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7(월) 시 89:1-14
시 89:1-14
오늘 시편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의 마음이. 마냥 좋은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오늘 시편 기자의 고백이 그러하지 않은가?
"내가 영원히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렵니다.
내가. 대대로.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렵니다.
하늘 위에. 우리 주님 밖에. 내가 사모할 자가 어디 이겠습니까.
주님은. 바다를 다스리시고. 파도를 진정시키십니다.
주님의 팔에. 당신의 능력이 있으며. 당신의 손에. 당신의 힘이 있습니다.
정의와 공정이. 주님의 보좌를 만들고.
사랑과 신실이. 주님을. 시중들며 앞장서 갑니다."
그런 측면에서. 시편 기자는. 마냥 좋은 마음으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시편 89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보면.
시편 기자의 상황이 그렇게 녹녹치 않다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왜냐하면. 주께서. 당신의 종과 맺으신 언약을 파기하시고.
그의 왕관을. 땅에 내던져 욕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수치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보고. 미아냥 거리고. 조롱하기 때문이다.
시편 기자는. 이런 모습을 가리켜.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말씀하시고.
주께서. "언제까지. 영영 숨어 계시고.
언제까지. 당신의 진노를 불처럼 태우실 거냐?고 말씀하신다.
그런 측면에서. 사실 시편 기자의 마음은.
'난도질' 당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세상 어디서도. 소망을 찾을 수 없고. 세상 어디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는.
그렇게 상하고. 찢겨진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시편 기자가 하는 말이 무엇인가?
그가. 선하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그를 기뻐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자기를 버린 것 같고.
삶의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심지어. 하나님이 나에게 1도 관심이 없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예레미야 선지자의 모습과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의 포로로 끌려가고.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삶의 모든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상황 속에서.
그가. 기뻐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불탄 성벽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시도소이다(애 3:22-23)"
왜냐하면. 그는. 불탄 성벽 가운데. 새로운 소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주께서. 우리를 <진멸/헤렘> 하실 수도 있었지만.
주께서. 우리를 <진멸>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주께서. 우리를 <영영> 떠날 수 있었지만.
주께서. 우리 가운데. <소망의 불꽃>을 남겨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앞서.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도다"는 고백을 하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애 3:21)"
다시 말해서. 그가 이와 같이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가. <무턱대고. 무작정> 소망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우리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우리 주님이 어디 계신가. 그의 흔적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 주님이. 우리를 영영.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 주님이 남겨놓은. 삶의 희망/소망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 증거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것은.
"우리 주님"이라는 사실을. 그가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주님은> 내가 가진 모든 것. <주님은> 나의 희망(애 3:24)"
그런 측면에서. 시편 기자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있지 않았을까?
비록. 지금 내가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비록. 내가 지금.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비록. 지금 내게. 삶의 아무런 소망과 꿈도 없지만.
내가 오늘도 주님 앞에. 감사와 기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 주님이. 우리를 영원히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 주님이. 우리를 진멸하지 않으시고>
<우리 주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주님이. 내가 너의 영원한 기업이 되겠다>고 말씀하시기에.
그래서.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서. 감사와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그러하길 소원한다.
특별히. 오늘부터 많은 지방회가 수련회를 시작하는데.
어쩌면. 우리 간사들이. 예상보다 적은 인원에 마음이 실족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실족하지 않는 이유는.
그 가운데. 우리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삶과 사역이. 많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이 무궁함으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하고. 오늘도 주의 일하심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주님이 내 삶의 모든 소망이 되고.
주님이 내 삶의 모든 희망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시간. 주님 앞에.
<마음 속으로. 곰곰이/잔잔히 생각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길 소원한다.
그리고. 주께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 모두에게.
주께서. 이런 은혜 주시고. 이런 소망 주시길 간구한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하나님 한번도 나를 버리지 않으셨던 주님이.
오늘 우리 삶 가운데. 당신의 은혜와 사랑을. 충만히 부어주시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의 인자하신 그 사랑이 /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