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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 13:23-31
느헤미야의 결론부다.
해피 엔딩으로. 끝을 맺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새드 엔딩이다.
느헤미야의 개혁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모양새'였고.
이스라엘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허무할 수가...
오늘 본문도 그러하다.
성벽을 완성하고 난 다음. 그들은 하나님 앞에 울며 기도하지 않았던가.
우리의 완악함에 불구하고. 우리 주님이 오래참고. 그들을 기다리셨기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 눈물로 사죄하며. 결단하지 않았던가.
그 서약 가운데 하나엔. 이런 내용도 있었다.
"우리 딸을. 이 땅의 백성과 결혼시키지 않겠습니다.
우리 아들을. 그들의 딸과 결혼시키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약속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유다 사람들은. 아스돗/암몬/모압의 여자들을 데려와 아내로 삼았고.
이 일에. 엘리아십 제사장 가문이. 앞장서고 있었다.
28절 말씀이. 이 사실을 기록한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다."
뭐 이런 경우가. 있단 말인가.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말씀을 앞장 서서 수호해도 모자랄 판에.
어제는. 암몬 사람 도비야에게. 성전의 방을 내어주고.
오늘은. 호론 사람 산발랏에게. 자식/손자를 내어주다니.
정말 개판이다.
이스라엘을 그렇게 조롱하고 비난하던. 산발랏과 도비야에게.
그렇게까지. 굽신거리며. 살아야 했단 말인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그야말로. 암덩어리다.
그렇기에. 느헤미야는 꼭지가 돌았다.
사람들을 나무라고. 야단을 치고. 때리고. 머리털을 잡고 싸웠다.
산발랏의 사위를 내쫓고. 다시는 느헤미야 앞에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느헤미야의 삶은. 투쟁의 역사/기록이었다.
어찌보면. 느헤미야 혼자. '야단법석' 떠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사생결단'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오늘을 살아갔다.
그렇기에.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하나님. 나를 기억하여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십시오(느 13:31)"
이 말은. 이전에도 기록되어 있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분하여 지킬 때도'
'자신의 직분을 버리고. 생업 전선에 뛰어든. 제사장과 레위인을 복귀시킬 때도'
'도비야를 내쫓고. 성전을 다시 거룩하게 할 때도'
그때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였다.
"나의 하나님. 내가 한 이 일도 기억하여 주십시오.(느 13:14, 22)"
이것이 느헤미야의 삶의 고백이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살기 원했고.
오직 하나님 앞에. 기억되기를 원했다.
"나를 바라보고. 나를 주목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니.
그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정결하게 살기 원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안정된 직장/앞날이 보장된 길을 버리고.
고국 이스라엘로 올 수 있었다.
하나님의 뜻/부르심을 따라 살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신의 수고가 허사로 돌아가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의 부르심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와 우리 공동체의 삶과 사역도 그러하기 원한다.
우리가 누구의 인정을 받기 원하는가?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결과를 남기기 원하는가?
바라기는. 우리가. 세상 모든 것을 잃는다 하여도. 우리 주님만은 잃지 않길 원한다.
그렇기에. 느헤미야의 기도를 따라. 우리도 이와 같이 고백한다.
"주님.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주님. 내가 한 일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정성껏. 마음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예배한 일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당신의 한없는 은혜로. 당신의 한없이 크신 사랑으로.
나를 너그러이 보아주십시오.
그 은혜로.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십시오."
주님이 우리 모두를. 느헤미야로 부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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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 13:15-22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스라엘은 총체적인 문제/어려움을 겪었나 보다.
그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안식일'에 관한 이야기다.
실제로 '안식일'은 유대교 신앙의 핵심이었다.
'공간'적인 측면에서. '성전'이 그들의 중심에 있었다면.
'시간'적인 측면에서는. '안식일'이 있었다.
안식일을 중심으로. 삶의 리듬이 만들어 지고.
안식일을 중심으로. 인생의 회복/선순환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들의 구원자 하나님을 예배하였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우리를 지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이스라엘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경제적인 논리에. 안식일의 본 의미가. 훼손당하였다.
'안식일에도' 사람들이 술틀을 밟고. 짐승들이 곡식을 실어 나른다.
먹고 사는 문제가. 이스라엘의 중심이 된 것이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그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신앙/종교'의 영역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 인것을 고백하지만.
'일상'의 영역에서는. 그 하나님이 아무런 소용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안식일에도. 예루살렘 성 안에서.
'사고 파는 일'에 전념하였다.
저 멀리. 두로 사람도 안식일에. 예루살렘 성에서 장사를 하였다.
장사치들이 돈에 얼마나 눈이 밝은가! 절대 손해보지 않는다.
그들이 예루살렘 성을. 안식일에 찾은 까닭은. 한마디로 돈이 되었기 때문이다.
훗날. 느헤미야가. 안식일에 성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못들어오게 하였으나.
장사치들은. 예루살렘 성밖에서 잠을 이뤘다.
왜 그랬을까? 이것도 일시적인 현상이라 보았던 것이다.
그만큼. 이스라엘 안에. 경제적인 논리. 상업적인 생각.
맘모니즘이. 그들이 영혼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렇기에. 느헤미야는. 화를 내며. 사람들을 꾸짖는다.
"어쩌자고. 이런 나쁜 일을 저지르는 거요!!!"
그리고. 앞서 얘기한 것처럼. 성문을 걸어 잠근다.
안식일의 정신을 기억하고. 지키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말씀을 보면서. 나/우리의 삶도. 함께 돌아본다.
"우리가 안식일을 기억하고. 지키지 못하는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걱정/근심/불안/염려/두려움’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우리가 안식일에. 계속 일을 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두려움'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돌보시고. 지키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는 불안함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게 한다.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머무르지 못하는 이유 또한 무엇인가?
'두려움' 때문이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과제와 해야 할 일들 앞에서.
우리는 걱정하고, 불안해 한다.
'빨리' 그 일을 해치워야 할 것 같은. 불안함에.
우리의 생각/마음/신경은. 온통 그곳에 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우선. '급한 일을 마치고. 하나님을 찾아야지' 하는 마음을 갖는다.
하지만. 화장실 갈 때와 올 때의 마음이 다른 것처럼.
급한 일을 마치고 나면. 쉬고 싶은/보상 받고 싶은. 우리의 욕심이 올라온다.
그러다보면. 하나둘 타협하게 되고. 결국 무너지기 마련이다.
쉬지 못하고.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두려움' 때문이다.
내가 없으면 이 일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에.
지금 당장 이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두려움에.
내가 자리를 비우면 무슨 일이 일어 날 것 같은 두려움에.
우리는 쉼 없이 살아간다.
일종의 '영웅주의/메시아 증후군'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일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루하루 아둥바둥 살다보면. 쉽게 지치고. 쉽게 burn out 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건강하게. 오래 가려거든.
우리의 모든 걱정/근심/불안/염려/두려움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식일은 그 믿음/신뢰의 표지이며.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우리를 지키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삶의 리듬을. 재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내 삶의 중심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가?'
'나는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가? 나는 쉼없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기억하자.
내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나를 지킨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하신다.
이 사실을 기억하지 않고. 망각한다면.
우리는. 세상의 물결에 휩싸이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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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 13:4-14
성벽 봉헌식 날. 이스라엘은 두가지 결의를 하였다.
먼저는. 제사장과 레위인을 위한. 몫을 따로 떼어 놓는 것이었다.
그들이. 생업에 신경쓰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직분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두번째는. 모세의 율법을 따라. 암몬 사람과 모압 자손을 멀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총회에 참석할 수 없는 사람들이니.
이스라엘이 그들과 결속/결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느헤미야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엘리아십 제사장은. 암몬 사람 도비야와 가까이 지내며.
그에게 성전 큰 방을 내어 주었다.
이 방은. 원래.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위해 준비된 곳이었는데.
그 목적과 기능을 상실하고.
자기 입맛/이권에 따라. 제 마음대로 오용/악용한 것이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은 것은. 엘리아십 제사장 뿐만은 아니었다.
백성들도 매 한가지였다.
그들은. 제사장과 레위인과 맺은 약속을 잊어버리고. 자기 생업에 몰두하였다.
그러다보니. 제사장과 레위인들도. 자신이 받아야 할 몫을 받지 못했고.
그들은 결국.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다.
먹고 살아야 하니.별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푸르른 꿈이. 한순간에 날아가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일이. 느헤미야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벌어진 일이다.
그 시간/기간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겠으나.
어쨋든. 느헤미야는. 자신의 두 눈으로. 이 일을 직접 목격해야 했다.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느헤미야의 마음을 대변하자면.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그간. 총독으로 지내며. 내가 얼마나 수고 많았는데.
너희가 내게 이럴 수 있느냐?
바벨론 술관원이라는 자리를 버리고. 이곳 이스라엘로 왔으며.
성벽을 쌓기 위해. 내가 직접. 두손 두발 다 걷고 일했으며.
총독으로서 받아야 할 몫과 봉급을 받지 않았으며.
내가. 오롯이. 너희만 바라보며. 너희를 위해. 내 삶의 전부를 드렸는데.
너희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
사람을 배신하는 것도 유분수지. 너희가 어찌 나에게 이럴 수 있는냐?"
그렇게 느헤미야는. 사자후를 토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였다.
이스라엘의 무너진 현실을 보며. 피가 거꾸로 치솟은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무너진 현실을. 다시. 바로잡는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눈물과 탄식으로. 또 거룩한 분노와 애타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있는 것이다.
느헤미야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의 마음에 감정이 이입된다.
전북지방회에서 지낸. 4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우리 공동체가. 이와 같지 않기를 기도한다.
우리의 숱한 다짐과 약속이. 한낱 물거품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기도한다.
우리의 소망과 바람이. 일장춘몽에 그치지 않고.
정말 주님 안에서. 그 약속이 이뤄지고 실현되기를 기도한다.
그러기 위해선. 한번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한번의 약속과 다짐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서 갱신하고. 또 갱신하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자비/은총을 구하며.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간구하여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허투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기는. 나의 사랑하는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는. 영적 갱신을 이뤄가는 공동체 되기를 소망한다.
더불어. 느헤미야와 같은 마음으로.
눈물과 탄식으로. 하나님 앞에 마주하는 사람이 가득하길 기도한다.
무너진 이땅의 현실을 보고. 좌절하고.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분노와 갈망으로. 하나님 나라를 향해. 정진하기를 멈추지 않기를 기도한다.
나의 삶이 그러하기를.
우리 공동체의 삶이 그러하기를.
한국 교회가 그러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주께 의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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