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사사기

2022.07.27(수) 삿 8:29-9:6

The Sabbath 2022. 7. 27. 09:06

삿 8:29-9:6

미디안과의 전쟁을 마치고. 기드온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에 불과했다.
기드온은 사사를 은퇴하는 댓가로. 사람들에게 전별금을 요구하였고.
그걸로. 금 에봇을 만들었다.
일선에서 물러서고. 이제 자기는 아무런 것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상왕이 되어서. 이스라엘을 주물딱조물딱 하려는 목적이었다.

결국. 이스라엘은. 그것 때문에. 더 패역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닌. 기드온이 만든. 에봇을 섬기게 되었고.
기드온은.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수많은 여자를 아내로 삼고.
그 아래 70명의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리고. 세겜에 있는 첩과 관계를 맺고 난 다음에.
그 아들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다.
이것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뜻으로.
기드온이 자기를 가리켜. "I am a King! 내가 왕이다"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웃긴 처사인가.
한 때. 바알의 신전을 없애고. '여룹바알'이라 칭함을 받았던 사람이.
이제는. 또 다른 바알을 만들고. 스스로 바알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성경 기자는. 그런 기드온의 모습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다.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살았다.
그런데. 기드온은 아내가 많아. 친 아들이 일흔 명이나 되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쉽게 말하면 이런 뜻이다.
"당신들이 알던. 기드온/여룹바알은 죽었습니다.
당신들이 알던. 기드온/여룹바알은 죽고 없고.
이제. '자연인' 기드온만 남았을 뿐입니다."

소명을 잃고. 목적을 잃고. 부르심을 잃고. 하나님의 음성을 잃어버리자.
'여룹바알'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자연인 기드온만 남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성경 기자는.
기드온을 조롱/풍자하기 위해서. 계속 '여룹바알'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1) "여룹바알이라고 하는 기드온이.
이스라엘에게 선을 베풀었지만. 아무도 그 가족에게 은혜를 갚지 않았다.
(그럴 수 밖에요. 그거 당연한 거 아닙니까?)"

2) "여룹바알의 아들 70명이…
(아니 어떻게 여룹바알이 그럴 수 있어요?)"

3) "여럽바알의 아들 70명이. 한 바위 위에서 죽었다.
(그럴 수밖에 없죠. 죽어도 쌉니다. 차라리 잘 됐습니다. 예끼 이놈)"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혹시. 오늘 우리는 기드온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목적/사명"이 있는데.
만약 우리가 이것을 망각하고. 잃어버리고 살아간다면.
이것이 얼마나 헛되고. 또 헛된 일인가?

만약.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과 목적을 잃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송장/좀비와 다를 바 없고.
그것은. 알맹이는 쏙 빠지고. 껍데기만 남게 된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주님은. 우리가.
<자연인 기드온>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부르심을 입은 <여룹바알>로 살아가길 원하신다.

오늘 나는. 또 우리 공동체는.
이름만 남아 있는 <기드온>인가.
아니면. 부르심이 살아있는 <여룹바알>인가?

바라기는. 주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은혜를 부어 주셔서.
우리가 명목상 신자. <기드온>으로 남지 아니하고.
정말 살아있는 그리스도인. <여룹바알>로 삼아주시길 소원한다.

그렇기에 이 시간. 주님 앞에 이 찬양을 부르며 나아간다.
"다시 한번 부흥을 주소서. 주의 나라가 이 땅에 다시 세워지는.
그 영광을 우리 보게하소서. 주 예수의 영광을"

(feat. 다시 한 번 부흥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