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열왕기상'에 해당되는 글 55건

  1. 2021.11.13 :: 2021.11.13(토) 왕상 22:41-53
  2. 2021.11.12 :: 2021.11.12(금) 왕상 22:29-40
  3. 2021.11.11 :: 2021.11.11(목) 왕상 22:18-28

왕상 22:41-53

여호사밧은. '돌아볼 줄 아는 왕'이었다.
비록 그가. 산당을 헐지 않고. 완전한 개혁을 이루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그는.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최소한 하나님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뜻을 듣는 사람이었다.

오늘 본문. 48절-49절이 대표적인 사건이다.

그는. 오빌에서. 금을 가져오기 위해. 배를 만들었으나.
그 배는. 출항도 하기 전에. 파선하게 되었다.

오늘 본문은 그 이유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지만.
역대하 20장을 보면.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다.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였다.
두 왕이 서로 연합하고. 배를 만들어.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었더니.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향해. 이렇게 말하였다.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므로.  여호와께서 왕이 지은 것들을 파하시리라"
이에. 그 배들이 부서져서. 다시스로 가지 못하였다(대하 20:35-37)"


하지만. 아하시야는. 끝까지 말귀를 못 알아 듣는다.
"여호사밧 왕이여. 나의 신하들이.
임금님의 신하들과 같은 배를 타고 가게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포기할 수 없지요. 금을 가지러 갑시다(왕상 22:49)"

이에 여호사밧은. 아하시야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순복하고. 돌이키게 된 것이다.


이처럼. 여호사밧은. 완전한 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님 앞에서. 최소한.
그의 음성을 듣고. 돌이킬 줄은 아는 사람이었다.

아합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외면하다 죽음을 당하였지만.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앞에. 돌이킬 줄 아는 왕이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와 우리 공동체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 앞에 돌이킬 줄 아는 백성되길 소원한다.

우리 인생이 잘 풀릴 때도. 그 가운데 주님의 뜻이 있으며.
우리 인생이 막히고. 꼬일 때도. 그 가운데 주님의 뜻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가운데 기록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인데.
오늘 우리는. 그 주님의 음성 앞에.
얼마나 '들을 귀'를 가지고 있으며.
영적인 분별력과 깨어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바라기는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그 주님의 음성 앞에. 민감히 반응하는 하루가 되길 소원한다.

주께서 가라고 말씀하시면. 용감히. 담대히 나아갈 줄 알며.
주께서 멈추라고 말씀하시면. 겸손히. 또 정직히 멈출 줄 아는.
그런 주의 백성되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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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22:29-40

미가야의 예언을 듣고. 아합은 불안해졌다.
미가야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래서. 꼼수를 부린다.
"전쟁이 시작되면. 왕을 노리겠지? 그럼 변장을 하면 되겠다.
아무도 몰래 조용히 숨어 있는거야. 그러면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렇게 갑옷을 입고. 치장을 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전쟁터로 나아갔다.

그때. 저 멀리서 화살이 날아온다.
그리고 아합의 가슴팍을 파고든다.
성경은 이 모습을 이렇게 설명한다.

"군인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겼는데.
그것이. 이스라엘 왕에게 명중하였다.
아합은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하필이면. 그 화살이. 갑옷 가슴막이 이슴새 사이를 뚫고 들어갔다(34절)"


아합 입장에선.
"재수가 없었구나"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운이 없는 게 아니었다.

아합은. 어떻게든. 꼼수를 부리면.
하나님의 심판을 모면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였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뛰어봤자 벼룩이고. 눈 가리고 아웅이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대면하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켜야 했지만.
아합은 마지막 기회를 져버리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오늘 우리 인생도 그러하다.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얼굴을 피할 수 있으며.
우리가 어찌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숨길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은. 드러나고. 모든 것은 밝혀질 텐데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은혜가 필요한 것 같다.
우리의 허물과 연약함은 정직히 고백하며.
주께서 우리 인생을 돌보시고. 불쌍히 여겨 주시길 소원한다.

또 막막한 인생 길 가운데. 피할 길을 내시며.
예기치 못한 순간에. 은혜를 주시며.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 가운데.
당신의 계획과 섭리를 보이시는. 주님을 기다린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모두에게.
당신의 자비와. 당신의 계획을 열어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당신께 의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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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22:18-28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은 것과 다름 없다.

아합 시대. 선지자들이 그랬다.

그들은. 직분 상으로는 예언자였지만.
사실은 아합의 따까리와 다름 없었다.
정권에 빌붙어서.
자기 목숨이나 유지하고. 밥벌이나 하고 있으니.
이 어찌 선지자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아합 시대 많은 선지자들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사데 교회와 같았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것과 다름 없었기(계 3:1)" 때문이다.


하지만. 미가야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모든 사람이 "Yes"라고 말할 때. 당당히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의 질서에 따르느니.
차라리. 진리의 편에 서서.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다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만을 말하겠습니다.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지. 어찌 아닌 것을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그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옥에 갇히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뺨을 맞고. 조롱과 멸시를 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도리어. 끝까지 진리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수호하고. 또 그 말씀을 전한다.


말씀을 읽으며. 미가야의 이런 모습이 참 대단해 보였다.
"어찌 이렇게 담대할 수 있을까.
어찌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담대할 수 있을까?"

성경은. 이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 잡혔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 당시 많은 선지자들은. 거짓의 영에 사로잡혀서.
거짓의 영에 미혹되어서.
진리를 외면하고. 진리를 포기하였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 잡혔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도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이것은 엘리야도 마찬가지였다.
아합이.
"네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냐?"라고 말할 때.
엘리야가.
"내가 아니라. 당신(아합) 때문에. 이스라엘이 요 모양 요 꼴이 된 거 아니냐"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까닭이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영에 매인 바 되어서.
하나님께 붙들린 바 되었끼 때문에.
그는 주눅들지 않고. 세상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공동체 되길 소원한다.

오늘 나는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
오늘 나는. 무엇을 의지 하는가.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으로. 세상을 이기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소망과 인내를 잃지 않는.
나와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한다.

두려움이. 두려움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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