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3(금) 눅 7:18-28
눅 7:18-28
인간은. 흔들리고 넘어지는 존재다.
하나님 앞에서. 반듯하게 또 진실하게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지 않은 사람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늘 흔들리고 넘어지기 마련이다.
때로는. 내 안에 욕심 때문에 흔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의 충조평판에. 비틀거리고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고. 요동치기도 한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한계와 연약함의 모습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것 때문에. 실망하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그분께 무릎을 꿇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에게 부족함과 연약함이 없다면.
우리가 무엇한다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매달리겠는가.
그 사람은. 얼마든지. 자기 힘으로. 자기 뜻대로 살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의 넘어짐과 쓰러짐은. 우리의 부끄러움과 수치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그분께 엎드리는 것이지.
이 시간 자체가. 우리에게 올무가 되고. 부끄러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모습이 그러하다.
실제로. 세례 요한하면. 우리가 제일 상상하고 떠올리는 모습이 어떤 것인가?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던 모습이 생각나지 않는가?
그는 오랜 세월.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지내며.
주의 오심을 예비하고. 주의 오심을 증거하던 자였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렇게 선포하였다.
"보라.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말이다.
근데. 그랬던 그가. 오늘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의심하고 회의하고 있으니.
그런 세례 요한의 모습이. 어찌 우리가 알던. 세례 요한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런 세례 요한의 모습을 바라보며.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가운데.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없다"고 말씀하시며.
세례 요한의 정직한 물음에. 정직한 답변으로 말씀해 주고 계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이 말씀이.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고. 오늘 우리의 소망이 되길 소원한다.
오늘 우리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 우리 가운데.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 우리는. 다 넘어지고. 쓰러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리고 난 다음에. 우리의 반응이지 않을까?
쓰러지고 넘어진 자리에서. 계속해서. 그 자리에 엎어져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정직한 물음과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그분께 반응할 것인가.
하나님 앞에서. 흔들리고 요동치는 우리의 마음을. 숨기고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께 묻고. 그분께 따지고.
그분과 씨름하며. 그분의 음성을 들을 것인가.
나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씨름하며. 끊임없이 질문하며.
끊임없이 배우고. 끊임없이 자라가길 소원한다.
비록. 이 과정이. 쉽지 않고. 지루하고. 남루해 보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우리 영혼이 자라가고. 깊어져 가는데 있어서.
비록 아픔과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이. 성장통의 한 과정임을 알고. 하나님 앞에. 묻고 씨름하기를.
결코 멈추지 않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시간. 하나님 아버지 앞에. 겸손히 기도한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 의심과 물음과 질문과 회의로 가득한.
우리 청년들의 인생 가운데.
주께서 길을 보여주시고. 주께서 말씀하시며.
주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주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성령이 오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