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2(금) 눅 19:28-40
눅 19:28-40
스가랴 9장 9절을 보면.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도성 시온아. 크게 기뻐하여라.
도성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공의로우신 왕.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시다.
그는 온순하셔서. 나귀 곧 나귀 새끼인.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이것은 메시아의 도래와. 그의 오심을 나타내는 말인데.
오늘 본문에 기록된 예수님의 모습이. 딱 그러하다.
그가. 아무도 타 본 적이 없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도래하여. 그 성에 입성하는 모습.
그는. 로마 황제처럼. 위대한 대관식을 한 것도 아니고.
그는 힘있는 군주처럼. 화려한 입성식을 한 것도 아니다.
그는 그저.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이 땅에 오셨으며.
자신의 힘과 능력을 자랑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이 땅을 살아가며. 자기 십자가를 지셨다.
태어날 때에도. 베들레헴 작은 성읍에서.
말 구유에 누워. 조용히 태어나시더니.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도. 작은 나귀 새끼 한마리를 타고 오시고.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삶을 마감하며. 하나님을 따르던 모습.
이것이 오늘 본문에 기록된 예수님의 모습이며.
이것이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예수님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람들이 생각할 때. 예수님의 모습은. 보잘 것 없고. 흠 투성이일 것이다.
마치. 이사야서 53장에 기록된. 종의 모습처럼 말이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사 42:1)"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예수님의 모습은.
보잘 것 없고. 미련하고. 흠 투성이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우리 하나님이 바라보실 때는.
십자가를 지고.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예수님의 모습이.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누구보다 귀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하나님 앞에서. 이와 같은 삶 살아가길 소원한다.
오늘 우리가. "어떤 집"에 사는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오늘 우리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오늘 나의 모습이 어떻게 보여지고.
사람들이 느끼기에. 오늘 나의 삶이 어떻게 느껴지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주님 앞에서. 오늘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이니.
오늘 우리가.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던 것처럼.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이 땅을 살아가면 좋겠다.
그리스도의 오심이.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과 사역이. 하나님 앞에서. 그랬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삶이. 정말 이 땅 가운데 평화를 가져오고. 하나님께는 기쁨이 되는.
그런 나의 삶이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도. 아기 예수로 오신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나귀를 따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그분을 향해 함께 찬송을 부르며.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고. 소망이 되길 기도한다.
그렇기에. 이 아침. 이 찬송을 부르며. 주님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어린 양을 따르리. 온 맘 다해. 온 힘 다해.
그의 명령에 순종하리. 나는 어린 양을 따르리"
오늘 하루.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 따름과 그를 높이는 찬양 소리 가득하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나는 어린 양을 따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