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bbath 2023. 7. 15. 07:43

눅 9:37-45

예수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한 사람이. 제자들을 찾아왔다.
귀신 들린. 자기 아들을 고쳐달라는 것이다.
이 아들은. 귀신 때문에. 경련을 하기도 하고. 입에 거품을 물기도 하고.
또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겨오기도 했는데.
아버지는. 이 아들을 고치고자. 당신의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예수님은. 그 자리에 계시지 않았다.
그는 당신의 제자 몇 사람과. 변화산에 올라 기도하고 계셨고.
그 자리에는. 다른 제자 9명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당신의 제자들이 이 아들을 고치기 위해. 애를 쓰는데…
결과는? 그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분명히 전에는.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기도 하였는데(막 6:13).
왜 이번에는. 아무런 일도 행할 수 없었던 것일까?

이번에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똑같이 행동하였는데.
왜 그분은 되고. 왜 나는 되지 않는 걸까?


그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하나님의 주관 가운데.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사람들의 병을 고치며 축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일이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사도가 능력이 많았기 때문이가? 사도가 은사가 많았기 때문인가?

아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였을 따름이다(행 19:11)"
이 모든 일의 주체/주관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분 앞에서. 그냥 작은 하나의 몸짓/소리에 불과할 따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그것을. 병든 사람 위에 놓으니. 그 병이 떠나가고. 악귀가 떠나간 적도 있었는데.
이것은. 바울이 신통방통 해서가 아니다. 바울이 능력이 많아서가 아니다.
<주께서> 그들의 간절한 믿음을 보시고.
<주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을 알지 못하고.
장난 삼아/흉내내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큰 화를 입게 하셨다.
그래서. 스게아의 일곱 아들이.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낼 때.
악귀가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는 대체 누구냐!!"

그래서. 그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큰 화를 당하게 되었다.
예수의 이름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이름/능력의 이름이 되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멸망의 이름/화의 이름이 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즉각적인 결론/결실을 맺는 것은 아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어떤 동기/어떤 목적으로. 주를 찾는가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고.
이 일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보시고. 어떻게 여기시는가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기도한다고 해서. 우리의 기도가. 즉각적으로 응답되어야 하는 이유는 없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하나님의 긍휼을 따라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왜?"라는 질문은 잘못되었다.
"<왜> 우리가 기도할 때는. 안 되더니.
<왜> 당신이 기도할 때는 됩니까?"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큐리에 엘레이손 / 주여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하며.
그분 앞에 엎드리고. 그분 앞에 간구하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모습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우리 주님의 자비하심과. 은혜가. 오늘 우리 삶 가운데. 충만히 임하길 기도한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며.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하겠냐?"는. 주님의 물음 앞에.
우리가. 주눅들고. 한탄하며. 뒤로 물러설 필요가 무엇 있겠는가.

그럴 필요 없다. 정말 하나도 그럴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임을. 겸손히/진실로 자각하고.
"주여 나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라고. 주님께 간절히/절실히 엎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그 주님의 자비하심과 인자하심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는다.

오늘 하루. 주께서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우리 공동체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이 땅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이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하나님의 음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