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0(목) 창 25:19-34
창 25:19-34
이삭은 45살에. 리브가와 결혼하였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나도록. 그들에게는 아직 아이가 없었다.
이에 그들은. 주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였다.
생명의 문을 열어주시는 분이. 주님이시니.
그 주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간구한 것이다.
이에 주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것도. 쌍으로/곱으로. 선물을 주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한번에. 두 사람을. 낳을 수 있게 되다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들은 다시 괴로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두 아이가. 태 안에서부터 계속 싸웠기 때문이다.
두 아이가 태 안에서부터 계속 싸웠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쁨'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에게. '불평과 괴로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이를 가지면. 그들은 이제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이제 또 다른 고통/괴로움이. 그들의 마음을 힘겹게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출산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두 아들내미가. 태어날 때부터. 서로 엎치락 뒤치락 하더니.
자라는 동안에도. 계속 티격태격이다.
한 놈은 성격이 조금 순한 맛 같고.
한 놈은 성격이 조금 매운 맛 같다.
성격도. 기질도. 성향도. 활동도 다르다.
그러다 보니. 가족 안에. 편이 나뉘기 시작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가 잡아온 고기 맛에 길들여지기 시작하더니.
에서를 사랑하게 되었고.
어머니 리브가는. 에서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반대로. 야곱을 사랑하게 되었다.
물론. 리브가의 마음에는. 주님이 주신 약속이 마음에 남았을 지도 모른다.
"두 민족이 너의 태 안에서 태어날 것인데.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라는 말씀 때문에.
리브가가 야곱을 편애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 자식이지 않은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였건만.
어찌 자식을 편애하고. 서로 갈라질 수 있었단 말인가.
아버지 이삭이. 에서를 편애하면.
"당신 그러지 말라"고 책망해도 모자랄 판에.
어찌 두 사람이 나눠지고 갈라질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잘은 모르지만. 아이를 키우는 동안.
리브가와 이삭의 관계가 평탄치만은 않았던 것 같다.
15년의 결혼 생활 동안. 서로 쌓이고 쌓인 것이 많았던 것 같고.
그렇게 두 사람은. 한 이불을 덮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에 깊은 앙금이 쌓여있는.
불완전한/불안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들의 모습이 참 재밌다.
"결혼만 하면" 모든 것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만 가지면" 모든 것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심지어. 그것도 아니었다.
괴로움이 사라지니. 또 다른 괴로움이 찾아오고.
이 문제가 해결되면.
이제 우리 인생이. 조금이나마 행복할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예기치 못한 문제가. 또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근데.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처음에는 대학만 가면. 이제 모든 문제가 행복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대학을 들어가니. 취업의 문이 기다리고 있었고.
취업의 문을 열었더니. 승진과 인사 평가의 문이 기다리고 있다.
가정을 꾸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혼만 하면. 모든 것이 행복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마냥 그런 것이 아니다.
서로 생각과 기질이 다른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고.
그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2차 방정식'이 '3차 방정식, 4차 방정식'으로 바뀌게 된다.
자식 문제 뿐이겠는가.
양가 부모님을 모시는 것과. 인생의 노후/노년을 설계하는 것과.
그밖에도 인생의 많은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우리에게 달려든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인생을. 쉽게 판단하고 제단할 수 없다.
처음에는. 이것이. 분명 복이고. 기쁨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오늘 우리의 괴로움을 더하는 일이 될수도 있고.
처음에는 이것이. 분명. 괴롭고 슬픈 일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이 일이. 오늘 우리에게. 감사와 기쁨을 안겨주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며.
그분의 은혜와 그분의 자애를 바랄 뿐이다.
오늘 우리 인생에 주어진 문제가.
주께서 어떤 마음으로. 어떠한 의도로 주셨는지.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이 참 많다.
하지만. 우리는 그 크신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며.
주님의 뜻을 받아들인다.
모든 일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를 해하려 하는. 어둠의 권세와 공격 앞에서.
주께서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주께서 오늘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해 주시길 간구하며 말이다.
그렇기에 이 시간.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린다.
인간의 생각과 지혜로는.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일들 앞에서.
겸손히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길 소원하며.
눈 앞에 주어진 기쁨과 슬픔 앞에.
오늘 우리 영혼이 일희일비 하지 않길 소원하며.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이며. 나의 구원. 나의 산성이심을 고백하며.
그 주님 앞에서 요동치 않고. 흔들리지 않는. 우리가 되길.
이 시간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한다.
(feat. 오직 주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