다.
그렇기에. 이 시간. 나의 온 마음을 들여 주님께 고백한다.
"주님. 당신은. 내 삶의 전부입니다.
주님. 당신 없이는. 내가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내 삶의 목적이요. 이유이시니.
주님 오셔서 나를 다스리고. 나를 가르치시며. 나를 먹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오늘 우리의 진솔한 기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