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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11.27 :: 2024.11.27(수) 호 8:1-14
  2. 2024.11.26 :: 2024.11.26(화) 호 7:1-16
  3. 2024.11.25 :: 2024.11.25(월) 호 6:1-11

호 8:1-14

솔로몬 왕이 죽은 다음.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눠지게 되었다.

남유다는.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머무르게 되었고.
북이스라엘은. 그밖의 10지파가 함께 하게 되었다.
역사적 정통성은. 남유다에 있었다.
아무래도 다윗의 가문이. 유다 지파 소속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여로보암 1세는.
자신의 왕권/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쓰곤 하였다.

1) 솔로몬 성전에 대항해서. 자신의 정권을 지키기 위한 금송아지를 만들고(왕상 12:26-29).
2) 위도 차이를 고려해서. 이스라엘의 절기(장막절)의 날짜를. 임의로 조정하기도 하고.
(원래 남유다는 7월 15일. 북이스라엘은 8월 15일로 변경)
3) 성전 대신 산당을 짓기도 하고.
4) 레위 족속이 아닌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우기도 했었던 것이다(왕상 12:31).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생각과는. 정 방향이 달랐다.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 애를 쓰고 고생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께 매를 벌고. 하나님께 화를 사곤 했었다.

하나님 입장에선. 참 안타깝고 슬픈 일이었다.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만 가지 율법으로 그를 교훈하고. 경고하곤 했으나.
그들은 그것을. 거들떠 보지도 않으니(호 8:12)"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에브라임은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그에게 범죄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11절)"

새번역을 보면. 이 말씀이. 더 실감나게 번역되어 있다.
"에브라임이 죄를 용서받으려고 제단을 만들면 만들수록.
늘어난 제단에서 더욱 더 죄가 늘어나니(11절, 새번역)"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그렇기에 그들의 지난 역사는. 슬픔과 회한의 역사로 가득 찰 뿐이다.

"그들이 왕을 세웠으나. 그것이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그들이 지도자를 네웠으나. 내가 모르는 바이며.
그들이. 은과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결국은 파괴되고 말리라.
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려졌느니라.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장인이 만든 것이니.
참 신이 아니요. 우상일 뿐이니라.
그것은. 어느 순간. 결국 산산조각 날 뿐이니.
아무런 영양도 없고. 아무런 효험도 없으리라.

이스라엘이 <바람을 심었으니>. 그들이 <광풍으로> 그 결과를 얻을 것이요.
<줄기가 없으니. 이삭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이며. 그들의 현실이니라"


그런 측면에서.
<방향을 잃어버린 열심>이. 얼마나 파괴적인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방향을 잃어버리고. 열심히 노를 저으면 뭐한단 말인가.
길을 잃고. 제자리만 뺑뺑 돌 텐데 말이다.
산을 오르기 위해서. 열심히 걷고. 뛰면 뭐한단 말인가.
지도를 보지 않고. 나침반을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테인데.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유익/어떤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오늘 우리의 삶의 목적과 우선순위/향방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원한다.

오늘 우리는. 무엇에 열심을 내고 있는가.
오늘 우리 인생의 목적과 소망은 무엇인가.
그것이 오늘 우리 삶에. 하나님과 어떤 상관/연관이 있는가.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인생을 바라보며.
뭐라 말씀하시며. 뭐라고 응답하실까.

바라기는. 오늘 우리 삶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그런 무익한 인생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주의 말씀 앞에. 겸손히 반응하며.
주의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두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삶이. 주님 안에서 <열매를 맺고.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우리 삶이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런 무관한 삶. 그런 무익한 삶으로 전락하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오늘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모든 환난 가운데. 너를 지키는 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
놀라지 말라. 네 손 잡아주리라.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모든 환난 가운데 너를 지키는 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
놀라지 말라. 네 손 잡아주리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너를 사랑하는 네 여호와라"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님 안에 거하며. 주와 더불어 사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주님 앞에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님 앞에 올려드리길 원한다.

(feat. 나의 안에 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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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7:1-16

빛이 밝을수록. 어둠은 더 밝게 드러난다.
흐린 빛 아래서는. 이게 어둠인지 깨닫지 못했지만.
밝은 빛 아래선. 그것이 어둠인 것이. 분명히 드러나고.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더 분명히 드러나고. 더 선명히 나타나는 것 같다.

그래서 태양이 비치면.
눈에 보이지 않던. 먼지 한 올 마저도 눈에 보이지 않던가.
그것이 빛의 위력이다.
빛은 어둠을 파하는 능력이 있으면.
빛 가운데 어둠은 함께 거할 수 없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그러하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를 가리켜.
아무런 문제도 없고. 아무런 흠도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였지만.
주님의 빛이 비치자. 그들의 어두움이. 밝게/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이. 그것이지 않은가.

1) 그들은. 서로 속이고. 도둑질하는 사람들이었으며(1절)
2) 그들은 왕을 갈아치울 목적으로. 악한 음모를 품고 살았고.
왕을 기쁘게 하며. 왕을 즐겁게 한다고 하지만.
그 안에는 왕을 향한. 악한 생각과 온갖 기만으로 가득해 있었다(3, 6절).
3) 그들은. 발정난 개처럼. 늘 성욕이 달아올라 있었고(4절).
술과 향락과 잔치에 빠져서. 백성을 돌보고 살피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5절).
4) 이스라엘이 이방의 공격을 받고. 침입을 받을 때에도.
그들은 아무런 생각도 없고. 자각도 없었으며(8-9절).
5) 하나님을 찾고. 주께 돌아오지도 않는다(10절).
오히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찾으며.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기며 경배하곤 하였다(11절).

그러니 그들의 인생에. 어찌 하나님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근데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빛이 비치자. 그때 드러나기 시작했다(1절)"
"주께서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그때 이스라엘의 악과 죄악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며(1절)
주께서 그들 가운데. 드러내시고 밝히기 시작할 때.
그때 그들이 자기의 죄악을 분명히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니. <주님의 빛>이 비치는 것이.
어찌 우리에게. 수치와 부끄러움이 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오늘 우리의 마음을. <잠시/아주 잠시> 불편하게 할지 몰라도.
그것은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빛/치료의 광선>이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 빛을 드러내실 때.
그때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생명의 빛을 창조해 내시며.
주께서 우리 가운데. 치료하시고. 우리를 고쳐주실 때.
그때 우리가 나음을 입고. 생명을 입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어제 우리가 살펴봤던 말씀.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주께서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이다(호 6:1)"라고 하는 것은.
단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심판/책망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를 살리기 위한.
우리 주님의 치료의 빛/생명의 광선이며.
오늘 주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고. 통치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나음을 얻고.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아침. 주님 앞에 나아가며.
주님의 빛이. 오늘 우리 영혼 가운데. 온전히/선명히 비치길 소망한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주께서 우리의 심령 가운데 찾아오실 때에.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대답할 수 있겠는가.

바라기는.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있는.
어두움과 무질서와. 혼돈과 악한 마음들을 모두 몰아내시고.
오늘 우리의 심령 가운데.
<생명의 빛. 밝음의 빛>을 창조해 주시면 좋겠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며.
사망이 생명을 이기지 못함처럼.
오늘 우리 가운데 있는. 어두움과 사망의 늪으로부터
 주께서 우리를 건져주시며.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음을 입고. 생명을 얻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우리를 향해. 다가오시는.
우리 주님의 손길과. 우리 주님의 팔을 뿌리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우리 주님의 팔에 안기며. 우리 주님의 손을 붙잡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아침.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이 찬양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서길 원한다.

"빛 되신 주. 어둠 가운데 비추사. 내 눈 보게 하소서.
예배하는 선한 마음 주시고. 산 소망이 되시네.
나 주를 경배하리. 엎드려 절하며. 고백해 주 나의 하나님.
오 사랑스런 주님. 존귀한 예수님. 아름답고 놀라우신 주.

만유의 높임을 받으소서. 영광 중에 계신 주.
겸손하게 이 땅에 임하신 주. 높여 찬양하리라.
나 주를 경배하리. 엎드려 절하며. 고백해 주 나의 하나님.
오 사랑스런 주님. 존귀한 예수님. 아름답고 놀라우신 주.

나 주를 경배하리. 엎드려 절하며. 고백해 주 나의 하나님.
오 사랑스런 주님. 존귀한 예수님. 아릅답고 놀라우신 주"

오늘 하루. 빛되신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밝히시며.
오늘 우리의 심령이. 주님 안에서.
온전히 거듭나고 새로워지길 주님 앞에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빛 되신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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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6:1-1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치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 6:1-3)"

우리는 때마다 이 말씀을 외친다.
수련회 때나. 부흥회 때나. 혹은 신년 사경회 때마다.
우리는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그의 백성이 되고. 그의 자녀가 되길 원한다고 소리친다.

하지만. 우리의 다짐은. 작심삼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오늘 이스라엘의 모습이 그렇다.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호세아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
그들이 왜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겠는가.
그들은 전심으로 돌이키고. 전심으로 주께 돌아오는 듯 하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이 그것을 증명한다.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과 같으니.
내가 너희를 어떻게 하는 게 좋으랴"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과 삶이 분리되었고.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다짐은.
아침 안개처럼. 쉽게 사라지고. 쉽게 흩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과 삶이 분리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과 슬픔의 눈물을 짓고 계시는데.
오늘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그들의 영적 상황/그들의 현실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어떤 사람들은.
"회개"의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말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이다.
말이 아닌 행동이 중요하지. 말 뿐인 회개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맞다! 우리가 그것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말뿐인 회개가 아무 소용 없듯이.
고백없는 삶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다짐과 소망으로 살아가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회개가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회개를 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에 우리의 마음을 싣는 것이 중요하고.
고백 위에 우리의 삶을 더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에 성령을 더하고.
말씀 가운데 은혜를 더하며.
고백 가운데 삶의 열매와 거듭남을 더해갈 때.
그때 비로소 우리의 삶이.하나님 앞에 빛나고 밝게 비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의 삶이.
하나님 앞에 쉽게 흩어지는. <아침 안개>와 같은 삶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삶이.<반석 위에 집>을 짓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율법의 말씀을 <돌판 위>에 새기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 말씀을. <우리 마음 판 위>에 새기고.
<우리 마음 판> 가운데 뿌리를 내리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숱한 다짐과 회개와.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분출해내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삶이 하나님 앞에. 열매를 맺고 결실을 맺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내 백성이 나를 떠나. 돌아섰지만.
내 사랑이 내 백성은. 포기 못 하니.
내 모든 것 내어주고. 나 그들을 얻으리라.

여호와께 돌아가자. 우린 돌아서도 그는 변치 않네.
여호와께 돌아가자. 우린 넘어져도 그 사랑 영원하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회개에 진심을 더하며. 삶에 뿌리를 내리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드리길 원한다.

(feat. Love never fails)

posted by The Sabb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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