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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14:1-9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께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주님의 마음은. 그들을 끊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그들과 하나되기 원하시며.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며. 너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당신의 약속의 말씀/시내산 언약을. 계속 계승하고. 이어가길 원하신다.
그렇기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돌아와서 말하기를.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수송아지를 드리는 대신에. 우리가 입술의 열매를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다시는 앗수르를 의지하지 않고.
다른 신들을 찾지 않겠습니다.
오직 우리를 살피시고 돌보시는 분은 주님 밖에 없으니.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주여. 우리를 고아처럼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말하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병을 고쳐주고. 그들을 기꺼이 사랑해 주겠다.
내 마음의 분노를 품고. 그들을 용서해 주겠다.
그리하면. 내가…
이스라엘 위에 이슬처럼 내릴 것이니.
이스라엘이 백합화 같이 밝게 피겠으며.
레바논 백향목처럼. 깊이 뿌리를 내릴 것이다.
내가 간절히 바라고. 또 기다리니.
너는 내게도 나아오며. 내게로 돌아오라.
이것이 너희를 향한. 나의 마음이니라"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주님은. <이미> 우리를 향해. 마음으로 용서하시고.
오늘 우리 향해. <마음으로. 사랑으로> 용납하고 계시는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까?
여전히. 주변 자리를 맴돌며. 머뭇거리는 삶을 살고 있을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 돌아가고. 그의 집에 거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마음으로는 "주의 집에 돌아가야지. 돌아가야지" 하면서도.
마음의 있는 죄책감과 부끄러움 때문에.
여전히 주의 집에 돌아가기를 부끄러워하고. 민망해하고 있을까.
아니면.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또 민망함에도 불구하고…
주의 집에 나아가길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있을까?
나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자격>이 되어서.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부족하고. 모자라도.
주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은혜로> 우리를 용납하는 것을.
우리가 경험으로. 마음으로 기뻐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그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그런 어리석은 죄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의 품을 떠나. 헤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주께 나아와. 주께 은혜를 입고.
주께 돌이키며. 주께 나음을 입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잃어버린 아들이 주께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잔치를 열고. 마음껏 기뻐하며. 사람들을 초대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 공동체 가운데도. 그와 같은 일들이 있었으면 좋겠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분의 탄생'이.
오늘 우리에게만 즐거움이 되는. 그런 끼리끼리의 모임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가운데. 정말 하나님의 기쁨이 흘러넘치고.
구원의 복이 흘러넘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오 주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오 주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님 앞에서. 멀리 하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그 구원의 기쁨. 다시 회복시키시고.
변치 않는 맘. 내 안에 주소서"
오늘 하루. 주께서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주께 돌이키며. 주께 나아오는.
그런 은혜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드린다.
(feat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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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13:1-16
'에브라임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자기 의에 취한. 교만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사사 시대 에브라임 족속의 행태를 보면. 그 모습을 알 수 있다.
기드온이 미디안 족속을 무찌르며. 행진할 때.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을 찾아와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왜 우리 빼고 싸웠습니까? 왜 우리를 무시하는 겁니까?
우리 없어도. 전쟁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한 번 해 볼까요?"
에브라임 족속은.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뾰로퉁하고. 심술이 나 있었는데.
아마도 그것은. 자기들의 이름을 날리고. 자기들의 끝발을 세우고 싶은.
자기 욕심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섬기며. 자기 욕심을 드세우고 싶은.
인간적인 욕망 말이다.
이에 기드온이. 지혜로운 말로. 그들을 설득하고 돌려보내는데.
에브라임 증후군은 여기서 끝나질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병은. 더욱 깊어져 갔다.
실제로. 북이스라엘이 떨어져 나가게 될 때.
그때 주력 세대로 머물렀던 사람들이 누군가?
그 사람들이 바로. <에브라임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왕이 되고 싶은 욕심에.
유다 지파로부터 떨어져 나가길 소망하였고.
그래서 북이스라엘로 떨어져 나갈 때.
이스라엘 9개 지파와. 함께 그 길을 같이 하였다.
뱀의 머리가 될지언정. 용의 꼬리가 되기는 싫었나 보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들은 변질되고. 타락되어 갔다.
자기들의 의에 취하고. 자기들의 욕심에 취한 것이다.
오늘 본문이. 그 얘기를 하고 있다.
1절을 보면.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떨었도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가운데. 에브라임 가진 위치/상징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를 높이며. 자기를 위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들이 망하고 난 다음에도.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가 하는 말이 무엇인가?
"그들이.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여 망하였거든.
<이제도> 그들은 더욱 범죄하여. 그 은으로 자기를 위한 우상을 만들며(1-2절).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여주고. 풍족히 채워줬더니.
그들은 마음이 교만하여. 나를 잊어버리고. 나를 떠나게 되었으며(6절)"
그렇게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교만함으로 인하여.
그들은 무너지고 쓰러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에브라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거나. 회개하지 않았다.
자기 고집을 피우며. 끝까지 고집대로 산 것이다.
자기 의를 세우며. 끝까지 자기 자존심을 지킨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어찌 하나님의 의가 들어갈 수 있겠는가.
그들은. <에브라임 증후군> 자기 잘난 맛에 취해 사는 사람들이었고.
이것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하나님 앞에 심판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 삶을 함께 돌아보게 된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자기 잘난 맛에 취해서.
오늘도 우쭐거리며/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는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오늘 우리는. 여전히 나의 힘과 노력으로.
나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것도 내세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의에 취해서.
자기 욕심에 취해서 살아가고 있는 이 때에.
우리가 <영적 파산>을 경험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는 것은.
참 어렵고 힘든 일인 것 같다.
내가 죽어도 에수님을 믿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어찌 예수를 증거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길" 기도하기 이전에.
"오늘 우리 나라가. 먼저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너무나 적실한 기도인 것 같다.
"내 나라가 망하고. 내 왕국이 망하고. 내가 쓰러지지" 않고서는.
"우리 주님의 나라"가 설 수 없고.
"그분의 나라"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간구하는 한 가지는.
오늘 우리 가운데 있는. <에브라임 증후군. 교만의 문>이 꺾이길 소망하며.
오늘 우리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 나라가 바르게 서길 바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분 안에 머물길 바라며.
오늘 우리 삶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진실로 하나되고. 그분의 뜻 가운데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아침.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이 찬양의 고백을 따라. 하나님 앞에 서길 원한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 나라와 그 의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 아니요. 하나님 말씀으로.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야.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문이 열릴 것이니. 할렐루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야"
오늘 하루 나의 삶 가운데.
<에브라임 증후군>이 무너지고. <주의 나라>가 임하길 소망하며.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겸손의 옷을 입으며. 자비의 옷을 입는.
그런 주의 은혜. 그런 주의 소망이. 온전히/충만히 거하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드리길 원한다.
(feat.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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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11:12-12:14
이스라엘(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속임수와 거짓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으며.
배고픈 형을 이용해.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사기도 하였다.
아버지와 형을 속여. 형에게 주어진 축복권을 뺏기도 하였으며.
그렇게 야곱은. 자기 평생을 속고 속이는 인생을 살아오게 되었다.
야곱의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야곱의 피가 어디 가겠는가.
형들은 동생 요셉을 애굽에 팔아 넘긴 다음에.
“동생이 죽었다”고 아버지에게 거짓말 했으며.
디나가 간음을 했을 때도.
시므온과 레위는 거짓말(할례를 받으면 너희와 결혼하겠다)로.
세겜 족속을 멸하고. 그들을 진멸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피에는. 속이는 자 야곱의 피가 흐른다.
이스라엘은 거짓된 방식으로. 자신의 부/자신의 재산을 축적하기도 하였고.
그렇게 사람들을 속이고 빼앗음으로.
자신의 자리를 넓히고.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려 하였다.
이 얼마나 부도덕하고. 부정직한 일이란 말인가.
근데. 그 야곱의 피가. 오늘 우리에게도 흐른다.
속이는 자 야곱의 모습이. 오늘 우리와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과 상처를 가리기 위해.
변장하고. 변신하기도 하며.
때로는 우리의 약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강한 척하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때가 있다.
‘나’를 속이는 것이다.
나만 속이겠는가. ‘다른 사람’을 속일 때도 있다.
때로는 음흉한 말로. 사람들에게 두려움/불안함을 심어줄 때도 있고.
때로는 달콤한 말로. 사람들의 등골을 빼먹고 이용하려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거짓말은 얼마 안 가 들통난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깨지고 파괴되기 마련이며.
사람들은 이것을. 당연한 일/마땅한 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나님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 사람과 겉 사람을 아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신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 눈 가리고 아웅 할 때가 있다.
거짓말을 하고. 위선된 행동을 할 때가 있다.
그러니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어찌 하나됨/친밀함이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잘못이 언제 들통날까 두려워하며.
하나님은 좌불안석. 늘 불안해 하고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너희가 언제쯤 진실한 모습으로. 신실한 모습으로 내게 나아올 수 있을지.
그것을 염려하고. 안쓰러워 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오늘 우리에게.
“너희가 하나님께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호 12:6)”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불안과 염려를 버리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진실한 모습으로 나아오길 원하시는 것 같다.
사람들을 속고 속이는.
그런 불의한 세상. 불합리한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인자하고 진실한 삶을 살기 원하시며.
오늘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공의와 진실함의 열매 맺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하루 나의 삶이.
“이스라엘”이 아닌. “나다나엘”의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속고 속이는 자로 살아왔다면.
나다나엘은 하나님 앞에서.
“그 마음에 속이는 것이 없고. 간사함이 없도다”라고 얘기했는데.
오늘 우리 삶이. 하나님 앞에 그랬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삶이. 하나님 앞에. 간사함이 없고 진실한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예배의 자리 가운데서나.
성도들과의 만남 가운데서나.
말씀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가운데.
오늘 내 안에. 정직함과 투명함의 은혜가 있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삶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연합하고 하나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신자 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신자 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신자 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오늘 하루 우리 삶 가운데.
진심으로 주를 대하며. 전심으로 주를 예배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신자 되기 원합니다)
https://youtu.be/CbhGpxjLG-U?si=WBtdKTxbro4UsAq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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