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1(금) 창 26:1-11
창 26:1-11
전도서 1장 9절을 보면.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 새 것이란 없다.
이미 있던 것이 훗날에 다시 있을 것이며.
이미 일어났던 일이 훗날에 다시 일어날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이삭의 삶이 그렇다.
1) 아브라함 때도 흉년이 들더니. 이삭의 때도 흉년이 들었고.
2) 아브라함 때도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가려고 하더니.
이삭도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가려고 하였다.
3) 아브라함도.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거짓말 하였건만.
이삭도. 동일하게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거짓말을 한다.
어쩜 이렇게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을까.
과거의 잘못은. 다시는 따라하지 않고. 반복되지 않으면 좋겠건만.
정말 우리는. 신기할 정도로.
넘어진 곳에서 또 넘어지고. 자빠지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처럼.
어쩜 우리는. 답도 없고. 미래도 없고. 소망도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허물과 죄악으로 가득한. 인간의 모습/한계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실제로 오늘 본문을 보면.
이삭이 잘못된 선택/실수를 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때마다. 직접적으로 또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그에게 개입하고 간섭하신다.
이삭이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가려고 하자.
하나님이 이삭에게 "직접적"으로 나타나셨다.
그리고. 애굽으로 가지 말아야 할 이유와.
주께서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 바로 이 땅임을 충분히/친절히 말씀해 주셨다.
이삭이.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을 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우연히" 이삭과 리브가가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보게 되었고.
이 일로. 이삭은. 모든 사람의 위협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하나님의 간섭을 따라 일어났다.
우리는. 우리의 선배들처럼.
실수하고. 넘어지고. 또 자빠지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선하심으로. 오늘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며.
직간접적으로. 또 은밀하고 위대하게. 당신의 뜻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 인생도 그러하길 소원한다.
우리는. 현실의 위협 앞에서.
늘 두려워. 떨고. 위축되고. 쓰러지지만.
주께서 그런 우리를.
당신의 사랑으로. 충만히 안으시고. 품어주시길 기도한다.
우리는. 늘 실수하고. 무너지고. 쓰러지지만.
주께서 그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겨주시길 소원하며.
주께서 우리에게. 친밀히 말씀하시며.
다시금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실 때.
우리가 그 은혜를 붙잡고.
다시금 주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길 기도한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주께 의탁드리며.
이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간다.
"내 맘이 헛된 욕심에 갇혀. 주의 선하신 뜻을 보지 못할 때.
내 맘의 눈을 돌이키시고. 주의 말씀으로 날 인도하소서.
모든 두려움 버리고. 주의 약속만을 바라봅니다.
나의 피난처 되시는. 방패 되신 주만 의지하리라.
주의 뜻 하늘 보다 높고. 바다 보다 깊고 신실하시네.
내 마음 다하여 주님이 계신. 그 곳으로 나아가리라.
영원히 신실하신 주의 사랑. 무엇도 끊을 수 없는 사랑.
모든 영광과 찬양 받으소서. 영원토록 주 이름 찬양해."
오늘 하루. 신실한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를. 주님의 품으로 인도해 주시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신실하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