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마태복음

2022.10.19(수) 마 12:38-45

The Sabbath 2022. 10. 19. 07:17

마 12:38-45

"그때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에게서 표징을 보았으면 합니다>"

참 어처구니 없는 얘기다.
그동안 예수님께서. 수많은 기적과 표징을 보이셨건만.
이들은. 왜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걸까?
방금 전만 하더라도.
우리 주님이. 귀신 들려서 말 못하고.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고. 그의 병을 낫게 해 주셨건만.
여기서 또 무슨 다른 표징이 필요하단 말인가?

이들은. 겉으로는.
"선생님. 표징을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공손하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속으로는.
"에이. 그래도. 나 당신을 못 믿겠어요.
정말 당신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표징을 한 번 보여주든가"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밀어내고. 그를 시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들의 모습은.
마치.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던. 사탄의 모습과 같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고 얘기하면서.
겉으로는. 공손하게. 젠틀하게 예수님에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예수님을 향해서. 온갖 비아냥과 조롱으로 가득했던.
그 마귀의 시험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님은. 그들의 속내를 아시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예언자 요나의 표징 밖에는. 이 세대는 아무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이런 말이다.

"내가 너희에게. 그동안 줄곧 수많은 기적과 표적을 보여왔건만.
너희는 왜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표적을 보여준다면. 너희가 정말 나를 믿을쏘냐?
그러지 않을 거 아니냐?
돼지에게 진주를 함부로 주는 거 아니다.
너희가 나를 시험하고. 테스트 할 목적으로. 나에게 계속 표적을 보여달라고 하는데.
그런 악한 마음으로. 나를 시험하지 말아라.
나는. 나의 권위를 세우고. 나의 힘을 드러내기 위해. 표적을 행하지 않는다.
모세는. 광야에서. 자신의 힘을 드러내고.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
바위를 힘껏. 두 번 쳤지만. 나는.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다만! 니들이 그렇게. 기적을 원하고 표적을 원하는데.
내가 너에게. 이 사실 한 가지 만을 분명히 알려 주겠다.
요나가.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다시 나왔던 것처럼.
인자도.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땅 속에 있다가. 나올 것이니.
부활.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보여줄 표적의 전부다.
이보다 더 큰 표적이 어디 있겠느냐.
이보다 더 확실한 표적이 어디 있겠느냐.
부활을 보고도. 나를 믿지 못한다면. 너희가 어찌 나를 믿을 수 있겠느냐.
부디. 너희가. 이 표징을 보고도. 너희의 마음을 악하게 먹어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전할. 마지막. 유일한 메시지니라."


참 짠하지 않은가.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하고. 시험하는 무리를 향해서.
우리 주님은. 뭐가 그리 아쉬워서.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하고 또 설명하시는 걸까?
정작 급하고. 아쉬운 것은. '그들'이어야 하는데.
왜 우리 주님이. 안타까워하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걸까.

하지만 되돌아 보면.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내가 자식을 도무지 버리지 못해서.
끝끝내.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며.
그의 마음을 돌이키고. 설득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고. 그를 구원하고 싶은 마음.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논리적인 말로 설명한다 하더라도.
제 아무리 많은 말로 권면한다 하더라도.
제 아무리 신비한 표적과 놀라운 일을 보인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그 사람이.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다.

마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서.
내 형제 다섯이. 그의 증언을 듣고.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부자가 간청하고. 또 간구하였을 때.
"모세와 선지자들의 이야기를 듣지 아니하던 자들이.
어찌.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듣고. 돌이키겠느냐?"라고.
우리 주님이 반문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 마음도. 우리 주님을. 밀어내고 저항하고 외면하고 있다면.
아무리 주님이라 하더라도. 억지의 그의 마음을 부수고.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자비와 은혜'다.

우리가 무수히 많은 말로. 누군가를 설득하고. 권면하는 것보다.
주께서 우리의 마음을 녹여주시고.
주께서 우리 인생을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이 필요하고.

오늘 우리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굳은 상태로. 딱딱하게 있는 것보다.
주님의 자비와 은혜 가운데. 우리 마음이 녹아지고. 부드럽게 되는 것.
그것이. 그 무엇보다 더 소중하고. 그것이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그렇기에.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가며.
주님 앞에. 나의 마음을 간구할 따름이다.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 선지자의.
"회개하라"는. 그 단순한 메시지를 듣고. 하나님 앞에. 자복하며 탄식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 인생도.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되길 소원하며.

남방 여인이. 솔로몬의 지혜와. 그 능력에 대한 소식을 듣고.
먼길을 찾아와. 그 앞에 엎드리고. 조아렸던 것처럼.
오늘 우리 인생도.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고. 무릎 꿇는.
그런 은혜가 있고. 그런 구원이 있기를 기도한다.

그래서. 오늘 우리 마음이. 주님 앞에서.
딱딱하고. 굳어 있어서.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거절하는.
그런 우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직 우리 마음이 주님 앞에서. 부드럽고 유순한 옥토가 되어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그런 우리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가 되면 좋겠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그런 자비와 은혜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사모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새로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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