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8(월) 마 22:1-14
마 22:1-14
예수께서 비유를 통해. 사람들을 가르치신다.
어떤 임금이. 큰 잔치를 베풀어서. 거기 사람들을 초대하였는데.
이에.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저마다. 자기 할 일 바쁘다며. 자기 갈 길로. 제 갈 길로 떠난 것이다.
근데 문제는. 이 사람들이. 그냥 왕의 초대를 거절한 것이 아니라.
왕이 보낸 사신. 그 종을. 능욕하고. 붙잡아 죽였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게 가능한 것인가?
사실 이건. 대놓고 왕을 무시하고. 능욕하는 것 아닌가?
"니가 뭔데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냐?"며.
왕에게 반기를 표하고. 반역을 표하는 것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이 사람들은. 선을 넘어도 한참 선을 넘었다.
왕의 환대를. 이렇게 적대적으로 표할 수 있다니.
왕의 초대를. 이렇게 매몰차게 거절할 수 있다니.
사실. 쉽게 이해하기 힘들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에 그들은. 결국. 심판의 칼날을 맞게 되었다.
자기들이 뿌린 대로. 그에 걸맞는 결과를 맞게 된 것이다.
이에. 왕은. 다른 사람을 잔치에 초대한다.
귀인이나. 어떤 위치에 있는 권력자가 아니라.
"누구든지 이 자리에 오기 원한다면. 누구든지 이 자리에 함께 하기 원한다면"
그 사람에게. 모두 똑같은 기회를 주고. 은혜를 주기 원하는 것이다.
이에. 수많은 사람이. 그 자리에 함께하게 되었다.
그 중에는. 착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고.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다.
근데. 뒷 이야기를 보면.
왕이 그 잔치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을.
그 자리에서 쫓아내고. 그를 심판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성경은. 그 이유가.
이 사람이. 격식을 갖추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근데. 이 말씀을 보면서. 의아한 것은.
"격식을 갖추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인가?"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실제로. 그럴 수 있지 않은가?
이 사람이. 혼인 예복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고.
갑작스런 초대에. 혼인 예복을 차려입고. 준비할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왕의 잔치. 그 초대에 응한 것이 중요하지. 어떤 옷을 입고 가는 게 뭐가 대수란 말인가?
그런 측면에서. 임금의 행동이. 너무 과하고. 무리수를 둔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당시 문화/뒷 이야기/배경을 살펴보면. 이게 마냥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임금들이 잔치를 벌일 때면.
누구나 그 잔치에서 입을 수 있는 <예복>을 준비해 놓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개인이. 예복을 준비해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복은 왕이 준비해 놓는 것이었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입구에서. 예복을 갈아입고만 들어오면 되는 것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그것을 거절하였다.
아니. 거절하였다기 보다는. 무시하였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니가 뭔데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냐?"며.
"나는. 내 마음대로 살 거다.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거다"라고 하다가.
결국. 왕의 심판. 왕의 책망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왕의 얘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심판/책망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천국 잔치가. 눈 앞에 있는데.
그 잔치를. 무시하고. 거절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고.
천국 잔치에 들어가면서도.
자기 하고 싶은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던 사람들이.
똑같이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책망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두려움과 경각심을 갖게 한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초대/말씀 앞에.
진지하게 묻고. 그분 앞에 엎드리고 있는가?
오늘 하루.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며.
그 주님의 초대를 무시하고. 반응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때로는. 그 소리 듣기 싫다면. 일부러 스위치를 꺼 버리고.
쌩까고.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희가. 하나님나라 백성답게 살려면.
이러이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님 우리에게 예복을 꺼내주실 때.
"아. 이런 옷은 내 컨셉에 안 맞고. 너무 구닥다리라서 안 입는다!"라고 말하면서.
우리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주님이 하는 것이라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잔치나 여시고.
주께서 우리를 위해. 서빙이나 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멈춰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주님 앞에서. 개아리를 틀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우리를 사랑해주세요 라고 말한다는 것은.
그것은 주님을 무시하고. 반역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동행하기 원한다면.
우리의 죄된 생각과 습관을 버리고.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엎드리고. 돌이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의 모습을 함께 돌아본다.
나는. 주님의 말씀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정말 주님의 말씀 앞에. 당신을 경외함과 두려움으로 반응하고 있는가?
나는. 주님 머리 위에 올라가기를 좋아하지 않고.
주의 말씀 앞에. 당신 발 앞에 엎드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바라기는. 주께서 오늘 우리 공동체를 긍휼히 여겨 주시사.
우리가 주님 은혜 가운데. 마음껏 기뻐하고. 마음껏 즐거워하는 공동체 되길 원한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 심판의 때에.
슬피 이를 갈며. 문 밖에서 서성이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우리 주님과 함께 기뻐하고. 우리 주님과 함께 즐거워하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면 좋겠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그런 은혜와 자비 베풀어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