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누가복음

2025.04.22(화) 눅 24:36-53

The Sabbath 2025. 4. 21. 15:44

눅 24:36-53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들은 한곳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인지" 함께 묻고. 답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오늘 본문 바로 앞부분. 34절을 보면.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고 제자들이 얘기하는데.
이 일에.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함께 증인으로 참여한다.

"주께서 말씀을 풀어주실 때. 우리의 마음이 다시 뜨거워진" 것과.
"주께서 축사하여. 떡을 떼실 때. 우리의 눈이 밝아져 그가 예수인 줄 알았다"는 것을.
증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얘기를 온전히 받아들이진 못하였다.
왜냐하면? 세상에 그런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한번 살고. 한번 죽는 거지. 어떻게 사람이 다시 살 수 있냐?"며.
"혹시라도 너희가. 헛것을 본 것은 아닌지?"
제자들에게 묻고. 따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우리 주님이.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오시는데.
이 일로 인해. 그들은. 정말 깜짝 놀라 죽을 것만 같았다.
"아니. 어떻게 예수님이 여길 찾아올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이분이 정말 예수님이 맞는지. 의심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37절을 보면.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37절)"라고 하는데.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제자들의 첫 반응이었다.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등장 앞에 두려워 떨기 시작했으며.
예수님을 한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떨기 시작했다.

이에 우리 주님이. 당신의 손과 발을 내밀며.
"나인지 직접 확인해 보라"고 하는데.
제자들은 그제서야. 이분이 우리 주님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다른 사람을 통해/귀로' 전해들었다면.
이제는 그들의 눈이. 예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고.
우리 주님과 함께 식사를 하며. 우리 주님과 함께 머물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 주님이.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말씀을 나눌 때에.
<한 가지 부탁/당부의 말씀>을 하신다.
그것은 "너희가 부활의 증인이 되어. 이 복된 소식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누가복음에만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에 기록된 공통된 말씀이다.

실제로 마태복음 28장 20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아버이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라(마 28:20)"하시고.

사도행전 1장 8절에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하셨는데.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당신의 약속/생명의 말씀이다.

내가. 듣고 보고 배운 것을.
우리가 전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 수 없으며.
하나님 나라 복음은.
나 혼자 얻고. 나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가운데.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우리를 당신의 <제자/증인으로 삼아>
하나님 나라 복음을 힘있게 전하기 원하시는데...
이 일을 위해서는. 오늘 우리 가운데.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임재>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라 고백할 수 없으며.
성령의 충만함과 임재 가운데 거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언제든지 육체의 소욕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49절을 보면.
우리 주님이. "너희가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는 말씀을 하시고 난 다음에.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고 하시는데.
나는 이 고백이. 오늘 우리 삶 가운데 실제가 되고. 능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실제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오늘 내게 주어져 있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이 얼마나 많은가.
말씀을 준비하고. 설교를 전하는 것과.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증거하고.
그들을 세우고. 그들을 주의 제자로 빚어가기까지.
오늘 우리에게 수많은 싸움과. 수많은 길이 주어져 있다.

아무리 자기 관리를 잘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을 감당할 수 없는 일이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오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나는 하루에 세 시간씩 기도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였는데.
어쩌면 오늘 우리의 일상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해야 할 일이 많고. 나를 찾는 사람이 많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과.
우리가 책임져야 할 일이 많은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덧입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장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야 오늘 우리가. 낙심의 늪에 빠지지 아니하고.
하나님 안에서. 능력 가운데/담대히. 주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예수의 능력으로 새로워지고. 예수의 능력으로 견고해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분의 뜻을 온전히 헤아릴 수 있는.
영적인 눈과. 영적인 혜안이 밝아지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주님 주시는 힘으로 담대하고. 주님 주시는 힘으로 새로워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백하였던 것처럼.
"우리의 육신은 후패하나. 우리의 영은 날로 새로워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영혼이. 주님 안에서 담대해지고. 깊어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주가 주신 능력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원수가 날 향해와도. 쓰러지지 않으리.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일어서리.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주가 주신 능력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원수가 날 향해와도. 쓰러지지 않으리.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일어서리"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서고. 예수의 능력으로 새로워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feat. 예수의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