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12:9-14

사춘기 아이들의 특징을. 우리는 이렇게 정의한다.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책임을 질 수는 없는 나이"

그래서 아이들은. 늘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뒤돌아 보면. 책임지지 못하고. 엉망진창인 일들이 일쑤다.
뒷처리를 감당하는 것은. 늘 부모에게 주어진 몫이며.
그러다 보니. 잔소리가 많아지고. 할 말이 많아진다.
애초에/처음부터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잔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이. 아이를 위한 사랑/배려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간섭/통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춘기 시절을 보내며.
아이들과 부모의 마찰이 잦아지는 것 같다.
부모는 아이를 향해서. 좋은 말(?)/많은 말을 하고 싶고.
아이들은 부모를 향해서. 귀를 닫고. 자기 주장이 강해지는 시기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춘기 시절을 보내는 아이를 보며. 이해하고 용납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때때로 반항적인(?) 아이의 모습을 보면. 나 역시 욱하고 속이 터질 때가 더러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
이렇게 하면 좋겠고. 저렇게 하면 좋겠다"고 얘기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때때로 속이 터지고. 마음이 답답한 것 같다.

물론.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안다.
아이를 기다려주고. 아이를 용납해 주고.
자기가 직접 경험하고 깨달을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할 때". 그때 도움을 주어야 고맙게 여기는데.
그 전에. 이렇쿵 저렇쿵 하는 나의 모습이. 참 답답하고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할 때도 있는데.
작은 것 하나도 쉽사리 넘기지 못하는 내 성격을 보면서.
나도 참 힘들지만. 아이도 참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적절히 의존적이면서도. 적절히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와 부모 사이에서. 상호 신뢰와 상호 존중의 관계로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 아침. 문득 이런 고민을 하는 사이.
전도서 기자의 말씀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지혜로운 사람이기에. 백성에게 자기가 아는 지식을 가르쳤고.
나는 지혜로운 사람이기에. 많은 잠언을 찾아내서. 그것을 가르치고 연구했지만(9절).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이 얘기를 듣고. 마음에 새기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전도자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말을 찾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애를 썼는데.
사람들은 그 말을 얼마나 귀담아 듣고. 자신의 삶에 뿌리내리고. 또 열매 맺으려 하였을까?(10절)"

전도자는.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찌르는 채찍 같고. 수집된 잠언은 잘 박힌 못과 같다(11절)"고 하였는데.
사람들은 이 얘기를 들으면서.
그것이 자기 마음에. 양약이 되고. 득이 된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것이 자기 마음을 괴롭히는. 올무가 되고 족쇄가 된다고 생각했을까?

전도자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12절)"라고 하며.
끝도 없이. 주의 말씀/계명을 가르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처럼. 기지개를 펴고. 하품을 쏟아냈을까.
아니면. 그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정말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들었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
백성들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는. 전도자의 마음이나.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는. 부모의 마음이. 서로 같은 것 같다.
둘 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닮았으며.
둘 다 자기 백성을 향한. 사랑/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문제/차이는.
기다리고. 용납하는 자세에 있는 것 같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밀어내고. 방만히 행할 때에도.
끝까지 기다리고. 인내하시며. 용납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면.
우리는 속이 터지고. 참을 수 없는 마음에.
화를 쏟아내고.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주님은. 끝이 없는 당신의 자비와 은혜로.
우리를 용납하시고. 우리를 받아주셨지만.
우리는 사랑의 자리가 부족해서.
때때로 아이들을 밀어내고. 내 마음의 중심에 나를 두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늘 사랑에 통곡하는 것 같다.
나의 덧없음과. 나의 사랑 없음과. 나의 부족함에 통곡하고.
그런 나를 기다려주시고. 그런 나를 믿어주시며.
그런 나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통곡하는 것 같다.

사도 요한이.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요일 3:1)"라고 하였던 것처럼.
한이 없고. 다함이 없고. 마르지 않는 사랑으로.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납하셨는데.
우리는 그 사랑이 없어서. 우리는 그 마음이 없어서. 우리는 그 지혜가 없어서.
오늘도 통곡하고. 주님 앞에. 당신의 자비를 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자비를 부어주시길 원한다.

사랑이 없는 자에게. 당신의 사랑을 부어주시고.
지혜가 없는 자에게. 당신의 지혜를 부어주시고.
기다림이 부족한 자에게. 당신의 인내를 부어주시고.
용납함과 용서가 부족한 자에게. 당신의 자비와 긍휼을 부어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주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을 드리길 원한다.

"내 안에 가장 귀한 것. 예수를 앎이라.
금 은보다 더 귀한 것. 예수를 앎이라.

세상 지식보다 귀한 것. 예수를 앎이라.
내 안에 가장 귀한 것. 예수를 앎이라.

예수의 이름. 존귀한 그 이름
예수의 이름. 능력의 그 이름"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예수의 이름을 닮아가며.
예수의 모습을 닮아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향기를 닮아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을 닮아가는.
그런 나와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내 안에 가장 귀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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