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2(화) 마 20:29-34
마 20:29-34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기도함에 있어서.
'간절함/절박함'보다 더 큰 동력은 없는 것 같다.
간절함이야말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절실한 기도의 통로이며.
절박함이야말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주님을 찾고. 주님을 부르게 된다.
주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없이는. 오늘 하루를 도무지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각 장애인의 기도가 그렇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눈이 아프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앞이 캄캄하게 되고. 모든 것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의 아픔과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처음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다면. 어떤 측면에선.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텐데.
하루 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하루 아침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오늘을 살아가며.
하루 아침에.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상황 속에서.
그들이 느낀 상실과 아픔의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그렇기에. 그들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온 맘을 다해. 간절한 목소리로 외친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말이다.
이에 주변 사람들이 시끄럽다 소리치며. 조용히 하라고 말려보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의 기도를 막을 수 없다.
왜냐? 그들의 갈망과 그들의 소원이. 세상 그 어떤 장애물보다도 더 컸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갈망과 간절함의 기도를 배워가길 소원한다.
혹시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뜨뜨미지근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오늘 우리는.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면 감사하고.
아니면. 그만이고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간절함이. 갈망을 불러 일으키고.
갈망이.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열정을. 불러 일으키고.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열정이.
오늘 우리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통치를 불러 일으키는 법인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라는 미명 아래. 두 손을 놓고. 가만히/잠잠히 앉아 있는 것은 아닌가?
혹시라도. 오늘 우리 마음이. 또 우리 믿음이. 주님 안에서. 잠들어 있다면.
주께서 오늘 우리의 심령을 흔들어 깨워주시길 소원하며.
주께서 우리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간절함과 소망과. 절박함과 절실함의 기도를.
다시금 회복시켜 주시고. 다시금 불을 내려주시길 간절히 소원한다.
그래서. 주님이.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 걸음을 멈추고. 다시 그들에게 향하셨던 것처럼.
오늘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우리에게 향해 주시길 소원하며.
주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우리가 다시금 주님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주를 따라가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시간. 이 찬양을 부르며. 주님 앞에 나아간다.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걸음씩 나가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네."
오늘 하루. 그 주님의 보혈과 생명이.
오늘 우리 영혼을 새롭게 해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보혈을 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