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열왕기상

2021.09.04(토) 왕상 2:13-25

The Sabbath 2021. 9. 4. 10:48

왕상 2:13-25

'이건. 꿈이 큰 건가. 아니면 과대망상증 환자인가'
아도니야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그는. 자기 스스로 왕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스스로 왕 노릇하며 살아왔다.
군사를 거느리고. 연회를 베풀며.
세상 모든 일이 자기 중심적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솔로몬이 왕이 된 다음.
이 모든 일이.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쯤 되면. 현실을 깨닫고. 정신을 차릴 법도 한데.
아도니야는 여전히. 정신을 못차린다.


오늘 본문이 그렇다.
그는 다윗이 죽고 난 다음. 밧세바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임금 자리는 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제가 임금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고.
그게 당연한 순리였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제 자리를 가로챘군요.
뭐. 주님의 뜻이 있어서. 그렇겠죠. 그렇다고 칩시다.

다만. 제가 청할 것이 하나 있으니.
아버지 다윗의 마지막 첩이었던. 수넴 여자 아비삭을 저에게 주십시오.
하나를 얻었으면. 하나는 주셔야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되었으니. 저에게도 하나는 주셔야죠.
이 일에 어머니께서 개입하고 간섭하셨으니.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표면적으로는. 공손하게 청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협박과 마찬가지다.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당신을 죽여버리겠다는 말처럼 들리고.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당신 자식 솔로몬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이에 밧세바는 어쩔 수 없이. 솔로몬에게 그 이야기를 전한다.
적당히. 아무 일 없이. 타협하고 넘어가자는 것이다.


하지만. 솔로몬은. 이 일을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
아도니야의 행동이 너무 괘씸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처음 왕이 되었을 때는.
제단 뿔을 붙잡고. '한번만 살려달라'고. 그렇게 목숨을 구걸하더니.
아버지 다윗이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 다시 이빨/야망을 드러내는. 그의 모습이. 너무 괘씸할 따름이다.

한번 두번 그의 청을 들어주다 보면.
그는 분명 선을 넘는 요구를 할 것이며.
호시탐탐 왕의 자리를 노리고.
어떻게든 자신의 세를 불려. 반역할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솔로몬은. 단칼에 그의 청을 거절한다.
그리고 그날로. 아도니야는 목숨을 잃게 된다.
주제를 모르고. 분수를 모르고. 이리저리 날뛰던.
한 미치광이의 결말이. 파국으로 그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갖게 된다.

먼저는. 우리 안에.
아도니야와 같은. 어리석음/당돌함은 없는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며.
두번째는. 솔로몬과 같은. 단호함/결단이 있는지.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아도니야 입장에선. 가만히만 있었다면 아무런 문제/아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은혜를 입었으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조용히 살 것이지.
왜 죽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불나방처럼 불길 속으로 뛰어든단 말인가.

그런데. 그게 오늘 우리의 모습이다.
도박판에서 판돈을 날리고. 개평이라도 얻었으면.
이제 그길로 도박판을 떠나면 좋으련만.
왜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곳에 남아있을까.

왜.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착각하며.
왜. 이번에는 꼭 따고 말 것이라고. 확신하며.
왜. 이번에는. 저기 있는 돈이. 다 내꺼라며. 과대망상 속에 사로잡혀 있을까.

밖에서 보면. 그의 어리석음이. 다 눈에 보이는데.
정작 자기 자신만 깨닫지 못하고. 오늘을 살아간다.

결국. 마지막 기회마저 잃어버리고 나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게 되는데.
이를 어쩐단 말인가. 이미 버스가 떠난 다음이니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아도니야의 미련함/어리숙함. 그의 죄성을 벗어버리고.
솔로몬과 같은. 단호함/분명함을 가져야 한다.

죄와 타협하지 아니하며.
죄에 물들지 아니하며.
바르고. 분명하며. 책임있게 살아가는 삶.
오늘 우리에게. 솔로몬과 같은 그런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일까.
오늘 따라. 아도니야의 죽음이 더 허망하게 보인다.
왜 그는. 이렇게 어리석고. 미련하게 자신의 삶을 마감하였을까…


그렇기에. 이 아침.
아도니야의 죽음을 반면 교사 삼아. 하루를 시작한다.

바라기는. 오늘 우리의 삶이.
아도니야처럼. 객기. 개죽음이 되지 않게 하시며.
오직 주님 보시기에.
솔로몬처럼. 바르고 진실하고. 정직한 삶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모두에게 그런 은혜 주시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