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창세기

2022.01.21(금) 창 8:13-22

The Sabbath 2022. 1. 21. 08:37

창 8:13-22

오늘 본문을 보면.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내가 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21-22절)"

말씀을 읽으며. 예전에 개그콘서트에서 봤던 대사가 생각했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그걸 아는 하나님이 그래?"

사실 그렇지 않은가.
아담의 범죄 이후. 인류가 타락하고 악해진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하나님이 제일 잘 아시지 않는가.

그런데. 그랬던 하나님이. 이제서야.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하시니.
당신의 말씀이. 조금은 어불성설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진작" 그렇게 하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작에 당신의 자비와 인애가 있었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떼죽음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진작에 당신이 당신의 백성들을. 애처롭게 여기고 긍휼히 여겼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하는. 때늦은 후회와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렇게 돌변한 이유가 무엇일까?

한 때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
'내가 쓸어버리겠다. 내가 다 없애버릴 거야'라고 하시며.
엄중한 심판을 말씀하시던 분이.

오늘은 갑자기.
"사람은 원래 그래.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니.
내가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해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렇게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20절과 21절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노아는. 주님 앞에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집짐승과 정결한 새들 가운데서 제물을 골라서.
제단 위에 번제물로 바쳤다.
주님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서. 마음 속으로 다짐하셨다."

주님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서…
어쩌면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 돌변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실제로 나는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다음.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노아가. 이런 기도를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나님. 지난 세월동안 나를 지켜주고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께서 당신의 계획을 나에게 보이시고.
나와 우리 가족을 구원하시고.
나를 통해 다시금 당신의 구원 역사를 이끌어 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주님. 앞으로는 이렇게 하지 마입시다.
주님. 너무 하시지 않습니까.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악한 생각을 갖고.
악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을. 주님 잘 아시지 않으십니까.

근데 언제까지. 이들을 심판하고 책망하실 생각입니까.
저도 그렇고. 제 자식들도 그렇고. 제 손자들도 그렇고.
어느 누구도 죄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두렵고 떨립니다.
주께서 당신의 공의와 정의를 보여주심으로써.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을 두려워하고. 경외하기를 바라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아벨의 피가. 땅에서 울부짖었던 것처럼.
오늘 사람들의 피가. 땅에서 울부짖는 것처럼 들리고.
광활한 이 땅에. 적막한 이 땅에.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러니 주님. 앞으로는 이렇게 하지 마입시다.
주님. 사람들의 생각이 악하다고 하여. 그들을 심판하고 정죄하지 마시고.
주여. 이 땅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주여 당신의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것이 내가 바라는. 나의 기도/나의 소원입니다."


마치.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밤.
당신의 제자들과. 이 땅의 교회를 위해 중보기도 하셨던 것처럼.
노아 또한. 중보자의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매달렸던 것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그 향기를 맡으시고서' 마음 속으로 다짐하셨다.

"I got it. 알겠다.
내 앞으로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니.
내가 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중보자의 자리로/중보자의 기도로" 나아가길 소원한다.

우리가 어찌. 나 혼자 구원을 입었다고. 노래할 수 있으며.
우리가 어찌. 나 혼자 구원을 받았다고. 그 가운데 만족하며 멈출 수 있겠는가.

주님은. 나의 구원/우리의 구원을 넘어.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들이. 모두 연결되고 하나되길 원하신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대제사장의 기도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자가 되었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주님 앞에서. 중보자의 기도로 나아감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의 삶과 기도를 돌아본다.
"오늘 나는. 무엇을 기도하고 있을까?"
"오늘 나는. 무엇을 간구하고 있을까?"

바라기는. 주께서. 오늘.
노아가 드리는 그 향기(예배/기도)를 맡으시고.
그 마음이 흡족하셨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의 기도 또한.
주님의 마음에 합하며. 당신의 마음에 기쁨이 되는.
그런 기도 되길 소원한다.

그래서. "나만 아니면 돼"라고 말하는. 이 세상의 거짓 진리 속에서.
나의 만족과 나의 유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기중심적이고. 옹졸한 나의 신앙을 벗어 버리고.
주님이 기뻐하시고. 주님이 즐거이 받으시는.
그런 예배자/기도자의 삶으로 전환되길 소원한다.

오늘 하루. 주께서 나의 삶을 그렇게 빚으시고.
주께서 나의 생각과 나의 지경을. 그렇게 넓혀주시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