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bbath 2021. 4. 15. 09:30

약 1:19-27

해를 거듭 할수록.
'진짜 신앙'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단지.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말씀을 읽으며.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교회 다니는 것이.
신앙 생활의 전부일까?

물론.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측면에서.
너무 중요한 요소이다.
100번, 1000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성도는. '거룩한 삶'으로 부름 받았으며.
이것은. 주님의 은혜와 은총 없이는. 결코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거룩은. 단지 신앙적인/종교적인 용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주께서.
'아벨과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과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까닭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형식적인 예배, 종교적인 예배를.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말라기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 가운데. 누구라도. 성전 문을 닫아 걸어주면 좋겠다.
너희들이 내 제단에 헛된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면 좋겠다.
너희들이 으레히 하는 행동이 너무 싫고. 구역질이 나기 때문이다.

사랑 없는 예배. 행함 없는 예배. 진정성 없는 예배를 드리면서.
어찌 나의 이름을 부르며. 어찌 나를 찾고 있느냐.
그것은. 내 이름을 욕되게 할 뿐이다. 나를 무시하는 행위이다.

그러니. 진정한 예배자로 돌아오길 바란다.
나를 공경하며. 나를 존중하며. 종교적인/형식적인 신앙인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의 사랑과 향기가 드러나는. 그런 예배자가 되길 바란다."


그런 측면에서.
야고보 사도가. 오늘 우리에게 말하는 바도 동일하다.

"여러분.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얼굴을 거울 속으로 들여다 보기만 하는 사람과 같으니.
부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그저 세상을 떠나서. 세상과 아무런 상관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세속 가운데 자기를 지켜 물들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환난 가운데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말과 혀를 조심하며. 화를 더디 내며.
마음의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버리고.
오직 온유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마음으로. 이 땅을 다스리고. 섬기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나의 삶과 자세를 돌아본다.

"나는. 말씀을 듣고 배움으로.
나를 돌아보고. 나를 성찰하며. 나를 살피는 일에 쓰고 있는가?
아니면. 말씀의 검으로.
다른 사람을 제단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있는가?

나는.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엎드리고. 지체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는가.
아니면. 완악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판단하는 죄를 범하고 있는가.

오늘 우리 곁에. 우리가 살피고 돌봐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그들을 어떻게 돕고 섬기며.
나를 자랑하지 않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길 수 있을까."


많은 질문이. 내 마음에 부딪힌다.
허나. 하나같이 나를 누르고. 무겁게 하는 짐은 아닌 것 같다.

도리어.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것처럼.
'자유를 주는 율법'인 것 같다(25절).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은.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가져다 주며.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괜한 부담과 죄책감만 더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주님도 이렇게 말씀하신 게 아닐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와서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마음에 쉼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마 11:29-30)"


바라기는. 오늘 하루.
우리에게 주님의 그런 기쁨/자유가 임하길 소원한다.

우리는 천국 문을 닫고. 그 곁을 맴돌 것이 아니라.
천국 문을 열고. 그 주님께로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마시며. 주님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이것이 우리의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