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2(월) 시 81편
시 81편
아이들은. 위급한 일이 생기면. 이렇게 소리친다.
"엄마!!! 아빠!!!"
지체하지 않는다. 순간적인 본능이다.
내가 위험에 처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엄마. 아빠'의 이름을 부르면.
언제든. 그분이 나타나서. 나를 도와 주고 구원해 줄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위기 상황 속에서. '엄마. 아빠'를 애타게 찾는 것이다.
그러면. 엄마 아빠는. 언제든. 그 목소리를 듣고 달려간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짜짱가. 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ㅎㅎ"
그리고. 엄마 아빠가 조금이라도 늦게되면.
엄마 아빠는 늘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늦게 와서 미안해. 괜찮아? 아픈데 없어?"
근데. 생각해 보면. 이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인 것 같다.
실제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당신을 가리켜.
"피난처. 피할 바위. 구원자…" 이런 말들을 계속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위기 상황에서.
언제든 주님의 이름을 찾고. 당신의 이름을 부르시기 원함 때문이다.
여기에는. 조금의 귀찮음도. 조금의 주저함도 없으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자주 부른다고 해서.
"왜. 계속 불러대냐!"고 짜증을 내지도 않으시고.
"왜. 니 힘으로 하지 않고. 왜 계속 도움을 청하냐"며. 핀잔을 주지도 않으신다.
도리어. "혹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며.
"괜찮냐?"며 우리에게 물어보신다.
당신의 안전과 평화보다.
우리의 안전과 평화를 더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고. 그분이 우리 부모님이다.
근데. 만약…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찾지 않는다면. 당신의 마음이 어떠실까?
어쩌면.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주님을 찾지 않는다면.
그만큼 당신이 편안하고. 즐거울 것 같지만.
사실. 이보다 더 속상하고. 서운한 것이 없다.
오늘 이스라엘의 모습이 그렇다.
주님은. 내가 네 어깨에서. 짐을 벗겨주고.
내가. 네 손에 무거운 광주리를 내려놓게 하고.
내가 너에게 쉼을 주고. 내가 너에게 자유를 주기 원하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유를 얻고. 평화를 얻기 원하였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신에게 도움을 구하고. 이방신에게 자신들의 복을 빌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게 많이 속상했다.
"니가. 내말을 듣기만 했어도.
내가 가라는 길로. 가기만 했어도.
네가 복을 누리고 평화를 누렸을 텐데.
왜 이렇게. 어리석고. 미련하게 구는 것인지…"
그렇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피난처 있으니. 환란을 당한 자. 이리 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피난처 되시는 주님'께. 피하는 오늘 하루가 되길 소원한다.
오늘 해야 할 일.
오늘 만나는 사람.
오늘 우리가 감당해야 할 많은 일들과. 사역 속에서.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나 혼자. 어떻게 해보려고 끙끙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도움을 구하고.
우리 주님께 피하고.
우리 주님께 맡기고. 의탁하는. 그런 하루가 되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시간 주님 앞에. 이 찬양을 부르며. 나아간다.
"피난처 있으니. 환란을 당한 자. 이리 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의 삶을 붙들어 주시길 간구하며.
피난처 되시는 주님께. 오늘 우리의 삶을. 온전히 의탁한다.
(feat. 피난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