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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1 ::
2025.04.12(토) 눅 21:29-38
눅 21:29-38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이 계속 이어진다.
마지막 때가 되면.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고.
멸망의 가증한 것이 나타나. 예루살렘 성전을 짓밟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며.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나타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박해를 당하고 핍박을 당하는 때가 나타날 터인데.
우리 주님은. 이것이 <마지막 날의 징조>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이 왔으니.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36절)"고 말씀하신다.
그날이 도적 같이/덫 같이 너희에게 임할 것이기 때문에.
술취하지 말고. 방탕하지 말며. 생활의 염려와 이생의 걱정으로.
마음이 둔하여 지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근심하고 깨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해. 이른 아침 성전으로 나아갔다(38절)"
예수의 가르침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날이 이제 우리 눈 앞에… 지금 당장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어찌 딴 데 정신을 팔고. 다른 곳에 마음을 둘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항상 깨어 기도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계신 성전 앞으로 나아갔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인 것이다.
하지만 2천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지금 당장 예수님이 나타날줄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그 나라가 우리에게 너무 멀리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양치기 소년처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적 그리스도가 나타났다. 지진이 나타났다.
민족과 민족이 싸움을 하며. 전쟁과 기근이 그치지 않는다"라는 소리가 들리지만.
정작 예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계속/거듭 반복되다 보니.
마지막 날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 또한 사라지는 것 같고.
"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이. 우리 인생의 모토가 되어 가는 것 같다.
"한번 뿐인 인생 뭐 있어? 먹고 마시고 즐기는 거지!"
하지만 우리 선배들이 고백한 "Y.O.L.O"는 그런 욜로가 아니었다.
"한번 뿐인 인생 속히 지나가리니.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일만 영원할 것라"고 하였으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모든 것을 걸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며.
내 모든 보화는 저 천국에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 나라를 향해 오늘을 살아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두 사람의 욜로는. 완전히 끝이 다른 욜로다.
오늘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Y.O.L.O" 한번 뿐인 인생이기 때문에.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이야기 하지만.
오늘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라. 영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Y.O.L.O" 오늘 이 땅에서의 삶은.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삶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하나님 나라에 마음을 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은.
"너는 어느 쪽에 속한 Y.O.L.O인지" 우리에게 되물어 보는 것 같다.
베드로 사도가 경고한 것처럼.
"어떤 이들은. 주의 약속이 더디다(벧후 3:9)"고 하면서.
주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주님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이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그날이 곧 멀지 않고. 그날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하면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깨어 살아가고 있는가?
바라기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세상을 바라보며. 허탄한 데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 없다"고 말하는.
그런 어리석음과 그런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직 아버지 아버지 앞에서.
"주님의 다시 오심"과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베드로 사도가. 우리를 향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벧전 5:8)"고 하였는데.
오늘 우리가 세상의 목소리에 현혹되는. 그런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갔던(38절)"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근신하여 깨어. 주님 앞에 기도하고.
주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고. 주의 말씀 듣기를 즐거워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 말씀을 보는데.
이 찬양의 고백이 마음 속에 계속 맴도는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주님의 손길 안 닿은 곳 없네.
주님의 말씀을 갈망하는 우리에게. 하늘의 비밀 알려주시네.
어두움 가운데 있던 이 세상은. 빛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의 말씀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하늘의 영광 비춰주시네.
하나님 말씀으로. 아버지 마음으로. 나 달려갑니다. 나 돌아갑니다.
말씀이 육신되어. 말씀이 내 삶 되어.
주 나라 이 곳에. 주님 뜻 내 안에. 이루소서"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말씀을 향해. 오늘 내 삶을 던지며.
영원히 변치 않고. 영원히 쇠하지 않는 그 나라를 향해.
오늘 우리의 마음을 향하며. 오늘 우리의 마음을 주께 드리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feat. 하나님 말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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