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역대상

2025.06.19(목) 대상 19:1-20:8

The Sabbath 2025. 6. 18. 10:50

대상 19:1-20:8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암몬 사람 나하스가 죽고. 그 아들 하눈이 대신하여 왕의 자리에 오른 것을 기록하고 있다.

다윗은 살아생전. 나하스로부터 은혜를 입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하스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를 추모하려 하는데.
하눈과 그의 신하들은.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불편한 마음으로… 아니꼬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실제로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성경이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다윗이 조문사절을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존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그의 신하들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땅을 엿보고. 정탐하여. 전복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3절)"라고 하는데…
그들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이 자세히 기록하지 않는다.

그저… 다윗의 조문단을 보고. 아니꼬운 시선으로. 왜곡된 마음으로 바라보는데.
아마도 그 마음 가운데는. '두려운 마음'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는 것은. 불편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면.
움츠려들고. 경계 태세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제 살펴봤던 것처럼. 다윗의 군대가 얼마나 승승장구 하고 있었는가.
이스라엘이. 지금 주변 나라를 하나 둘 깨뜨리고.
자기 세를 강화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하눈과 그의 신하들은. 다윗의 일거수 일투족이. 조심스럽고 의심스럽게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하눈이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다가. 그들의 수염을 깎고.
그 의복을 볼기 중간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는데…"
이 일을 겪은 다윗의 마음은. 어처구니 없고. 불편할 따름이었다.

"사람의 호의를 어쩜 이렇게 무시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이라도 당장 일어나서. 그들을 치고. 그들을 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윗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려 하였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면?
하눈의 행동에 대해. 다윗의 다른 반응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만약 다윗이 그들을 치려하였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군대를 소집하여. 그들과 전쟁을 치를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 백성들만 살피고. 자기 신하들만 돌보고 있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돌아오라"라고 하는데…

문제는 하눈이. 자기 행동을 돌아보지 않고. 끝까지 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암몬 자손이 자기가 다윗에게 밉게 한 줄 안지라"라고 하는데…
만약 이런 상황 속에서. 자기의 잘못을 깨달았다면.
그는 "용서를 구하고. 자비를 구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때 내가 한 행동은. 잘못 판단해서… 오해해서 생긴 일이니…
이번 한번만 나를 용서해주고. 이해해 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의 잘못을 돌이키지 않고.
도리어 화를 내며. 군대를 소집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 6절과 7절을 보면.
하눈과 그의 백성들이. 은 천 달란트로. 이웃 나라와 군사를 고용하여.
다윗과 맞서 싸우고. 다윗과 전쟁을 치르려 하는데…
그 결과 하눈은.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하고. 자기의 생명을 목숨값으로 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다윗은 그저 은혜를 베푸고. 그와 화목하기 위해 길을 나섰는데.
하눈과 그의 신하들은. 이것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도. 그것을 돌이키지 않고. 끝까지 악을 일삼다가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너무 슬프게 느껴진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돌아보게 된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 찾아오심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얻고. 영생을 누리게 하기 위함" 때문인데…
오늘 우리는 그 하나님의 초대 앞에. 어떻게 반응/대응하고 있을까?

하눈과 그의 신하들이.
다윗과 그 백성들을 향하여. 문전박대하고. 그에게 수치를 주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그렇게 반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의 초대 앞에. 감사함과 기쁨으로. 진실히 반응하고 있는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분의 은혜에 대해.
잘못된 생각과 왜곡된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면. "우리의 자유가 박탈"당할 것 같고.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되심을 온전히 고백하면.
오늘 우리 인생이 망가질 것 같고.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을 문전박대 할 때가 있는데…

우리 주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다.
우리 주님은 우리와 싸우고. 우리의 생명을 뺏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며. 우리 가운데. 구원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시며.
죄와 사망의 늪에서. 종노릇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참된 자유가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알려주기 위해. 이 땅에 찾아오셨다.

그렇기에 주님은. 오늘도 우리 문 밖에서.
우리가 당신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기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바라기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그 음성을 듣고. 기쁨으로 문을 여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의심의 구름과 무지의 구름이 우리 눈 앞을 가리우고 있다면.
주께서 우리의 눈을 씻기시고 밝히시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가 주의 음성을 드고.
기쁨으로 반응하며. 기쁨으로 주를 맞아들이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 듣고. 문을 열면.
누구든지 내 음성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살리.
내가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살리"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드고. 그분의 음성 앞에.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반응하는.
그런 나와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feat. 볼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