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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6 :: 2024.06.26(수) 전 11:7-10
전 12:9-14
사춘기 아이들의 특징을. 우리는 이렇게 정의한다.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책임을 질 수는 없는 나이"
그래서 아이들은. 늘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뒤돌아 보면. 책임지지 못하고. 엉망진창인 일들이 일쑤다.
뒷처리를 감당하는 것은. 늘 부모에게 주어진 몫이며.
그러다 보니. 잔소리가 많아지고. 할 말이 많아진다.
애초에/처음부터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잔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이. 아이를 위한 사랑/배려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간섭/통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춘기 시절을 보내며.
아이들과 부모의 마찰이 잦아지는 것 같다.
부모는 아이를 향해서. 좋은 말(?)/많은 말을 하고 싶고.
아이들은 부모를 향해서. 귀를 닫고. 자기 주장이 강해지는 시기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춘기 시절을 보내는 아이를 보며. 이해하고 용납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때때로 반항적인(?) 아이의 모습을 보면. 나 역시 욱하고 속이 터질 때가 더러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
이렇게 하면 좋겠고. 저렇게 하면 좋겠다"고 얘기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때때로 속이 터지고. 마음이 답답한 것 같다.
물론.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안다.
아이를 기다려주고. 아이를 용납해 주고.
자기가 직접 경험하고 깨달을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할 때". 그때 도움을 주어야 고맙게 여기는데.
그 전에. 이렇쿵 저렇쿵 하는 나의 모습이. 참 답답하고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할 때도 있는데.
작은 것 하나도 쉽사리 넘기지 못하는 내 성격을 보면서.
나도 참 힘들지만. 아이도 참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적절히 의존적이면서도. 적절히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와 부모 사이에서. 상호 신뢰와 상호 존중의 관계로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 아침. 문득 이런 고민을 하는 사이.
전도서 기자의 말씀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지혜로운 사람이기에. 백성에게 자기가 아는 지식을 가르쳤고.
나는 지혜로운 사람이기에. 많은 잠언을 찾아내서. 그것을 가르치고 연구했지만(9절).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이 얘기를 듣고. 마음에 새기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전도자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말을 찾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애를 썼는데.
사람들은 그 말을 얼마나 귀담아 듣고. 자신의 삶에 뿌리내리고. 또 열매 맺으려 하였을까?(10절)"
전도자는.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찌르는 채찍 같고. 수집된 잠언은 잘 박힌 못과 같다(11절)"고 하였는데.
사람들은 이 얘기를 들으면서.
그것이 자기 마음에. 양약이 되고. 득이 된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것이 자기 마음을 괴롭히는. 올무가 되고 족쇄가 된다고 생각했을까?
전도자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12절)"라고 하며.
끝도 없이. 주의 말씀/계명을 가르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처럼. 기지개를 펴고. 하품을 쏟아냈을까.
아니면. 그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정말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들었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
백성들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는. 전도자의 마음이나.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는. 부모의 마음이. 서로 같은 것 같다.
둘 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닮았으며.
둘 다 자기 백성을 향한. 사랑/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문제/차이는.
기다리고. 용납하는 자세에 있는 것 같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밀어내고. 방만히 행할 때에도.
끝까지 기다리고. 인내하시며. 용납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면.
우리는 속이 터지고. 참을 수 없는 마음에.
화를 쏟아내고.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주님은. 끝이 없는 당신의 자비와 은혜로.
우리를 용납하시고. 우리를 받아주셨지만.
우리는 사랑의 자리가 부족해서.
때때로 아이들을 밀어내고. 내 마음의 중심에 나를 두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늘 사랑에 통곡하는 것 같다.
나의 덧없음과. 나의 사랑 없음과. 나의 부족함에 통곡하고.
그런 나를 기다려주시고. 그런 나를 믿어주시며.
그런 나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통곡하는 것 같다.
사도 요한이.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요일 3:1)"라고 하였던 것처럼.
한이 없고. 다함이 없고. 마르지 않는 사랑으로.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납하셨는데.
우리는 그 사랑이 없어서. 우리는 그 마음이 없어서. 우리는 그 지혜가 없어서.
오늘도 통곡하고. 주님 앞에. 당신의 자비를 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자비를 부어주시길 원한다.
사랑이 없는 자에게. 당신의 사랑을 부어주시고.
지혜가 없는 자에게. 당신의 지혜를 부어주시고.
기다림이 부족한 자에게. 당신의 인내를 부어주시고.
용납함과 용서가 부족한 자에게. 당신의 자비와 긍휼을 부어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주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을 드리길 원한다.
"내 안에 가장 귀한 것. 예수를 앎이라.
금 은보다 더 귀한 것. 예수를 앎이라.
세상 지식보다 귀한 것. 예수를 앎이라.
내 안에 가장 귀한 것. 예수를 앎이라.
예수의 이름. 존귀한 그 이름
예수의 이름. 능력의 그 이름"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예수의 이름을 닮아가며.
예수의 모습을 닮아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향기를 닮아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을 닮아가는.
그런 나와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내 안에 가장 귀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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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12:1-8
오늘 본문을 보면.
전도자가. "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라는 말을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새번역 성경 1절을 보면.
"너는 젊은 날에. 너의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말을 하고.
6절을 보면.
오늘 우리 인생에. 여러 환난과 고난이 오기 전에.
"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7절을 보면.
"우리가 원래 왔던 흙으로 돌아가고. 우리에게 숨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너는 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한날이.
이 땅에서의 삶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지난 날들을 하나님 앞에 계수하고. 심판받을 것임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자는.
우리 인생의. 곤고한 날들이 오기 전에.
우리 주님을 기억하고. 그분 앞에. 바르고/정직하게 살라고 말하고 있다.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기 전에.
우리 인생에. 팔과 다리가 약해지고.
이가 빠져서 씹지도 못하고. 눈이 침침해져서 보는 것마저 힘들고.
귀가 먹어서 바깥 소리도 듣지 못하고.
원기가 떨어져서 보약을 먹어도 효력이 없을 날이 오기 전에.
우리 주님을 믿고. 그분을 기억하라고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사리 그러질 못한다.
젊은 날에는. 자신의 힘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훗날에는. 그것이 습관이 되고. 자신의 인격이 된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마땅한 것처럼 생각하게 되고.
나중에는. 하나님께 대들고. 하나님께 빳빳이 고개를 들게 된다.
"내가 죽긴 왜 죽냐?"고 소리치고.
"내가 죽어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이다.
혹 걔 중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믿겠다"고 하고.
"지금은 내 마음대로 살다가. 나중에. 때가 되면 하나님께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때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노릇이다.
해가 어두워지고. 날이 어두워지는 것은.
갑자기. 도적같이 임하기도 하고.
우리 육체가 쇠하고. 녹슬어 가는 것도. 하루 아침/순식간의 일이다.
지금은 우리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한순간에/삽시간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나중"이라는 말을 기약할 수 없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미래를 담보하고. 예비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어리석고 미련한 생각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 한날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여야 한다.
우리가 어디서부터 왔고.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기억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이 우리의 영원한 창조주/심판자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그 사실을. 바르게 기억하고 깨달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에게. 참된 자유와 은혜가 허락되게 되고.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를 지으신 당신의 뜻과 목적/소명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을 바르게 기억하는 것이.
오늘 우리 인생의 출발점/구심점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의 삶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송축하는 하루 되었으면 좋겠다.
어느덧 인생의 중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내가.
앞으로 남은 날들을. 어떻게 소화하고.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인가.
이제 IVF 사역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길을 떠나야 할 날들이 가까워지고 있는데.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의 유업을 맺으며.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
아직은 그 길과 부르심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내 마음의 한가지 소망과 꿈은.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의 부르심 앞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다.
남은 인생을 사는 동안.
주님을 온전히 예배하고.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사는 것이며.
오늘 내게 주어진 한날을 사는 동안.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정직한 길을 걸어가며.
주님 앞에서. 삶의 합당한 열매를 맺고.
주의 복음을 전하고. 주의 자녀들과 함께/더불어/영원히 사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의 눈이.
하나님을 향해. 더 밝게/선명하게 빛나는 것이며.
오늘 나의 귀가.
주의 말씀을 향해. 더 밝게/선명하게 들리길 원한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앞두고.
그의 나의 120이 되었어도.
그의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였던 것처럼(신 34:7)
오늘 나의 삶도 그랬으면 좋겠고.
갈렙이 그의 나이 85세가 되어서도.
"그가 온전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쫓으며.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수 14:12, 14)"라고 하며.
오늘 나의 삶도.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주와 더불어 동행하고. 주를 온전히 쫓는.
그런 나의 삶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단순하게. 또 정직하게 아뢸 뿐이다.
"주님. 오늘 나의 삶의 영원한 기업되어 주시옵소서.
주님 오늘 나의 삶의. 영원한 소망되어 주시옵소서.
주님. 오늘 우리 삶이.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을 온전히 따르는 삶 되게 하여 주시고.
주님. 오늘 우리 삶을. 주께서 기억하여 주시고.
주님 우리 가운데. 당신의 자비와 은혜를 베푸시고.
당신의 손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세워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주 없이 모든 일. 헛되어라.
밤에나 낮에나. 주님 생각. 잘 때나 깰 때 함께 하소서.
지혜의 주여. 말씀으로서. 언제나 내 안에 계십소서.
주는 내 아버지. 나는 아들. 주 안에 내가 늘 함께 하네.
세상의 영광. 나 안보여도. 언제나 주님은 나의 기업.
주님만 내 맘에 계시오니. 영원한 주님. 참 귀하여라.
영원한 주님. 내 승리의 주. 하늘의 기쁨을 주옵소서.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만유의 주여. 소망되소서"
오늘 하루. 이 찬양의 고백과. 이 말씀의 고백이.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의 진실한 고백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feat.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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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11:7-10
오늘 본문을 보면.
전도자가 청년들에게 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청년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동안.
마음껏/즐겁게/기쁘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젊음을 주셨으니.
그것을 마음껏 누리고. 마음껏 즐기길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지으진. 하나님의 목적/소망이며.
그것이 주 안에 있는. 참된 복/주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전도자는. 청년들을 향해. 이런 권면도 덧붙인다.
인생에 어두운 날이 있기 때문에. 주 안에서 근심하고. 염려할 것을 덧붙이며.
오늘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의 삶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죽음 이후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상벌이 있을 것이며.
우리는 지나온 삶의 걸음에 대해. 하나님 앞에 답할 것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없이 살았던 자들은. 하나님 앞에 책임과 형벌을 받아야 할 것이며.
하나님으로 살았던 자들은. 하나님 앞에 당신의 의와 거룩함을 입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전도자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젊은이여. 젊은 때에. 젊은 날을 즐겨라.
네 마음과 눈이 원하는 길을 따라라.
다만. 네가 하는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만은 알아라(9절)"
그런 측면에서. 인생의 자유와 책임은. 함께 따라가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내 마음대로. 내가 즐기고 싶은대로만 사는 것은.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며.
그것은 무질서한 삶의 끝으로 다가가기 마련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 참된 질서 속에서 자유를 누려야 하며.
그것은 우리를 옥죄는. 굴레/사슬의 늪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참된 지혜/생명의 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말씀을 따라 오늘을 살아야 한다.
라인홀드 니버가 얘기했던 것처럼.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누구나 내면의 불안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그것을. 자신을 절대화함으로써. 자신의 불안을 극복하려 하고(교만).
어떤 사람은. 유한한 것들을 탐닉함으로. 불안을 잊으려 하는데(관능).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우리를 지으신 당신의 목적과 삶의 길 가운데 걸어갈 때.
그때 비로소 우리가. 참된 평안을 누리고.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오늘 이 말씀들이.
오늘 나의 삶과. 우리 가족과.
이 땅의 모든 청년들에게. 동일하게 임하길 함께 간절히 기도한다.
아이들이 자라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기쁜가.
나는 정말 우리 아이들이. 참된 자유와 기쁨을 만끽하였으면 좋겠고.
그들의 인생 가운데. 즐거운 날들만 있고. 즐거운 일들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할 것이며.
그들은 때때로. 인생이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것과.
많은 상처와 아픔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로서.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그때마다 좌절하고.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일어나고. 주님 안에서 이 길을 걸어가길 소망한다.
넘어지고 쓰러지더라도. 주께서 그들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 주시길 소망하며.
넘어짐과 쓰러짐을 통해서. 다시 배우고. 새롭게 깨달아가길 소망한다.
그들의 인생이. 자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기억하고.
오늘 우리 삶을. 지켜보고 관찰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원한다.
청년들의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대학을 보내고. 졸업 후 취업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기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게 되는가.
그래서. 때마다 눈물 흘리고. 슬퍼할 때가 참 많다.
인생의 모진 시험과 바람 속에서. 슬퍼하고 낙망할 때도 많고.
오늘을 살아가는 동안.
더 이상 아무런 소망도 없고. 아무런 꿈도 가질 수 없다고 말할 때도 더러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들이 주저앉지 않길 바란다.
주께서 그들을 지으신. 인생의 목적/소명을 발견하길 바라며.
주님이 지으신. 이 아름다운 자연과 피조 세계 안에서.
마음껏 누리고. 마음껏 즐거워 할 수 있길 바란다.
오늘을 사는 동안. 주님 안에서. 마음껏 즐거워하고. 마음껏 기뻐하길 바라며.
그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창조의 하나님 안에서.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면 좋겠다.
특별히. 이번주와 다음주.
전국 각지에서. 여름수련회로 모이고 있는 청년들에게.
주께서 당신의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소원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이들에겐.
주께서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시고. 주께서 얼마나 그들을 오랫동안 기다려 오셨는지.
당신의 그 말씀과. 당신의 그 사랑을 전해주길 원하며.
오늘 우리 인생 가운데. 슬픔과 절망 가운데 있는 자들에겐.
주께서 당신의 위로를 전해주시고.
주께서. 당신의 힘과 은혜를 부어주시며.
우리 가운데. 새 소망에 관한 이유와. 새 소망에 관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은혜와 자유를 허락해 주시길 소망한다.
그래서. 오늘 이 땅 가운데.
탄식과 절망과. 슬픔과 고통의 노래가 그치고.
주님 주신 참된 자유와 평안 속에서.
마음껏 기뻐하고. 마음껏 즐거워하는.
그런 우리 되고. 그런 우리 청년들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우리가 꿈꾸는 나라. 그 곳은 우리의 고향.
손에 잡히지는 않아도. 믿음으로 그 곳을 보네.
그 곳이 실존하기에. 우리가 함께 할 꿈을 꾸기에.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고. 사자와 어린 양이 뛰노는 그 곳.
어린이 독사 굴에 손 넣어도 되는. 그곳엔 하나님의 나라가.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고. 사자와 어린 양이 뛰노는 그 곳.
어린이 독사 굴에 손 넣어도 되는. 그곳엔 하나님의 나라가.
그날은 속히 오리라. 그날은 속히 오리라.
그날은 속히 오리라. 그날은 속히 오리라"
오늘 하루. 이 땅 가운데.
주의 나라. 주의 평강.
주의 참된 자유와 주의 참된 진리가 온전히 선포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우리가 꿈꾸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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