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 안에서, 정치와 종교는 작동될까?
수용소 안에서, 정치와 종교는 어떤 의미일까?

 

빅터의 말에 의하면.

정치는 모르겠으나. 종교는 매우 유의미한 활동/시간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음 막사 귀퉁이나. 자물쇠가 채워진 컴컴한 가축운반용 트럭 안에서도 기도를 드렸으며.

넝마같은 옷을 입은 채. 피곤하고 굶주리고. 얼어붙은 몸을 이끌고. 예배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p.73)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그 지친/피곤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게 하였을까?

"우리가 왜 이런 상황 속에 있는지. 하나님은 도대체 뭐하시는건지.

God damm이라 말하며. 저주하고. 믿음을 떠나도 모자랄 판에"
그들은 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었을까?

이들의 믿음. 신앙이 정말 투철하였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은 하나님 한 분밖에는. 하나님 외에는. 달리 자신들의 마음을 둘 곳/의지할 곳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갈망하였다.

그 마음이. 기도의 자리로. 예배의 자리로. 투영된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떠할까?

학자들은 말하기를. 세계사를 되돌아볼 때. 이처럼 오랫동안 전쟁이 없었던 때는. 없었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태평성대'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의 척도는 어떠할까?

고난과 신앙은. 비례관계일까. 반비례관계일까?

하나의 그래프로. 일반화 시킬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고민하고. 생각해 볼 지점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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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안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목숨을 부지하는 일'

그것 외에는 다른데 관심을 둘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정서가 완전히 메마르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서를 돌보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되었다.

 

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프랭클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챗바퀴 돌듯이, 반복되는 일상. 의미없는 하루가 오늘도 반복되고 있었다.

 

그랬던 그에게. 충격적인(?) 그리고 인상깊은 하루가 주어졌다.

그것은. 오랫동안 살았던, 또 수용소에 끌려가기 전에 살던 집/동네를 지나게 된 것이다.

 

작은 틈 사이로 보이는 하늘.

창문 밖으로 보이는 우리집. 얼마나 그립고 애잖했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빅터에게 작은 양보조차 하지 않았다.

"잠시만요. 저 조금만 앞에서 보면 안 될까요? 여기가 제 고향이에요. 조금만 비켜주세요."
"여기서 살았다고? 그렇다면 벌써 실컷 보았겠네! 저리 꺼져!"

오늘 우리는 무엇이 바빠서. 드넓은 하늘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는 걸까?

가슴을 펴고. 숨한번 크게 쉬어보자.

다 살자고 하는 일 아닌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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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자들은 틈만 나면 '먹는 얘기'를 꺼냈다.

지금은 먹을 수 없지만. 언젠가는 다시 먹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이것이.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준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프랭클은 이것이. 위험한 생각이라 결론내렸다.

"우리 몸이 적은 양의 음식과 낮은 칼로리에 겨우 적응했는데.

맛있는 음식에 대해. 그렇게 자세하고 생생하게 묘사해서. 내장기관에 자극을 주면.

나쁜 결과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p.67)

 

식사를 어떻게 하느냐도 관건이었다.

수용소 생활 후반부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하루에 한 번밖에 빵을 받지 못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지금 당장" 그 빵을 다 먹어치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잠깐 동안이기는 하더라도.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극심한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또. 도둑맞거나 잊어버릴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선. 이 식사를 하루동안.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랭클도 후자에 포함되었다. (p.69)

 

 

어찌 보면. 우리에겐 작은 문제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그들에겐. 생사를 가늠할 문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빅터 프랭클은. '지금의 만족'보다. '지금의 불만족'을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의 마음의 위안/기쁨'보다. '미래의 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선택하는 삶.

 

어쩌면. 이것이. '절제'의 삶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이. '마음의 힘'이 아닐까.

 

빅터 프랭클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가져본다.

"만약, 내가 그런 상황 가운데 있었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싶진 않다.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솔직히 바라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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