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01(금) 눅 16:1-13
눅 16:1-13
불의한 청지기 비유.
이 비유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논란이 되었다.
이 비유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사람들에게 많은 물음과 질문을 남겼기 때문이다.
"청지기가 계약서를 변경해서. 자신의 속내/이익을 챙기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칭찬받을만한 행동인가?
기름 100말을 50말로 변경하고.
밀 100섬을 80섬으로 변경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고 옳은 행동인가?"
그래서. 학자들은. 이 본문을 두고. 오랫동안 많은 연구를 하였다.
그 결과. 이런 자료를 찾아냈다.
그 당시. <고리대금업>이 성행하고 있었는데.
"기름"의 이율은 100% 였고. "밀"의 이율은 25%였다.
다시 말해서. 기름 50을 빌리면. 계약서에는 100을 적고.
밀 80을 빌리면. 계약서는 25%의 이율을 적용해서.
밀 100으로 계약서를 적었는데.
이 사람이. 이자를 제하고. 원금만 기록하도록. 계약서를 변경/수정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결과만 보자면. 이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주인은. 그 당시 고리대금업을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재산을 불리려 하였다면.
이 사람은. 그것을 지혜롭게 선용(?)하였기 때문이다.
주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제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편/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가 아무리 좋았다 하더라도.
그의 행동은. 결코 정당화되거나. 용인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과정이 바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주인의 허락을 받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남몰래 이 일을 한 것은.
결코 용인되거나.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더욱이 이 일을 한 목적이.
자신의 속내/유익을 채우기 위함이지 않았던가?
1절을 보면.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소문이 사람들 사이에 돌고 있었는데.
결국에는. 이런 소문을 바로 잡고. 이미지 세탁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이 사람은. <불의한 청지기>가 맞다.
그는 분명. 바르지 않은 목적으로 이 일을 하였고.
그는 분명. 바르지 않은 일처리/암묵적인 일처리를 하였고.
이것은 모두.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 자기의 속내를 채우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의로운 청지기/지혜로운 청지기>만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참 재밌는 것은.
우리 주님이. 비유 속에서. 그를 두둔하고. 칭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였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그가 슬기롭게 대처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선.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고 말하는데.
이 말씀이. 우리에게 혼란스럽고. 어려움을 야기하는 것 같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니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재물 자체가. 불의하고 부정하단 말인가.
아니면. 그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돕고. 섬기라는 말인가?
그래서.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말씀을 읽다가.
이런 생각/가정을 해 보았다.
"만약에. 오늘 본문에서. <불의한>이라는 말을 빼면. 그러면 어떻게 될까?"
"만약에. 이 종이. 주인에게. 바른 제안을 하고. 바른 이야기를 하였다면 어떻게 될까?
그 당시 고리대금업이 성행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율법의 말씀에. <동족에게는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그렇게 살지 맙시다라고 했다면.
그랬다면. 이 종이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는 훨씬 더 좋은 평가. 칭찬을 받았을 것 같다.
만약 그랬다면. 그는 <의로운 청지기/선한 청지기>라는 평가를 받았을 것 같고.
<불의한 재물>이라는 말 대신에. 그냥 <주께서 주신 재물/선한 재물>이라는 말을 하셨을 것 같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 그의 행동을 가리켜.
<불의한 청지기>라고 말하고 있다.
왜 그럴까? 예수님은 왜 이렇게. 아리송하고. 어지러운/혼란스러운 상황/셋팅을 구성하고 계신 걸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이 비유의 대상/타켓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바로 다음절을 보면.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를 비웃었다(눅 16:14)"고 말하는데.
그 이유가. "그들은 돈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 당시.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이 보인 행태가 그렇지 않은가.
성전 앞에서. 사람들을 돕는다는 목적으로. 제사 짐승을 파는데.
하나 같이. 병들고. 이상한 것 투성이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때. 어느 하나도. 도저히 제사상에 올릴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괜찮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돈을 벌 수 있으니까.
병들고. 몹쓸 짐승을. 싼 값에 사와서.
그것을 비싸게. 덤탱이를 씌워서 사람들에게 판매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환치기도 하였다.
제사를 드리려면. 성전세를 바쳐야 했는데.
이것을 위해서. 높은 환율로. 많은 수수료를 받고 사람들에게. 장사를 했다.
그런 측면에서. 그들은.
고리대금업을 하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의 재산을 탐닉하고.
그들의 피와 살을 빨아먹는. 기생충/진드기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마지막 날/심판의 날이 다가오자.
자기 행동을 돌이키고. 지혜롭게/슬기롭게 행동하는데.
이 사람들은. 끝까지. 자기 고집을 피우며 살아간다.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채.
"불의한 방식으로. 불의한 목적"으로 자신의 재산/부를 늘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돌려까는> 목적으로.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들도. <불의한 재물>을 가지고. 이렇게 지혜롭게/슬기롭게 살아가려고 하는데.
너희들은. 빛의 자녀라고 하는 놈들이.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끝까지 자기 욕심으로 살아가려고 하냐?"고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그들은.
<불의한 청지기>나. <불의한 주인>보다.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마지막 때에. 자신에게 임박한 심판과 멸망을 보고서.
그것을 통해. 지혜롭게 선용하려고 하는데.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배를 채우고.
여전히 자신의 이속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한다.
"오늘 나는/우리는. 부정한 방식으로. 불의한 방법으로.
재산을 늘리고. 부를 축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고. 그들의 등을 처먹는 것이.
아주 일상이 되고. 관용이 된 사회 속에서.
오늘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말씀을 읽으며.
간사로 살아가며. 사실 나에게 이런 유혹이나. 걸림이 될 것은 많이 없겠지만.
그래도 이 시간. 나의 삶을 살피고. 나의 삶을 돌아보길 원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느새 나도. 세상의 이치와 물정에 밝아질 때가 많은데.
오늘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
세상의 거대한 악과 구조 속에서.
오늘 우리는.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단념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사명과 부담을 따라.
정직하고 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을까?
나는 오늘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정직한 길을 걸어가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삶과 사역을 통해서.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정의/샬롬이 임하면 좋겠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정직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재물/지혜를 따라서.
이것을 바르게 선용하고. 이것을 바르게 사용하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이 찬양의 고백이 마음 가운데. 계속 생각나는 것 같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오 주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오 주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님 앞에서. 멀리하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그 구원의 기쁨. 다시 회복시키시고. 변치않는 맘. 내 안에 주소서."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정직하고. 지혜로운 마음 주시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