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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16 :: 2019.11.16(토) 룻 4:13-22
- 2019.11.15 :: 2019.11.15(금) 룻 4:7-12
- 2019.11.14 :: 2019.11.14(목) 룻 4:1-6
룻 4:13-22
"쓰라린 상처"로 가득했던. 나오미 인생에.
볕이 들기 시작했다.
룻 덕분이었다.
그는. 어머니를 향한 사랑 때문에.
이스라엘에 머물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런 룻의 인애(헤세드)를. 귀히 여기셨다.
룻 뿐만 아니라. 보아스의 사랑 또한 크다.
그는 모압 여인 룻을 향해.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었고.
룻을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러자 이웃 여인들이 이렇게 말한다.
"이 아기가 그대에게 생기를 되찾아 줄 것이며.
늘그막에 그대를 돌보아 줄 것입니다."
그렇게. 아이의 이름을 직접 지어주며.
이것이 자신들의 일인 마냥. 함께 즐거워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향해. 탄식과 절망으로 가득했던.
나오미 인생에.
다시금 주를 향한 노래가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되찾고. 잔치를 여는 것처럼.
또.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고. 축제를 여는 것처럼.
기쁨의 노래가 베들레헴에 울려 퍼지고 있다.
오늘 우리 인생에도 이런 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
주변을 둘러보면.
하나님을 향해 깨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바라기는. 그들의 삶에.
기쁨의 노래가 울려 퍼지길 기도한다.
"주님께 속량받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이 기뻐 노래하며 시온에 이를 것이다.
기쁨이 그들에게 영원히 머물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칠 것이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질 것이다(사 35:10)"
는 이사야 선지자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구원. 은혜의 고백이.
오늘 우리 삶에 가득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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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 4:7-12
재판의 결말부이다.
집안간으로서 첫 번째 책임이 있는 사람이.
그 역할을 외면하자.
보아스가. "그 자리에서 바로" 승계하였다.
"나는. 엘리멜렉의 모든 것과.
기룐과 말론의 모든 것과.
말론의 아내인 모압 여인 룻도 아내로 맞아들여.
그 유산이 고인의 이름으로 남아 있도록 하겠습니다.
고인의 이름이 이 땅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얼마나 멋지고. 책임있는 자의 모습인가.
1)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보호를 받으러(룻 2:12) 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옷깃을 펴서. 그들을 직접 안아주었고.
2) "당신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으소서(룻 3:9)"라는 룻의 간구를.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품어준 것이다.
이러한. 보아스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한다.
소망이 없는 자들에게.
당신은 자기 목숨을 댓가로 우리를 구속하셨고.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의 이름이 끊이지 않도록 하셨다.
찬송가의 한 가사처럼.
메마른 땅. 저 위험한 곳에선.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는.
하나님의 은혜(헤세드)를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니. 성읍 원로들/사람들의 뒷 이야기들도.
천사들의 화답처럼 들린다.
아름답고. 또 감사하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런 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
주님의 날개 아래로 피하는 자 되기를.
당신의 옷깃으로 우리를 덮어주시길 간구하기를.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찬양하기를.
우리가 그러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기를.
소망하며. 이 노래를 주님께 드린다.
(feat. 하나님의 그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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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 4:1-6
재판이 열렸다.
보아스는.
집안간으로서 첫번째 책임이 있는 사람을 불렀고.
성읍 원로 10명도. 함께 앉혔다.
공적인 선언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보아스가 묻는다.
"나오미가 내놓은 밭을 사시오.
집안간으로서의 책임을 지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 밭을 사겠소"
이 질문에. 그 사람은.
"OK. 내가 그 밭을 사겠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보아스가 다시 말한다.
"그렇다면. 그 밭을 사는 날로.
고인의 아내인. 모압 여인 룻도 아내로 받아들여.
그 유산이 고인의 이름으로 남게 하시오."
그러자. 그 사람의 태도가 돌변한다.
"그런 조건이라면. 할 수 없소.
잘못하다간 내 재산만 축나겠으니.
당신이. 책임을 지시오"
말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보아스의 첫 번째 질문에 답을 하기까지.
얼마 동안의 시간이 걸렸을까?
"아마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까?"
그에 따른 책임과 이해타산을 생각해야 했기에.
그 때. 그 사람의 표정과 어투는 어땠을까?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며.
조금은. 뿌듯하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그 정도쯤은. 기꺼이 하겠소"라는 표정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보아스의 두 번째 물음에 답을 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 같다.
표정도 꽤나 당황했을 것 같고.
목소리도 조금은 커지고. 불쾌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이중성이다.
겉으로는. 고상한 척 온갖 폼을 잡지만.
속으로는. 손해보는 장사는 하기 싫은.
모순과 위선으로 가득한 모습.
어느 정도까지만. 사랑하고.
그 이상으로는. 자신을 허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안 하는데.
"왜 나만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되묻고. 따지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들이.
내 안에 또 우리 안에 있는 것은 아닐까?
보답/보상을 바라는. 사랑과 섬김은.
이미 그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이 말씀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구제할 때, 기도할 때, 금식할 때.
계속해서 자신을 드러내기 원했던.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 6:2, 5, 16)"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유익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의 삶을 평가받고.
그 주님께로부터. 의로움을 입는.
우리가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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