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고린도후서'에 해당되는 글 41건

  1. 2023.04.11 :: 2023.04.11(화) 고후 13:11-13
  2. 2023.04.10 :: 2023.04.10(월) 고후 13:5-10
  3. 2023.04.08 :: 2023.04.08(토) 고후 12:19-13:4

고후 13:11-13

사도는.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마무리한다.

"형제자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나는. 사도 바울의 이 축복과 권면이.
오늘 우리 공동체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길 기도한다.

특별히. 다음주면 전국간사수련회를 고양에서 갖게 되는데.
간사수련회를 준비하면서. 오늘 우리 안에 여전한 긴장과 부담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오늘 우리는. 언제쯤. 서로를 마주하고. 축복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기쁜 일이 될 수 있을까?

남녀노소. 연차와 지역을 불문하고.
언제쯤 우리는.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축복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를 환대하며.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서로> 격려하고.
<같은 마음>을 품고.
<화평>하게 지내고.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며/인사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가. 오늘 우리 가운데. 온전히 부음바 되며.
우리 공동체가.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 되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 가운데 언제쯤. 자연스럽고. 기쁜 일이 될 수 있을까?


바라기는. 나는 우리 공동체가.
이 일이. 억지로/의도적으로/힘을 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이. 오늘 우리에게. 옷을 입은 것처럼.
정말 자연스럽고.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 공동체를 찾아올 때마다.
하나님의 품을 찾아가는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고.
누구든지. 이 공동체를 찾아. 주님을 찾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마다.
이 공동체가 오아시스 같고. 옹달샘 같은.
그런 공동체가 되고. 그런 위로의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측면에서. 이 소망과 기도를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길 소원한다.

특별히. 오늘도. 오송과 대전을 다녀오며.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될 텐데.
우리 가운데. 주님이 일하시고.
우리 가운데.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나타나며.
오늘 우리의 만남과 대화 가운데. 성령께서 이 모든 시간을 주장하시며.
오늘 우리 가운데. 온전한 회복과 샬롬이 나타나길 기도한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이 찬양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나아간다.

"평화.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의 삶에. 넘쳐나기를.
평화.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의 삶에.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평화와 평강 내려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평화 하나님의 평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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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13:5-10

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냉정하게 혼을 내고. 책망을 하다가도.
이내. 그 마음이. 누그러지고. 짠한 마음으로 돌아서기도 하였다.
사도는. 고린도 교회 때문에. 정말 '애'닳는 삶을 살았으며.
고린도 교회 때문에. 사도의 마음은.
한시도 편하고. 한시도 어려움을 겪지 않은 적인 한번도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사도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사도는 왜 이렇게. 굳이 힘든 삶을 살았던 걸까?"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사도는. 엘리트 집안 출신으로서. 그의 미래는. 안정되게 보장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이 그를 주목하고 있었으며. 많은 사람이. 그를 떠받들고 있었다.

그런 사도가. 만약.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에 어떤 변화가 펼쳐졌을까?
사도가 만약. 예수 그리스도를 믿긴 믿되.
그냥. 자기 인생 속에서. 편안하게 안정되게 살았다면.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았을까?

그런 측면에서. 사도가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며 사는 것은.
어찌 보면. <사서 고생> 하는 짓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사도가 혼자 괜히 사서 고생하는 것 같고.
이렇게 해서. 사도에게 어떤 유익이 있고. 어떤 보상이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도는. 이 일을 결코 부끄럽게 여기고. 또 후회하지 않았다.
사도는.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을.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하였으며.
이 일을 통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며. 지체들을 사랑으로 섬기며.
말씀으로 가르치고. 그들을 든든히 세우고자 하였다.

그렇기에.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마무리 하며. 이와 같이 말한다.

"하나님이 저를 사도로 세운 것은…
하나님이 저에게 사도의 역할과 책임을 맡기신 것은…
여러분을 넘어뜨리거나. 여러분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이 역할과 책임을 맡기시며…
주님이 저에게. 이 권위를 주신 것은.
여러분을 세우고. 여러분을 든든히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믿음 안에 든든히 서고.
하나님 안에 견고히 서기를 바라고. 소원할 뿐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악을 저지르지 않게 되기를.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따름이며.
우리는. 여러분이. 하나님 안에서. 온전하게 되고. 완전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할 따름입니다.

이 일에. 내 육신을. 전제로 드리더라도. 나는 결코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며.
이 일을 통해.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견고히 서고. 든든히 설 수 있다면.
나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내 마음이 정말 기쁘고.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은. 자기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해보고. 스스로 검증해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믿음 안에 견고히 서 있기를 바랄 뿐이며.
저는. 이 일을 위해. 앞으로도 언제든지.
정말 최선을 다해 섬기며. 정말 최선을 다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사도 바울의 고백이.
오늘 나의 고백되고. 오늘 우리 공동체의 고백이 되길 소원한다.

실제로. 오늘 우리 삶을 되돌아 볼 때.
오늘 우리 삶에. 안정적이고. 여유로워 보이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캠퍼스 사역을 하며.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며.
경제적으로도. 여유롭고. 안정적인 것도 아니며.
미래를 향해서도. 어떤 큰 보탬이 되거나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측면에선. 정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것 같고.
누군가의 말처럼. 이력서에. 경력 한 줄 넣기도 쉽지 않은 직업이다.

근데. 대학을 졸업하고. 어찌보면. 안정된 직장과 미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사로 지원하고. 캠퍼스 사역을 하고 있는 이유/까닭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시고 부르셨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복음 안에 온전히 서고. 바르게 설 수 있다면.
이 일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기쁘게 섬기겠다는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하였고.
학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변화되고. 회심할 수만 있다면.
이 일에 우리의 삶을. 기꺼이 드리고. 기꺼이 쓰임받길 원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때때로. 우리의 마음이. 쭈글어들고. 위축될 때마다.
오늘 우리를 세우고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길 원한다.
사도 바울이. 나를 세우고. 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세우고.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기쁨이요 소망이라고 했던 것처럼.
오늘 나의 삶도 하나님 앞에서 그러하길 소원하며.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가. 악을 저지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영혼이. 안전하고. 완전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눈물로 기도했던 것처럼.
오늘 나의 삶도.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며. 그와 같은 기도를 드리길 소원한다.


그래서일까?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이 찬양의 고백이 마음 속에 계속 피어나는 것 같다.

"내 삶의 소망. 내가 바라는 한 분. 예수 닮기를 내가 원하네.
한없는 사랑. 풍성한 긍휼. 예수 닮기를 내가 원하네.
예수 닮기를. 예수 보기를. 예수만 높이길. 내가 원하네.
내 평생 소원. 예수 닮기를. 예수만 닮기를. 내가 원하네.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성품. 예수 닮기를 내가 원하네.
자비하시고. 위로 자 되신주. 예수 닮기를 내가 원하네.
예수 닮기를. 예수 보기를. 예수만 높이길 내가 원하네.
내 평생 소원. 예수 닮기를. 예수만 닮기를 내가 원하네.

완전하신 예수. 새롭게 하시네. 연약한 내 영혼 온전하게 되리.
예수 닮기를. 예수 보기를. 예수만 높이길 내가 원하네.
내 평생 소원. 예수 닮기를. 예수만 닮기를 내가 원하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은혜. 이와 같은 소망 더해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예수 닮기를(내 삶의 소망 내가 바라는 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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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12:19-13:4

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애정어린 권면을 한다.
그것은. "내가 가서 여러분을 볼 때에.
혹시라도. 여러분이. 나의 기대와 생각에 어긋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가. 정말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에.
그들 가운데. 비방과 수군거림과 무질서와 교만이 없기를 바라며.
혹시라도. 고린도 교회가. 여기서 무너지고 실패했다면.
고린도 교회가. 거기서 돌이키며 회개하고. 다시금 하나님 앞에 나아오고 반응하기를.
사도는 간절히 바라고. 또 소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이렇게 간절히/간곡히 부탁한다.

"여러분 <내가> 갔을 때 <두려워하는 것>은. 여러분이 요모양 요꼴로 사는 것이며.
내가 갔을 때. 여러분에게 이러이러한 일들이 일어날까봐. 저는 그게 <걱정되고 불안하며>.
이러이러한 일들 때문에. 제가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지 않을까.
그게 <염려>되고. 그게 <두렵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제발 이런 일이 없게 하여 주십시오."


그런 측면에서. 누군가는. 사도를 향해.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다.
"사도가. 고린도 교회를 못 믿는 거 아니야?
왜 이렇게 부정적인 말을 쓰고. 왜 이렇게 부정적인 정서를 흘려 보내는 거야?
만약. 고린도 교회를 믿고 신뢰한다면. 그냥 믿고 지켜보면 되지. 왜 이렇게 구구절절 말이 많고.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왜냐하면. "노심초사/조바심"을 갖는 것은.
그 사람을. 절대로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표현/표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애정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간섭이라 생각하고. 그의 권면을 무시하고 외면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님의 삶이 그러지 않았는가.
우리 주님이. 가룟 유다를 향해.
"너가 그렇게 살지 않고. 회개하면 좋겠다"고 했을때.
가룟 유다가. 얼마나 그를 무시하고. 그를 업신여겼는가.

우리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회개하고 돌이키면 좋겠다"고 했을 때.
그들이. 얼마나 우리 주님을 무시하고. 그를 쌩까고 매몰차게 대했는가.

그런 측면에서. 사도는. 고린도 교회의 반응과 대응을 바라보며.
우리 주님의 마음을 함께 묵상했을 것 같다.
자기 손으로 지은 백성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자기 손으로 지은 백성들에게. 외면 당하고 멸시를 당하면서도.
그들이 돌이키고. 회개하기를 바라는. 우리 주님의 마음 말이다.

그렇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을 묵상하며.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이와 같이 말한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히 12:3)"


그런 측면에서. 이 말씀은.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를 향한 말씀이기도 하다.

실제로. 오늘 우리 삶에. 누군가를 향한 관심과 애정 때문에.
그 사람에게 권면을 하고. 그 사람에게 당부를 하는 적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우리의 권면은. 한 귀로 들어갔다가. 한 귀로 흘러나올 때가 참 많다.
때로는 누군가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멸시를 당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하는. 현타가 찾아오고. 아찔한 마음이 찾아올 때도 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지금이라도 당장 이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그 사람과. 다시는 연을 맺고 싶지 않고.
그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도 섞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마냥 그렇게 살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낭비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향해서. 당신의 생명과 사랑을 낭비했던 것처럼.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당신의 생명과 애정을 낭비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 주님도. 우리에게. 이와 같은 길로 초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주님 앞에. 사랑의 영을 구하고. 사랑의 마음을 간절히 사모한다.

오늘 하루. 어찌 내 힘으로 형제자매를 사랑하며. 그들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오늘 하루. 나를 거역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어떻게 인내와 오래 참음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품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나의 힘과 노력으로는 불가하다.
오직 주의 영이. 내게 기름부음바 될 때.
그때 비로소. 우리가 주님의 길을 걸어갈 수 있고.
오직 주의 마음이. 우리 마음 가운데 충만히 흐를 때.
그때 비로소. 우리가 주님 안에 승리할 수 있고. 평안을 구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주의 사랑과 은혜가 온전히 부음바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 사랑의 은혜를 부어 주시고.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마음을 부어 주시고.
주께서 우리 가운데. 한 영혼을 향한 진실함과 애절함을 부어주시고.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은혜와 평화를 내려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날 사랑하신 주님의 그 큰 사랑으로)

posted by The Sabb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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