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창세기

2022.03.19(토) 창 27:46-28:9

The Sabbath 2022. 3. 19. 09:31

창 27:46-28:9

야곱이. 밧단아람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을 찾아간다.
아버지 이삭이. 그곳에서 어머니 리브가를 만났던 것처럼.
야곱도 그곳에서. 하나님이 짝지어준 사람을 만나고자 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삭과 리브가는. 야곱을 축복하며. 그를 떠나보낸다.
이삭이 리브가를 만날 때. 정말 수월하게 일이 진행되었던 것처럼.
주께서 야곱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주시길 소원하며.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의 가문을 지키시고 돌봐주셨던 것처럼.
야곱의 인생에도. 주께서 동일한 은혜 베풀어주시길 간절히 소원한다.


근데. 문제는. 에서다.
에서는. 이삭이 야곱에게 복을 빌어주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꼭지가 돌았다.

"오호.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아버지가 야곱을 혼내기는 커녕. 오히려 야곱을 감싸고 돌겠다 이거지?
그래 그렇게 해봐. 나도 삐뚫어질 거야.
부모님이 내 가슴에 못을 박았으니. 나도 부모님 가슴에 똑같이 못을 박을 거야.
내 인생. 내 마음 대로.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거고.
부모님이 싫어하는 짓만 골라 할 거야!
삐뚫어진다는 게 어떤 건지. 제대로 보여주겠어!!!"

그래서.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가나안 사람의 딸들을 싫어한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또. 그에게는 이미 두 사람의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다시 맞이하였다.

어떤 측면에선. 하나님을 향한/또 부모님을 향한.
반대급부/못난 짓을 골라 한 것이고.
또 어떤 측면에선. 자기와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사람을 모은 것으로 보인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 가문을 향해. 마음의 응어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에서와 이스마엘이. 함께 하나님께 투쟁하고. 함께 하나님께 대응하기로.
그들의 마음을 모은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에서의 모습이. 참 안타깝다.

그렇게까지 악을 쓰며. 바락바락 대들어야 할까?
그렇게까지 망가지고. 또 무너져야 할까?
배신감과 상실감으로 가득한. 에서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까지 자기를 갉아먹으며.
그렇게까지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는. 에서의 모습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을 읽으며.
나와 우리 공동체의 모습을 함께 돌아본다.

"오늘 나에겐. 이런 마음이 없을까?
오늘 나에겐. 하나님께 상한 마음으로. 삐뚫어지고. 망가진 부분은 없을까?
사람들을 향해서는. 이런 마음이 없을까?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고 해서.
나 역시. 마음의 원한을 품고.
나 역시 똑같이 갚아주겠다며. 마음의 응어리를 삼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어찌 보면. 마음의 상처야. 누구든지 마음에 받을 수 있는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인 것 같다.

누군가는. 그 상처에 갇혀서. 그 마음의 감옥에 갇혀서.
평생 동안. 누군가를 원망하고/미워하고/증오하며.
평생을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지만.
주님은. 우리의 깨지고 상한 마음을 고치시고.
우리를 원래의 모습대로. 다시금 회복하고 돌이키기를 원하신다.

그런 측면에서. 마음의 "회복 탄력성"이 중요하다.

작은 상처에도. 쉽게 찌그러들 수 있지만.
다시금 원 상태로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의 복원력/마음의 회복 탄력성이 중요하고.
때로는. 큰 상처 때문에.
우리 인생이 많이 찌그러지고. 다시는 회복되기 힘들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주께서 우리 인생을. 회복시키시고. 돌봐주시길 소원하며.
그 주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무릎 꿇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주님의 은혜 앞에. 겸손히 엎드리길 소원한다.
마음의 완악함과. 마음의 교만함과. 마음의 오만함을 벗어버리고.
주께서 우리 가운데. 유순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 주시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주께 의탁한다.

마음의 탄성 계수를 높이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숙제다!

(feat. 예수 나의 치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