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2:1-13
'나훔'서를 잘 보지 않기에.
그 내용이나. 문학적 표현을 크게 주목한 적은 없었다.
근데. 오늘 본문을 읽어보니. 나훔 선지자의 글빨/말빨(?)이 장난 아니다.
어쩜 이렇게. 생생하고.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오늘 본문 처음부터 그렇다.
'적군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에. 니느웨는. 애를 써서. 이것을 막아본다.
하지만. 나훔 선지자가 이렇게 말한다.
"성을 지켜보려무나. 길을 지켜 보려무나.
허리를 질끈 동이고. 있는 힘을 다하여 막아 보려무나. 니가 별 수 있나.(1절)"
조롱의 말이다. 그들이 그렇게 애를 쓰고. 용을 써봐야 별 수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끝난 게임이니까...
그렇기에. 나훔 선지자는.
그날의 모습을. 세세히 그림 언어로 설명한다.
전쟁에 관한 기록뿐만 아니라.
니느웨 성 사람들이 비탄에 빠져 있는 모습까지(3-10절).
마치. 내가 진짜 그곳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리고. 11절부터 13절까지. 니느웨 성에 대한. 총평/비평이 이어지는데.
여기서 이 말씀이. 나에게 '턱'하니 부딪혀 온다.
왜냐하면. 니느웨의 잘못이. 멀리 있지 않고.
바로 내 안에. 또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문 말씀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수사자가. 새끼에게 먹이를 '넉넉히' 먹이려고. '숱하게' 죽이더니.
수사자가. 암컷에게도 '많이' 먹이려고. '많이도' 죽이더니.
사냥하여 온 것으로. 바위 굴을 '가득' 채우고.
잡아온 먹이로. 사자굴을 '가득' 채우더니(12절)"
생각해 보면. 이게 뭐가 잘못 되었을까 싶다.
어쩌면. 니느웨의 모습은. 힘있는 아버지. 용감한 아버지.
능력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었으니까.
내 새끼. 내 가족. 내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내가 애쓰고. 수고하고. 노력한 것이 뭐가 잘못되었단 말인가.
니느웨는. '자기애'와 '가족애'로 똘똘 뭉쳐 있었고.
그는. 가족들 앞에선. 더할 나위 없는. Best. 최고의 아빠였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이건 아니었다.
"야! 니 새끼만 소중하고. 남의 새끼는 소중하지도 않냐.
니 새끼만 사람 새끼고. 다른 사람 새끼는 사람 새끼도 아니냐.
니들만 그렇게 잘 먹고 잘 살면 되냐.
니가 잘 먹고 잘 살려고. 다른 사람 눈에 그렇게 피눈물 흘리게 해서 되냐!"
하나님은. 결국. 자기 밖에 모르는 니느웨 사람들을 향해. 심판의 칼을 건냈다.
그리고 그들은. 연기와 함께 이땅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무엇때문에?
자기들밖에 모르는. 그들의 이기심 때문에.
자기 새끼 소중한 줄 알면서. 남의 새끼 소중한 줄 모르는. 그들의 무지 때문에.
적당히 먹지 않고. '더 많이', '더 많은 것'을 채우고 가지려는.
그들의 탐욕 때문에 말이다.
그런데. 그들의 이런 마음이. 내 안에 또 우리 안에 있다.
실제로. 오늘 우리는. 내 새끼/내가족/내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살아간다.
훌륭한 모습이다. 책임 있는 어른의 모습이며. 아주 멋있는 모습이다.
그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칭찬 받고, 각광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선 안 된다.
내 새끼 소중하듯. 다른 새끼도 소중하고.
내 가족 중요하듯. 다른 가족도 중요하고.
우리 공동체가 중요하듯. 다른 공동체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시간이 흘러갈수록.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다.
'자기 중심주의, 지역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다.
'죽고 살기' 위해. Zero sum 게임. 치킨 게임을 할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환경/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기 살 길에 바쁘고.
내 새끼. 내 가족. 내 공동체. 내꺼. 내꺼에만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마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장 같다.
"수사자가 새끼에게 먹이를 넉넉히 먹이려고. 숱하게 죽이더니.
너도 그러느냐.
사랑하는 자녀를 향한. 네 마음/애정은 알겠다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더냐..."
바라기는...
자기밖에 모르는. 우리의 이기심과 탐욕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자족하며. 감사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기도한다.
인간의 번영과 풍요로움을 위해.
무분별하게 자연을 개발하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을. 아름답게 돌보고 가꾸는 청지기가 되길 기도한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길. 그것이 하나님 나라로 향하는 길이며.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공의와 평화를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간다(사 11:1-9).
(feat.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나훔'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08.29(토) 나 3:8-19 (0) | 2020.08.29 |
---|---|
2020.08.28(금) 나 3:1-7 (0) | 2020.08.28 |
2020.08.26(수) 나 1:9-15 (0) | 2020.08.26 |
2020.08.25(화) 나 1:1-8 (0) | 2020.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