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bbath 2024. 7. 4. 08:26

막 1:14-15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신다.
그의 첫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15절)"

그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며.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선포하며. 치유케> 하는 일들을 하였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며.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는.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려 하심이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첫 메시지이며.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첫 사역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말씀을 보면서.
예수께서 이 말씀을. <어디서 전하셨는지>가 내 눈에 들어온다.

특별히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데.
왜 예수님은. 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의 중심 지역이 아니라.
갈릴리 저 외곽에 있는. 변두리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려 하였을까?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태어나면 제주로 보내라" 하였건만.
왜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중심지.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하나님 나라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갈릴리 저 해변. 외곽/변두리에서 그 사역을 시작하시는 걸까?

그것은. 주께서. 당신의 약속/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이사야 9장 1절과 2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 9:1-2)"

이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갈릴리에 대한 인식을 가리킨다.
갈릴리는 그 당시. 이방 땅이라 불릴 만큼. 사람들에게 무시 천대/하대 받던 땅이었으며.
그곳은. 많은 침입과 외세를 겪으면서.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사람들에게 고통 받는 땅이었다.
그래서. 그곳에는.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을. 고통 당하게 하셨다고 생각했고.
그곳에는. 오직 흑암과 어두움이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 곳에서 빛이 난다"고 말씀하셨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참 빛이 비친다(사 9:2)"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때에. 온전히 성취된다.
주께서. 당신의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주께서 제일 처음으로 방문하고. 거기 머무른 곳이 <갈릴리> 땅이었으며.
주님은 그 곳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하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바라셨다.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그곳에서 행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많은 제자들도. 갈릴리 그 곳 출생이었다.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을. 무시하고. 천대하며. 하대하였지만.
우리 주님은 그들을 잊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베푸시며. 그들을 기억하시며.
그들을 하나님 나라로. 주의 길로 인도하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된다.
주께서 어떤 사람들을 사랑하시는가?
주께서 어떤 백성들을 기억하시는가?

주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모든 백성을 기억하시지만.
특별히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주님은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은혜를 멈추지 않으신다.

사람들은 겉모습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그들을 정죄하지만.
우리 주님은 절대 그러지 않으신다.
우리 주님은 사람의 겉모습이 아닌. 마음의 중심/그 마음의 소원함을 들으시며.
한결 같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한결 같이 우리를 주목하신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의 첫 사역을 시작하시며.
<갈릴리> 저 해변가를 찾아. 당신의 말씀을 선포하셨고.
주께서 당신의 사역을 이어가시는 동안.
<가난한 자. 억울한 자. 눌린 자. 고통 받는 자>들에게.
주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주의 복음을 전하려 하셨다.

그렇기에 우리 주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기를 자청하셨고.
사람들이 그를 놀리고. 손가락질 할 때도.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우리를 지켜주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행하면 좋겠다.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오늘 나의 학벌. 오늘 나의 능력. 오늘 나의 어떠함 때문인가?

아니다!
주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한없는 주의 사랑과 오직 주의 은혜 때문이며.
주님은 아무 것도 자랑할 것 없고. 아무 것도 보잘 것 없는 나에게.
주의 사랑을 부어주시고.
주의 은혜로 우리를 당신의 백성 삼아 주셨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당신의 사랑/은혜를 전하길 원하신다.
주께서 아무런 조건 없이. 아무런 댓가 없이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형제자매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며.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길 원하시며.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필요한 자들에게.
그들의 친구가 되길 원하시며. 그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이길 원하신다.

사도 바울이.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니라(딤전 1:15)>라는 말을 하고 난 다음에.
<내가 그리스도께 은혜를 입고. 긍휼을 입은 까닭은.
주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오래 참음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함이라(딤전 1:16)>고 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그와 같은 삶으로. 그와 같은 길로 부르심을 입은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하루 우리의 눈과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머물고.
주님의 눈물이 있는 곳에 멈추길 원한다.

주께서. 갈릴리 저 해변을 찾아.
당신의 복음을 전하고. 당신의 말씀을 전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이 땅의 갈릴리>를 찾아. 주의 길을 나서길 원하며.

주께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하시며.
자신의 삶을 드렸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주의 복음을 전하며.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걸어가며.
그리스도께서 밟으신 길을 기억하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
아버지 당신의 눈물이 고인 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바라보는 영혼에게. 나의 두 눈이 향하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울고 있는 어두운 땅에. 나의 두 발이 향하길 원해요.

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뜻. 아버지의 뜻이 될 수 있기를.
나의 온 몸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삶. 당신의 삶 되기를"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의 길을 걸어가며.
이 땅 가운데. 소외 받고. 고통 받으며. 눈물 흘리는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그들의 눈물 닦아 주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