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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 3:9-20
학생들을 만나서 상담하다 보면.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반쪽짜리 이미지로 가득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실제로. 한쪽 편에서는. 하나님을 '두렵고. 엄한 분'으로만 인식한다.
우리의 잘못에 대해서. 사사건건 시비를 가리며.
우리의 잘못을 엄중하게 묻고 따지시는.
‘까탈스러운 하나님. 학주같은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를 가까이 하기가 두렵다.
그저 멀리서 그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피해다닐 뿐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왜곡된. 반쪽짜리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의 모습이다.
또 반대쪽에서는. 하나님을 '친근한 하나님'으로만 인식한다.
우리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허허'하시며 너털 웃음을 지으시는.
'사랑의 하나님. 인자한 하나님'으로만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뭐냐면. '선을 넘는다'는 것이다. 버릇이 없어진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과 두려움이 없어지고.
머리 끝까지 기어 올라가서. 하나님을 조종하려 한다.
그러다 결국. 하나님이. 화를 못 참고. '버럭' 하신다.
그냥 감정적으로 '욱' 한 것은 아니다.
사람으로서의 도리와 예를 가르치기 위해서. 잘못을 엄하게 꾸짖는 것이다.
화를 내지 않던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서운 것처럼.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과 책망 앞에.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고. 하나님이 다시 그들을 달래신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함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부정적인 이미지를 남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심판의 메시지 끝에는.
당신이 '왜' 때렸는지.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내가 너를 '사랑하기에 혼냈다'는 메시지를 함께 남겨주신다.
그래야. 화를 내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정이 남지 않고.
바른 훈육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말씀이 그러하다.
실제로 앞선 이야기를 보면. '그날이 오면'
다시 말해서. 여호와의 날이 임하면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하였는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주변 나라들을 모두 엄히 심판할 것이라 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쭈굴이'가 되어 버렸다.
하나님의 눈을 정직히 바라보기 힘들고.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살아간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눈은.
그것과 완전히 반대다.
실제로 16-17절이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시온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힘없이 팔을 늘어뜨리고 있지 말아라.
주 너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
구원을 베푸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
그가 '너를 보고서' 기뻐하고. 반기시고. 너를 사랑으로 새롭게 해주시고.
그가 '너를 보고서' 노래하며 기뻐하실 것이다.
축제 때에 즐거워하듯이. 기뻐하실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뭔가?
이 사람들은.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싸이코인가? 아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다시 알려주고자 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심판하신 것이 아님을.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버리신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자 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날이 오면.
1) '그 때에는' 우리 주님이 당신의 백성들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를 섬기게 할 것이다(9절).
2) '그날이 오면' 우리가 다시는 거룩한 산에서 거만을 떨지 않을 것이며.
주의 이름을 의지하는 온순하고 겸손한 사람들이.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11절).
3) '때가 되면' 우리 주님이. 흩어진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을 것이며(19절).
4) '그 때가 되면' 너희는 이 땅 가운데서. 다시 영광과 찬송을 받게 될 것이다(20절).
이것이 우리 주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과 공의의 눈이다.
잘못에 대해서는 엄히 묻고 따지시지만.
존재로서는. 우리를 사랑하고 용납하시는 하나님.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인식과 균형 속에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바르게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반쪽짜리'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있지는 않은가?
바라기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눈/시선이 바르게 교정되길 원한다.
그런 측면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요. 평안이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그러하니)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9:11-12)"
오늘 우리도. 그 주님을 찾고. 그 주님을 다시 만나길 소원한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고. 우리를 오늘도 기다리고 계신다.
(feat.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feat.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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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 3:1-8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리더와 멤버의 관계도 그러해야 한다.
멤버가 어그러진 길을 가면. 리더는 바른 길을 제시해야 하며.
리더가 영적인 분별력이 어두워지면. 멤버는 리더를 깨워야 한다.
'좋은 게 좋은 식'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게 될까봐, 내가 해코지를 당하게 될까봐'
<할.많.하.않> 식으로 지내서도 안 된다.
그러다 모두 죽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공동체로 살아가는 이유다.
서로가 서로를 깨워주며.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지켜주는 관계.
이것이 공동체의 살아있는 역동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 프로세스가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실제로 오늘 말씀을 보니 그러하다.
"백성들은.
주님께 순종하지도 않고. 그분의 말씀/충고를 듣지도 않고.
주님을 의지하지도 않고. 주님을 가까이 찾지도 않습니다(습 3:2).
오히려. 나를 두려워하고. 내가 가르치는 대로 살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못된 짓만" 골라하고 있습니다.
이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습 3:7)"
한마디로. 이스라엘 공동체가. 개망나니 짓을 하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ㅠ
이들을 가르치고 지도해야 할 어른들의 모습도. 망가지긴 매한가지다.
법과 진리를 수호해야 할 재판관/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율법을 무시하며.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데 바빴다.
오히려. 앞장 서서 악을 행하였다.
백성들의 등골을 빨아먹으며. 하나님의 전을 더럽게 하였다.
그러니. 백성이 무엇을 보고 배웠겠는가.
오히려. 리더십은 백성들에게 '면죄부'를 심어 주었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죄를 범하고 있으니.
아무도 컨트롤 하지 못하는. 무법천지를 양산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과 분노를 사게 되었다.
아무도 바른 판결을 내리지 않고. 공의를 행하지 않으니.
하나님이 직접. 심판자로 이 땅에 임하시며.
당신의 거룩한 불로. 이 땅을 깨끗하게. 정결케 하신다.
좋게 말로해서 못 알아 먹으니. 직접 몽둥이를 들고 오신 것이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란 말인가...
말씀을 읽으며.
오늘 우리 공동체의 모습. 또 우리의 관계는 어떠한가 돌아본다.
리더십은. 주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있는가?
리더십은. 백성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치며.
온유한 사랑으로. 또 엄한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고 책임지는가?
멤버십은. 리더십의 권위를 존중하며.
그들 또한 스스로 주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가?
공동체가 바른 길로 가지 못할 때. 애통하며 리더십을 위해 기도하며.
스스로 자정하고. 돌이킬 줄 아는 힘을 가지고 있는가?
그런 측면에서.
건강한 리더십과 건강한 멤버십이 '함께' 공존해야. 공동체는 바르게 설 수 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할까?
지난주부터 이어진 일련의 일들을 지켜보며.
한국 교회가 얼마나 멍들어 있는지.
안타깝고. 목사로서. 아니 그리스도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민망하기 이를 데 없다.
부디. 우리 안에. 건강한 리더가 세워지고. 건강한 멤버십이 형성되길 기도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무조건적인 순종. 무조건적인 충성이 바른 것도 아니다.
상호 돌봄과 배움. 그리고 견제와 믿음/신뢰가 균형을 이루길 기도한다.
그럴 때. 우리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바르게 서게 되며.
주님 안에서 올바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리더십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또 한국 교회 멤버십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주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며. 그분의 말씀을 듣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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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 2:4-15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경고를 잠시 멈추시고.
이제 주변나라들을 향해. 그 눈을 돌리신다.
한결 같이. 개판이다.
"가사는 버림 받을 것이며 / 아스글론은 폐허가 될 것이며
아스돗은 백주대낮에 사람이 다니지 않는. 텅빈 공간이 될 것이며
에그론은 뿌리째 뽑힐 것이다.
블레셋 땅 가나안아. 너희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게 될 것이다."
"모압과 암몬도 마찬가지다.
너희들이 나에게 욕을 퍼붓고. 악담하는 것을 내가 들었다.
너희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거친 풀이 우거지고. 온통 소금 구덩이가 되고. 영원한 황무지가 될 것이다.
내가 너희를 탈탈 털 것이다.
이것은. 너희가 '거만을 떤 것'에 대한 보복이다.
내 백성에게 욕을 퍼부은 것에 대한 보복이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아. 너희도 마찬가지다.
앗시리아야 너희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나밖에 없다'고 뽐내며 으스되던 모든 성읍들은.
이제 모두 황폐하게 무너지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지나가며 비웃을 것이다. 손가락질 할 것이다.
이것이 너희를 향한 나의 심판이니라."
이처럼 하나님은. 모든 열방을 향해. 진노의 잔을 부으신다.
이 심판의 목적이 무엇일까?
하나님은 이를 통해 무엇을 드러내기 원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11절 말씀이다.
"주님께서 땅의 모든 신을 파멸하실 때에.
사람들은 주님이 무서운 분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이방의 모든 사람이. 저마다 제 고장에서 주님을 섬길 것이다."
주님은. 만방의 모든 신이 헛된 우상임을 사람들이 알기 원하시며.
그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길 원하고 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을 갖기 원하시며.
그들이 어디 있든. 무엇을 하든. 주님을 섬기며.
주님을 알기 원하신다.
이것이. 심판의 목적이다.
당신의 주권과 당신의 왕되심을 드러내길 원하는 것이다.
2020년을 보내는 우리의 모습과 같다.
실제로 우리는 '유례 없는' 한 해를 보내고 있는데.
코로나가 창궐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 재해 앞에서. 많은 사람이 신음하고 있다.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주님의 자비와 도우심을 구하며. 크신 하나님 앞에 엎드릴 뿐이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자만하던. 인간의 교만이 꺾이고.
'이제 서야'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경외함 속에 엎드리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
당장의 위험을 모면하니. 또 다시 까불고. 설친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단 말인가.
하나님 앞에서.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왜 이렇게 나대고. 설친단 말인가.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서. 겸허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은혜다.
나의 덧없음을 깨닫고. 주님의 크심을 아는 것이 은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은혜며.
하나님의 손 아래. 멸하지 않고. 오늘을 사는 것 자체가 은혜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를 보내며. 우리가 이 은혜를 깨닫고 알기를 원한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살아계신 하나님의 현존 앞에 머물게 하시고.
그 주님을 향한 두려움으로. 오늘을 겸손히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그럴 때. 우리의 말과 행동. 생각 하나 하나가.
주님께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그 주님을 향한. 영적인 민감함과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소망하며.
이 하루를 주님께 맡긴다.
(feat. 영광을 돌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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