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창세기

2022.04.21(목) 창 39:1-10

The Sabbath 2022. 4. 21. 08:27

창 39:1-10

요셉은. 은 20냥에 팔려서. 애굽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그의 종착지는. 보디발의 집이었다.
한 때는. 아버지의 총애를 받고. 꼬까옷을 입고 지내던 요셉이.
지금은. 누더기 옷을 입고. 허드렛 일을 하며 지낼 뿐이다.
그것이. 오늘 요셉이 처한. 시궁창 같은 현실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요셉의 기분/마음이 어땠을까?
차마 말로 설명할 수가 없을 것이다.
"형들이 어떻게 나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지?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아마도. 요셉은.
형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고.
그 분노와 원망은. 하나님께로.
또 세상을 향해. 동일하게 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간이 느끼는. 당연한 감정/자연스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근데.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그의 앞길이 잘 열리도록. 주께서 그를 돌봐 주셨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하나님이 요셉에게 복을 주셨다/은혜를 주셨다'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형들이 요셉을 배신하고. 형들이 요셉에게 못된 짓을 하였지만.
우리 주님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주께서 그에게. 은혜와 복을 더해 주셨다는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 이야기를 보면.
이것이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특별히 3절을 보면. 성경이 뭐라고 하고 있는가?
"그 주인이"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주인이" 주께서 요셉을 돌보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주께서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하신다는 것을.
"그 주인이" 알게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말씀을 보다가. 한 가지 궁금함/질문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그 주인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주인이" 이 사실을 알고.
요셉에게. 자기 살림살이를 맏기고. 그를 신뢰하는 걸까?

그렇게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2절의 이야기가. 결과론적인 해석이 아니라.
요셉의 신앙 고백. 그의 삶의 이야기임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요셉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겠지만.
요셉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았고.
그는 자기에게 주어지는 복과 은혜가.
"내가" 어떻게 해서. "내 능력과. 내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주의 은혜이며. 주의 선물"임을 고백하고 또 고백하였다.

그래서. 그는.
얼마든지 삐뚤어질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삐뚤어지기로 선택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과정이야.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결과야"라고.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고. 자기 자신을 합리화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진실하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또 몸부림쳤다.

그래서. 그는. 보디발의 아내가. 자기를 유혹할 때.
이것을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었다.
주인이 있건 말건 간에.
주인이 보든 보지 않든 간에.
주께서 자기에게 맡긴 사명. 그 본문을 잃지 않고.
언제나 주님 앞에서. 바르고 진실하게 살고자 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의 신앙과.
"임마누엘(하나님과 함께)"의 신앙은. 하나의 짝을 이룬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주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길 바라는 만큼.
나도.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정직한 삶을 살아가며.
주가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가 주 안에서. 온전한 연합/연합의 신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그제서야 주님을 알게 된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주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주께서. 우리의 삶을 돌보시고. 은혜 주신다는 것을.
우리의 입술로 고백하고.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될 때.
그제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주님을 알게 되고.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가며.
나도 이렇게 기도할 뿐이다.

"주님. 제가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지 간에.
오직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 앞에서 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게 주어진 상황 앞에서.
이것은 어찌 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세상을 비관하며. 원망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주님 앞에서.
주의 뜻을 따라 행하며. 주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요셉의 삶을 보고.
그 주인이.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아람 군대의 손에 끌려갔던. 소녀의 고백을 통해.
나아만 장군이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의 병이 나았던 것처럼(왕하 5:2-3).
오늘 우리 삶도. 주님 안에서.
그렇게 아름답게 빚어지고. 만들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의 삶을 주께 온전히 의탁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feat. 내 안에 가장 귀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