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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5:8-14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건강했으면 좋겠고.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붙잡고 늘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 행복한 것이. 내게 행복한 것이니까.
그 사람을 잃어버리면. 세상 모든 걸 잃어버리는 거니까.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가족이니까.
그래서. 때로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도 하고.
그래서. 때로는 그 사람을 위해 권면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사람을 위해. 닥달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사람을 위해. 마음 다해. 간절히 위로하고 격려하기도 한다.
이것이. 사랑의 표현이고. 이것이. 사랑의 증표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베드로 사도의 이야기도. 동일하게 느껴진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여러분 가운데. 한 명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주께서. 여러분을 꼭 붙들어 주시고. 단디 붙잡아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믿음 위에 굳게 서고. 은혜 위에 든든히 서고'
뭐 거창한 말로. 여러 말들을 할 수 있겠지만.
제가 바라는 한 가지는. 여러분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향한. 제 마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바라라고 한다면.
그것은. 제가 여러분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서로. 잘 되기를 빌어주면 좋겠습니다.
여기 있는 제 친구들이 여러분에게 안부를 묻는 것.
그게 서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아니겠습니까?
형제자매들이. 서로 사랑의 입맞춤으로 문안하는 것.
그게 서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당부드립니다.
부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부디. 이 믿음의 길에서 도망치지 마십시오.
부디.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지 마시고.
부디. 여러분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우리 주님께. 우리 마음을 단단히 고정합시다.
우리 주님만이.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 주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목자/생명이십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도.
내 사랑하는 가족/친구/동료들이. 잘 되었으면 바람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어려움 가운데 놓여 있는 친구들에게는.
그 친구들의 문제가. 해결되고. 정리되길 기도하며.
그들의 마음이 낙심하고.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입으로 응원하고. 말로 격려하는. 그런 관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을 나누는. 그런 관계를 맺어가고.
그런 관계를 누리고 싶다.
그 시작은. 서로에게 문안하는 것이다.
그 시작은. 서로에게 연락하는 것이다.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정말 여러 매체/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내가 사랑하고. 섬겨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오늘 내가 붙들고 격려할 사람은 누구일까?
오늘 하루. 내 마음 속에 문득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면.
오늘 주님이. 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바라기는. 우리 가운데. 어떤 일 때문에. 서로 연락을 주고 받는.
그런 사무적인/업무적인 관계가 아니라.
아무 일 없이. 정말 아무 일 없이. 서로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되면 좋겠다.
"누구야! 잘 지내? 어! 그냥 생각나서 연락해 봤어. 잘 지내지?"
어쩌면.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의 입맞춤. 사랑의 문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feat. 위로송(당신이 힘들다는 걸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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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5:1-7
예나 지금이나. 교회 공동체 안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때론. 남녀 간의 문제이기도 했고.
그것이. 때론. 주인과 종(오늘날로 따지면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문제일까?)의 문제이기도 했고.
그것이. 때론. 세대 간의 갈등/문제/충돌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도들은. 편지를 보낼 때마다.
원론적인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실제적인 이야기를 덧붙였다.
오늘 편지도 그러하다.
사도는. 소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특별히. 어른들/장로들에게 권하는 말과.
청년들/젊은이들에게 쓰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근데. 이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분 <마음대로> 살지 마십시오!!!"
실제로. 장로들의 얘기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그들은. 청년들의 자유 방함과 개성을 바라보면서.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어! 요즘 것들은. 싸가지가 없어!"라는 말을 일삼았다.
하지만. 버릇이 없다. 싸가지가 없다는 말 이면에.
그 마음의 중심에 있는 생각이 무엇인가?
그것은. 청년들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은. 우리의 욕심이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고.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고.
"내 마음대로" 요렇게 조롷게 조종하고 싶은데.
그렇게 안 되니까.
결국에. "싸가지가 없어. 버릇이 없어!"라는 말로.
인성을 폄하며. 공격적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젊은이/청년들의 마음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말만 하고. 행동으로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을 보면서.
입툭튀! 마음의 불만 한 가득이다.
"아니! 어른이면 다야? 왜 자기들은 말만 하고 행동을 하지 않는 거야?
말만 많고. 책임지지는 않고.
늘 자기들 얘기만 들으라고 하고. 우리 얘기는 듣지 않고.
아유. 꼰대들. 내가 저 꼰대들하고 이야기 하나 봐라…"
하지만. 이 마음 이면에도. 무슨 마음이 있는 걸까?
결국에.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위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니까. 그래서 화딱지가 나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하니까.
그래서. 들이 받고. 입툭튀. 입이 툭 튀어나오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게 되더라도.
이게 하나도 즐겁지 않다.
오히려. 일을 마치고 난 다음에.
"내가 다시는 이 일을 하나 봐라!"라고 하면서.
궁시렁 궁시렁. 짜증만 부리며. 오늘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도 베드로는.
오늘 우리에게. <마음 대로> 살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 생각엔. <마음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 먹은 대로> 살아야 하는 것 같다.
실제로. 우리 마음이란. 늘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 위주로. 자기 편한대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게. <마음 대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다.
하지만. <마음 먹은 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래에서.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음 먹은 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음 먹은 대로. 일이 술술 풀리지는 않는다.
때로는. 배가 뒤로 밀려나기도 하고. 때로는 배가 뒤집히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왜 이런 수고를 하고 있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이게 과연 가능할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
우리의 죄된 생각. 우리의 본성을 따라. 우리의 본능을 따라 살아갈 것이 아니라.
주님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을 따라서.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을 먹고.
마음 먹은 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쓰고 용을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 말씀. 한구절 한구절마다.
<단단히 마음을 먹으십시오>라는 말을 덧붙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러분.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는 게 쉽지 않겠지만.
여러분 단단히 마음을 먹으십시오.
억지로 할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하여 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여 할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십시오.
이게 절대로. 마음 대로 되진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마음 먹은 대로 움직이십시오.
마음 먹은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마음이 움직일 것입니다.
그래야. 마음이 놓일 것입니다."
"청년 여러분. 여러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른들에게. 복종하기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하지만. 서로서로 겸손의 옷을 입기 위해. 단단히 마음 먹으십시오.
자기를 낮추는 것이 정말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이게 맞다는 것을 알지만. 그게 참 쉽지 않지요?
그래서.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그래야 오늘을 살 수 있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그래야 오늘을 주님 은혜 가운데.
넉넉히. 감사함으로. 또 그나마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말하는 대로> 살지 않고.
<내 마음 흘러가는 대로> 그런 오늘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따라.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면 좋겠고.
당신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고.
당신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그런 하루 되면 좋겠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그런 은혜 주시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어떤 말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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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4:12-19
이른 아침. 잠에서 깼다.
그리고 말씀을 연다.
베드로전서. 사도 베드로의 이야기.
그는. 성도로서.
우리가 이땅을 살아가는 동안 겪는 고난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더라도.
이상히 여기지 말고. 놀라지 말라"고 말한다.
도리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한다.
때가 되면. 그분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나타날 것이며.
우리는. 그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이라고 말이다.
근데. 이 말씀이 나에게. 무미건조하게 다가온다.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 며칠 동안. 계속 그랬다.
아는 얘기를 계속 반복하는. 베드로 사도의 이야기가. 재미없게 느껴졌고.
베드로 사도가 살아가던 삶의 이야기와.
오늘 우리 삶의 현장이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조금은 심심하고. 조금은 고리타분한 이야기처럼 생각되었다.
물론. 말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제는.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며.
"아~ 내가 많이 지쳐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한달동안. 너무 달려서. 몸과 마음이 많이 소진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말씀을 보고. 그 속에 푹~ 젖어들 여유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계적으로/습관적으로 말씀을 보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것이. 어제의 수확이라면 수확이지 싶다.
근데. 오늘은 말씀을 보다가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내 삶이 재미없고. 시시한 것은.
어쩌면. 그리스도로 인한. 내 삶의 소망과 꿈이 시들어진 것은 아닐까?
그렇게 말씀을 보는데. "그리스도의 고난"이라는 말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실제로. 사도는. "고난"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면서.
고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이 있고.
또 따른 하나는. 그것과 상관없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허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욕을 당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당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받으면.
그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 안에 부끄러움이 없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그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지고. 그는 수렁에서 헤매게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내 삶에.
감사와 기쁨이 메말라 가는 것은.
어찌보면. 몸과 마음이 많이 소진된 것도. 그것도 한 이유겠지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욕을 받으며"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받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삶을 하나님께 맞춰가는 것"이. 부재하고. 메말라서.
그래서 오늘 내 삶이 답답하고. 건조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아침.
하나님 앞에. 잠잠히 내 삶을 돌이키며. 반추해 본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내 삶에 주어진 과제와 고민은. 하나님 나라 복음/그리스도로 인한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와 상관 없이.
내 관심사와 내 목적과. 내 삶의 고민만 덩그러니 남겨져서.
나 혼자 거기. 파 묻혀 있는 것인가?
바라기는. 오늘부터 3일 동안 진행되는. 바울 수련회를 통해서.
주께서 오늘 내 영혼에 말씀하시고.
주께서 말씀으로 내 영혼을 도전하시고. 먹이시는 일들이 있길 기도한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삶의 의미도 없이. 목적도 없이. 향방 없이 살아가는. 그런 열심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삶을 채우시는. 그런 은혜와 소망이 있길 기도하며.
오직 주의 말씀 앞에. 내 영혼이 깊이 거하며.
당신의 말씀으로. 나를 위로하고. 세우시는. 그런 은혜가 있길 기도한다.
그렇기에.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가며. 이 찬양의 고백을 드린다.
"주님 손에. 맡겨드리리. 나의 삶. 주님께.
주님 손이. 나의 삶 붙드네. 나 주의 것. 영원히.
내가 믿는 분. 예수. 내가 속한 분. 예수.
삶의 이유 되시네. 내 노래 되시네. 전심으로."
오늘 하루. 주님이 내 삶의 노래가 되시며.
주님이 내 삶의 이유가 되시며.
주님이 나의 전부가 되길 소원하며.
오늘 나의 삶을. 온전히 주님께 의탁한다.
(feat. 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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