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열왕기하

2024.01.27(토) 왕하 6:18-23

The Sabbath 2024. 1. 27. 08:22

왕하 6:18-23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종종 억울한 일과. 힘든 일을 마주할 때가 있다.

다윗의 삶이 그랬다.
그는. 사울의 칼을 피해. 광야로 내몰리게 되는데.
그는 정말 억울하고. 힘든 일 투성이었다.

그는 정말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그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이 길을 걸어왔을 뿐인데.
자기를 죽이려 하고. 자기를 해하려 하는 사울을 보면서.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인간에 대한 혐오와 환멸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윗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다윗이여. 사울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어 되십시오."

하지만 다윗은. 그때마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따라. 행동하질 않았다.
왜냐하면. 심판은 내게 주어진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은. 용변을 보러 들어온 사울을 향해서도.
그의 옷자락만 살짝 자를 뿐이고.
깊은 잠에 들어있는 사울을 향해서도.
그의 물병과 창만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뿐이다.

주께서. 당신의 손으로 기름부어 세운 왕을.
나의 손으로 심판하고. 제거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 사울을 심판하고. 제거할 수 있는. 여러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제거하거나. 그에게 해코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품고.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였다.
인간적으로는. 그에 대한. 원망과 불신과. 한스러움과 애통함이 있었지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께서 주인되시고. 주께선 심판자 되어 주시기를.
하나님께 의탁하고. 하나님께 간구하게 된 것이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오늘 본문을 보면. "치다"라는 말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데.
재밌는 것은. 그 주어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엘리사가 기도하기를.
"주님. 이 백성을 쳐서. 눈을 멀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라고 할 때.
그 주어/주체가 되는 것은 누구인가?
엘리사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쳐서. 그들을 책망해 주시기를 바라며.
그들이 어떤 잘못과. 악을 행하고 있는지.
하나님이 심판해주시고. 그들을 판단해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근데. 오늘 본문 21절을 보면.
그 심판에 대한 주도권과 결정권을. 이스라엘 왕이 가지려 한다.
실제로 오늘 본문 21절을 보면. 성경이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
"이스라엘의 아버지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그들이 눈을 뜨고. 보게 되면. <내가> 그들을 쳐서. 없애 버려도 됩니까?"

마치. 사울 왕을 심판하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같다.
"이건. 하나님이 우리에게 넘겨주신 기횐데.
우리가 이 기회를 놓쳐버리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쳐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그들을 칼과 활을 가지고 사로잡았습니까?
어찌 임금님께서 그들을 쳐서 죽이겠습니까?
차라리 밥과 물을 대접하셔서. 그들을 먹고 마시게 하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하나님의 손에 모두 맡기고. 주의 뜻에 우리의 삶을 의탁하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라고 말이다.

마치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다.

로마서 12장 19-21절을 보면.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쌓아놓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악에게 지지 말고. 오히려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롬 12:19-21)"라고 말하는데.
오늘 주께서 우리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고. 이와 같이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돌아보게 된다.

실제로. 오늘 이 땅을 살아가면서.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원망스러운 일을 당할 때가 얼마나 많던가.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심판자의 위치에 서거나.
책망자의 위치에 서고 싶을 때가 참 많은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오히려. 선으로 악을 이기며.
그들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아두길 원하시는 것 같다.

심판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임음을. 기억하고 되새기길 원하시는 것 같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이를 갈고.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물들고. 변화되길 원하는 것 같다.

물론 이 과정이. 결코 쉽거나.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엎드릴 수밖에 없다.

"사랑이 없는 자에게. 주께서 사랑을 주시고.
마음이 너그럽지 않은 자에게. 주께서 너그럽고. 자비로운 마음을 주시며.
인내하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하는 자에게.
주께서 인내의 마음과. 용납함의 마음을 주시길" 간구하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연약하고. 메마르고. 불쌍한 우리의 영혼을 주님께 의탁하며.
이와 같은 찬양/기도를 드릴 따름이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주님 발 앞에 엎드리니.
나의 맘 속을 살피시사. 눈보다 희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온전히 나를 주장하사.
주님과 함께 동행함을 만민이 알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사랑과 자비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사모하며.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 당신의 뜻을 펼치시길 간절히 사모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