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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11 :: 2021.11.11(목) 왕상 22:18-28
왕상 22:18-28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은 것과 다름 없다.
아합 시대. 선지자들이 그랬다.
그들은. 직분 상으로는 예언자였지만.
사실은 아합의 따까리와 다름 없었다.
정권에 빌붙어서.
자기 목숨이나 유지하고. 밥벌이나 하고 있으니.
이 어찌 선지자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아합 시대 많은 선지자들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사데 교회와 같았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것과 다름 없었기(계 3:1)" 때문이다.
하지만. 미가야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모든 사람이 "Yes"라고 말할 때. 당당히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의 질서에 따르느니.
차라리. 진리의 편에 서서.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다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만을 말하겠습니다.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지. 어찌 아닌 것을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그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옥에 갇히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뺨을 맞고. 조롱과 멸시를 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도리어. 끝까지 진리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수호하고. 또 그 말씀을 전한다.
말씀을 읽으며. 미가야의 이런 모습이 참 대단해 보였다.
"어찌 이렇게 담대할 수 있을까.
어찌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담대할 수 있을까?"
성경은. 이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 잡혔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 당시 많은 선지자들은. 거짓의 영에 사로잡혀서.
거짓의 영에 미혹되어서.
진리를 외면하고. 진리를 포기하였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 잡혔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도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이것은 엘리야도 마찬가지였다.
아합이.
"네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냐?"라고 말할 때.
엘리야가.
"내가 아니라. 당신(아합) 때문에. 이스라엘이 요 모양 요 꼴이 된 거 아니냐"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까닭이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영에 매인 바 되어서.
하나님께 붙들린 바 되었끼 때문에.
그는 주눅들지 않고. 세상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공동체 되길 소원한다.
오늘 나는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
오늘 나는. 무엇을 의지 하는가.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으로. 세상을 이기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소망과 인내를 잃지 않는.
나와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한다.
두려움이. 두려움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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