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bbath 2023. 1. 11. 08:33

출 2:23-25

복음서를 보면.
우리 주님이 기도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여러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그중에. 이 두 가지가 대표적인 비유다.

1) 하나는. 한밤 중에 친구가 찾아왔는데.
그 친구에게 대접할 음식이 없어. 주인이 고민고민하다가.
다른 집을 찾아가. 음식을 구하는 내용이다.

이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밤이 늦었고. 문은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기 때문에.
내가 일어나서 네게 떡을 줄 수 없겠다"라고 말하는. 이웃의 말에.
주인이 계속. "먹을 것을 달라"고 구하면. 그 이웃이 어떻게 할 거라고 하는가?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눅 11:8)"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기에. 우리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부모가. 악할 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어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냐는.
우리 주님의 말씀이다.


2) 그리고 우리 주님이 가르쳐주시는.
기도에 관한 대표적인 두 번째 비유는. 과부와 재판장 비유이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이 과부가 그에게 가서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달라"는 이야기다.

근데. 이때 재판장이 어떤 반응을 보이냐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질 않는다.
과부의 요청/청을. 그냥 무시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해서. 자기에게 주어질 유익이 얻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청을 들어주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괜히 나만 피곤해지고. 나만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람이. 과부의 청을 무시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때.
과부가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
<끊임없이. 계속> 찾아가. 그에게 청원을 하고. 그에게 부탁을 한다.
왜냐? 이것 아니면. 살 방도가 없기 때문에.
이것 아니면. 피할 길이 없기 때문에.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는 심정으로. 계속 그를 물고 늘어지며.
그에게 부탁하고. 또 청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불의한 재판장이 뭐라고 이야기 하냐면.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인간이지만.
이 과부가. <계속>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눅 18:4-5)"

이에. 불의한 재판장에. 과부의 억울함/원한을 풀어주는데.
이때 우리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불의한 재판장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간구하고 청원하는 것을 들어주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주님이. <밤낮 청원하는 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겠냐?"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 주님은.
"내가.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리니. 너희가 내게 부르짖고. 나를 찾으라"고 말씀하신다.

근데. 그러면서도. 우리 주님이 염려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다른 게 아니라. 이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8)"

이것을. 풀어서 설명하면. 쉽게 이야기 하면. 이런 거다.

"<나는> 얼마든지. 너희의 기도를 듣고.
나는. 얼마든지. <빨리. 하루 속히>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는데.
문제는…
너희가. <나를 찾고. 부르짖고. 내게 구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걸 물어보시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두 가지 비유가.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우리의 필요와 간구를.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말하라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필요와 간구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 탄식하며. 간구할 때.
주께서 우리의 억울함과 원한의 소리를 들으시고.
언제든지 들으시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한다는 것이다.


근데. 문제가 뭐냐면.
약속의 말씀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동' 버튼을 누르면.
우리 주님이 언제든지. 우리에게 달려오시고.
우리의 아픔과 탄식에. 우리 주님이. 언제든지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으신데.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출동' 버튼을 안 누른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주님의 말씀이 맞다.
"나는. 언제든지/얼마든지. 너희의 이야기를 듣고. 응답하고. 반응하길 원하는데.
<문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을 보겠느냐?
<문제는> 너희가 나를 찾고. 간구하며. 내게 기도하겠느냐?"고 반문하시는 우리 주님의 목소리/경고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탄식하며. <참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탄식하며. <찾고>. 기다려야 한다.

탄식하며. 참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탄식하며. 참고. 기다리는 것은. 정말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혼자 고통의 시간. 아픔의 시간에. 혼자 머물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을 <찾고. 간구하며. 그분을 기다리는> 가운데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주님을. 찾고. 간구하며. 기다리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우리 주님이. 우리의 삶을 돌아보실 것에 대해.
얼마나 많은 기대와 소망을 갖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탄식하며. 울고 불고 하는 것은 참 잘하는데.
어떤 측면에선. 그 대상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냥 혼자 넋두리하고. 그냥 혼자 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탄식하며. 아파하며. <참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탄식하며. 간구하며.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주님의 약속/그분의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 주님을 <찾고> 그분을 기다리고 있는가?


바라기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말씀 묵상'과. '말씀 연구'의 공동체를 넘어서서.
하나님 앞에. 더 많이 엎드리고.
하나님 앞에. 더 겸손히 무릎 꿇는. 그런 공동체 되고. 그런 주의 백성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 말하지 않아도 다 아시죠?"라고 얘기하며.
주님 앞에. 우리의 필요와 간구를. 뭉뚱거려서. 그냥 '퉁' 치는 공동체가 아니라.
주님 앞에. 우리의 필요와 간구를. 직접적으로 더 많이 할 수 있는 공동체 되면 좋겠고.

주께서. 우리의 간구와 기도를 들으시고.
주께서 우리 가운데.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그것을 이야기 나누고. 그것을 고백하는.
그런 공동체 되고. 그런 우리 되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가.
오늘 우리의 삶을 의탁하며.
오늘 우리의 삶을 간구하길 소원한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무수히 많은 시간과 장소를 오가게 될 테인데.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순간. 모든 삶의 영역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통치와. 공의가 드러나길 바라며.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며.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그런 하루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면 좋겠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모두에게.
당신의 은혜와 사랑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나 같은 죄인 살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