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열왕기하

2024.02.15(목) 왕하 10:12-17

The Sabbath 2024. 2. 15. 10:54

왕하 10:12-17

예후의 개혁이. 마무리 되어 간다.
이스르엘에 있던. 이세벨을 죽이고(왕하 9:30-37).
사마리아에 있던. 아합의 아들들이 모두 죽었으니(왕하 10:1-14).
예후 입장에서는. 이제 아무런 문제없이. '사마리아 성'을 장악할 수 있었다.

사마리아 성이. 무주공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 있던 사람들이. 예후에게 항복하고.
그를 대신하여. 아합의 아들들을 숙청하여 주었으니. 얼마나 좋은/감사한 일인가.

이에. 예후는. 아무런 걱정 없이. 사마리아로 길을 떠난다.
사마리아 성을 장악하고. 이스라엘 개혁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일이 술술 풀리면서도.
그의 마음에. 한가지 풀리지 않는 고민/어려움이 있었다.
그것은. 오늘 나의 삶과 사역이. '누군가의 지지와 격려를 받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예후가 개혁을 완성하고. 이 일을 마무리 하였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예후를 곱게 볼 리 만무하였다.
북이스라엘의 왕을 죽이고. 남유다의 왕을 죽이고.
아합 왕의 가문을 쑥대밭을 만들고. 그리고 남유다의 가문마저 쑥대밭을 만들었으니.
예후 입장에서는.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웠을까.

아합 왕의 사람들이. 아합 왕을 버리고 자기에게 돌아섰다 하더라도.
그들을 믿고. 신뢰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들이 자기를 믿고 따르는 이유는.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였고.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이 배신하고 배반하는 것은. 물보듯 뻔한 일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사마리아 성으로 가는. 예후의 마음은.
마음 한편으론. 감사하고 기쁜 마음이 가득하지만.
또 다른 마음 한켠으론.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 가득이다.
"어느 누가. 나의 사역을 지지하고 격려해 줄 것인가?"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 가득이었으며.
"오늘 나의 삶과 사역이. 사람들 앞에서. 또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평가 받을 것인지?"
걱정되고 염려되는 마음도 있었다.

이것이. 이스르엘을 떠나.
사마리아 성으로 가는. 예후의 솔직한 마음.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근데.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주님이.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나게 하신다.

여호나답은.
예레미야 35장에 나오는. 요나답과 동일 인물인데.
그는 보수적인 신앙과. 하나님을 향한 열심으로 가득했었다.

그래서. 예레미야 35장을 보면.
레갑의 아들. 요나답(여호나답)의 후예들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선조 요나단이.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은 영원히 보도주를 마시지 말며.
너희가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을 소유하지도 말고.
너희는 평생 동안 장막에 살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그 말씀을. 다 지켜 행했습니다(렘 35:6-11)"

이에 우리 주님이. 그들의 믿음과 그들의 신실함을 칭찬하시며.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 가운데서.
나를 섬길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렘 35:19)"고 말씀하시는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호나답이.
바로 예레미야 35장에 나오는 요나답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 속에서.
여호나답을 만난. 예후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고. 또 진실했을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열심과 옳음을 인정받고 싶었을 것이며.
자기 혼자 이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곁에. 다른 사람. 믿음의 동역자가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후가. 그의 안부를 물으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대를 진심으로 믿듯이. 그대도 그러하오?”
이에. 여호나답이. "그렇다"라고 대답하는데.
그 길로. 여호나답과 예후는. 함께 이 길을 가게 되었다.
"주님을 향한. 나의 열심이 어느 정도인지 보시오"라고 얘기하며.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 있는. 아합의 지지자들을 모두 죽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단지 나의 욕망과 욕심에서 시작/비롯된 일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임을.
사람들 앞에서. 여호나답 앞에서. 함께 보여주고. 이것을 증명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믿음의 동역자/지지자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참 큰 힘과 위로가 되는 것 같다.

나 혼자 이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친구/동역자가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되는가.

정치적인 입장. 이해 관계로. 우리의 관계가 묶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사역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으로 엮여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되는가.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의 삶에도.
이와 같은 관계. 이와 같은 만남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예후가. 여호나답을 만나서.
그의 삶에 큰 힘과 위로를 얻었던 것처럼.
오늘 나의 삶에도. 여호나답과 같은 친구들이 넘쳐나면 좋겠고.
오늘 나의 삶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그런 친구가 되고.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시편 133편에 나오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그런 평가/칭찬을 받았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걸음. 우리끼리 기뻐하고. 우리끼리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고. 하나님 앞에 소망이 되는.
그런 나의 삶이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와 같은 찬양. 이와 같은 기도를 드리게 된다.

"주께 가까이. 날 이끄소서. 간절히 주님만을 원합니다.
채워주소서. 주의 사랑을. 진정한 찬양드릴 수 있도록.
목마른 나의 영혼. 주를 부르니. 나의 맘 만져 주소서.
주님만을 원합니다. 더 원합니다. 나의 맘 만져 주소서"

주께서 여호나답을 통해.
예후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힘을 주셨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도. 이와 같은 은혜/소망 넘치길 소망하며.
주께서. 오늘 우리 삶의. 진실한 친구. 진실한 위로자 되시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께 가까이 날 이끄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