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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7-20

야고보서를 묵상하며. 크게 2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환난 가운데 인내하며. 믿음으로/소망으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야고보 사도는. 오늘도 '참고 견디라'는 말을. 줄기차게 반복한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 오실 때까지 참고 견디십시오(7절)
참으십시오. 마음을 굳게하고. 기다리십시오(8절)
참고 견딘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11절)
욥이 어떻게 참고 견디었는지 보십시오(11절)"

어쩜 이렇게 똑같을 수 있을까.
야고보서를 시작할 때부터. 야고보서를 마칠 때까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든다.

"기다린다는 것이 뭘까? 참는다는 것이 뭘까?
그냥 무조건 버티고. 참고. 견디면.
그게 주님 기뻐하시는 삶이 되며. 덕이 되는 것일까?"


야고보 사도는. 이 질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우리의 믿음은.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등동적인 기다림'이기 때문이다.

실로 그렇다.
'인내'와 '체념'은. 다르다.

체념은. 아무런 기대도 소망도 없이.
그저 죽은 시체처럼. 단념하고 살아가는 삶을 뜻하지만.
인내는. 약속된 그 일이.
언젠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 속에 살아가는 삶이다.
 
그렇기에. 체념하는 자에게. 믿음이라곤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내 그럴 줄 알았어. 힘빼지 말라니까." 라고 말하며.
어떻게든. 우리를 깊은 침묵의 수렁텅이로. 몰아가려 할 뿐이다.

하지만. 인내하는 자는. 소망 가운데 그 날을 바라본다.
비록. 오늘이 힘겹고 버거울 지라도.
우리 주님이 곧 오실 날을 기다리며.
결코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살아가고자 몸부림 친다.

그것이. 믿음이며.
그것이. 소망의 기다림이다.


그렇기에. 야고보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참고 견디십시오.
이것은. 무작정.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냥 체념하고 살아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오히려. 살아있는 믿음으로 살아가길 소원합니다.
살아있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수동적인 믿음이 아니라. 능동적인 믿음으로 오늘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를 판단하지 않으며.
비난하지 않으며. 그들을 원망하지 않으며(9절).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기도하며.
즐거움 가운데 찬송하며 사는 것입니다(13절).

만약. 여러분이.
도무지 혼자 이 시간을 버틸 수 없을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혼자 기도하지말고. 함께 기도하십시오.
교회의 장로들이 필요한 까닭이. 그것 때문 아닙니까(14-15절).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누군가 그를 위해. 마음 다해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것처럼.
우리 또한. 다른 사람의 손을 붙들어 줘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낙심하고. 체념하며. 믿음에서 멀어져 갈 때.
우리가 그들을 바로 잡아주며.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것(19-20절).

이것이. 소망 가운데.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며.
이것이.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르고. 성숙한. 인내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의 삶을 돌아본다.

"나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오늘 내게 주어진 일/사역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기대와 소망을 안고. 오늘을 살아가며.
궁극적으로. 어떤 일이.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길 바라는가?"

어쩌면. 오늘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체념'이라는 가면 아래.
적당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 내게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있으니.
이 녀석으로 적당히 퉁칩시다(창 15:2-3)"라고 말하며.
"하나님. 사라의 나이가 99살이나 되었으니.
그저. 이스마엘이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으면서.
적당히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창 17:16-17)"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의 모습을 겸손히 돌아본다.

오늘 우리의 삶이. 죽은 것처럼 보이며.
아무런 믿음과 소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 때에.
부활의 주요.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깨워주시고. 흔들어 주시길 기도한다.

그래서일까?
오늘따라. 사도 바울의 권면이 유독 더욱 생각난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 12:12)"

오늘 내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 작은 일상의 순간에서도.
우리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넘치길 기도한다.

주께서 오늘 우리의 삶을 그렇게 붙드시길.
주께서 오늘 우리의 삶에. 그런 은혜 베풀어 주시길 소원하며.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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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1-6

성경은. '재물/부'에 대해서.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도리어. 하나님의 축복/은혜에 대한 상징으로. '재물/부'를 바라본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이삭과 야곱이 그랬으며.
다윗과 솔로몬. 그밖에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결과로. 수많은 '부'를 얻게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부는. 은혜의 상징이었다.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우리가 복을 얻게 되었고.
그 복에 대한 댓가/결과로. 우리가 풍족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재물'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복의 결과로. 부자가 될 수는 있겠으나.
바르지 않은 방식과. 바르지 않은 목적으로 재물을 모아서는 안 되며.
그 재물을 바르지 않게 사용해서도 안 된다.

그런 측면에서.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여러분. 우리가 부당한 방식으로. 재물을 모아선 안 될 것입니다.
내 재산을 불리기 위해서. 부당한 방식으로 임금을 착취해서도 안 될 것이며.
온갖 편법과 탈세로. 불의를 행하며. 악을 저질러서도 안 될 것입니다.
한탕/요행을 바라며. 불로소득을 꿈꿔서도 안 될 것이며.
오직. 공의와 성실로. 하나님의 법을 따라. 정직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입니다.

실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그렇게 아둥바둥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돈이 있으면. 떵떵거리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 아닙니까?
돈만 있으면. 어떻게든 편안히 살며.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해결 할 수 있다는.
거짓 만족감과 안정감 때문 아닙니까?

하지만. 우리의 만족과 평안은. 거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어리석은 부자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부자가. 곳간을 더 크게 짓고.
"내가 여러 해 동안 쓸 물건을 많이 모았으니.
이제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한들.
오늘밤 주께서. 우리 영혼을 찾으시면. 그게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아무런 만족과 유익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지 말아라.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을 향해서는. 부요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이와 같을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단지 헌금을 많이 하라는 뜻일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주님께서.
뭐가 부족하다고 그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도리어. 하나님을 향해. 부요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재물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부터 계속해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형제자매가 헐벗고 굶주리고 있을 때. 가서 배부르게 먹고 마시라"고 말한들.
그게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그들에게. 먹을 것 하나. 마실 것 하나. 손에 쥐어주는 게. 바른 경건 아니겠습니까.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 속이고. 등쳐먹지 않고.
그분들이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정당한 보상/임금을 지불하고.
더불어 살아가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제가 이러게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은. 환난 가운데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며.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

만약. 우리가 그러지 않고.
부당한 방식으로. 재물을 축적하고.
나를 위해. 나만의 만족을 위해. 돈을 쌓아놓고 있는다면.
우리의 재물은 썩고. 좀 먹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재물이. 우리를 고발할 증거가 될 것이며.
그 재물이. 우리를 삼키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귀담아 들으십시오.
부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축복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할과 책임과 의무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바르게 사용하십시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의 삶을 돌아본다.

"나는.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서만. 오늘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내가 돕고 섬기며. 살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오늘 나는. 무엇을 위해. 나의 삶을 드릴 것인가"

바라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을 넘어.
'행동하는 그리스도인' 되기를 소망한다.

주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으니.
우리는 그 은혜를. 오용하고. 남용하고. 도용하지 않으며.
오직. 바르게 선용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정진하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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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토)
약 4:11-17

#_헛똑똑이

우리는.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돼.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돼.
것 봐.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얼마나 현명하고. 똑똑한 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렇게 참견하기 좋아하고. 명석하고. 똑똑했던 사람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완전. '헛똑똑이'다.


그런 측면에서. 야고보 사도도.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형제 자매 여러분. 서로 헐뜯고. 비방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누구이기에. 이웃을 심판한단 말입니까.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며.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가.
누구를 비방하며. 조롱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처지를 깨닫지도 못하고.
우쭐대며 자랑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으니.
그 사람은 큰 코를 다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조심하십시오.
교만하지 마십시오. 자랑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겸손하며.
주님의 자비와 은혜를 구하십시오.
이것이 지혜로운 성도의. 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의 삶을 돌아본다.

"지난 한 주를 보내며. 나는 심판자의 위치에서.
형제 자매를 비난하고. 정죄하며. 그들을 심판한 적은 없었던가.
그들을 향한 비아냥과 조롱으로.
스스로를 자랑하며.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한 삶을 살지는 않았는가.

주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 하였건만.

오늘 나는. 하나님보다 앞서 행하며.
오만한 눈과 교만한 마음으로.
형제자매들을 향해선 엄중한 심판과 책망을 하면서.
나 스스로를 향해선. 관대한 마음과 잣대를 들이밀지는 않았는가."


그렇기에.
지난 한주를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의 잘못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주님의 자비를 구하며. 이 시간 회개의 자리로 나아간다.

"주님. 
지난 한주동안. 형제자매를 마음다해 사랑하지 못하고.
마음으로 그들을 판단하고. 미워하며 책망하였던 저의 잘못을 회개합니다.

사실 돌아보면. 나 역시 똑같은 실수를 범하며.
나 역시. 쓰러지고 넘어지는 죄인인데.
우리가 어찌. 그들을 비난하고 조롱할 수 있겠습니까.

내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우리는 어찌. 내 형제자매를 향해서는.
그렇게 엄격하고. 살벌한 잣대를 들이밀면서.
나의 잘못에 대해서는. 어찌 그리 쉽게 넘어가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면죄부를 줄 수 있습니까.

주님. 그런 저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교만하고. 오만한 저의 모습을 용서해 주시고.
우리가 주님 안에서.
'헛똑똑이'가 아니라. 진짜 '똑똑이'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하루. 나의 삶이 그러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나의 평생이 그러하길 소원합니다.
주님. 우리가 넘어지고. 쓰러질 때. 우리를 엄히 꾸짖어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의 걸음을 붙들어 주시길 소원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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