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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1:15-25
어제 우리는.
자신의 지난 과오 때문에.
주님 보기를 민망해 하는. 베드로를 살펴보았다.
베드로는.
어떻게든 주님을 피하고 싶고.
어떻게든 주님을 외면하고 싶은데.
자신을 골똘히 쳐다보는. 주님 때문에.
그야말로.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 지 모르겠고.
이러다가 정말 체할 것만 같았다.
그만큼. 베드로와 주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고.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긴장감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근데. 바로 그 때. 주님이 말을 붙이신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단도직입적으로.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베드로는 말을 떼기가 쉽지가 않다.
"아… 주님… 뭐 그런 걸 물어보고 그러세요.
제 입으로 말하기 참 그런데요… 당연히 사랑…
아. 말 못 하겠어요…
아시잖아요. 아시면서 뭘 물어보세요…(15절)"
그러자. 주님이 베드로에게. 다시 물어 보신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의 계속된 질문에. 베드로는 대답하기가 참 민망하다.
허공을 한참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떨군 채.
나뭇가지로 바닥을 글적일 뿐이다.
그러다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아… 왜 계속 물어보세요… 방금 대답했잖아요.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당신도 아시면서.
왜 자꾸 물어보세요. 참 민망해요…(16절)"
그리고 주님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세번째 질문을 하신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
3번이나 거듭 반복해서 물으시는. 주님의 말씀 때문에.
베드로는. 마음이 엄청 불안하고. 복잡하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고. 가슴이 콩닥콩닥 죄어오는 것만 같다.
말 한마디 떼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지.
순간이. 천년처럼 느껴진다.
베드로는. 그렇게 한참동안 멍하니 있다가.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주님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주님. 주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참 민망하고. 뻔뻔하고.
너~무 죄송하지만…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알고 계십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 참 민망하지만. 그게 진심입니다(17절)"
한참 동안 떨며 말하는. 베드로의 모습 속에서.
그의 진중함이 묻어난다.
자신의 대답이. 얼마나 무겁고. 책임있는 말인지 알기 때문에.
베드로로서는. 말 한마디 떼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근데. 말씀을 묵상하며 느끼는 것이.
이게 우리 신앙의 여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우리가 주님을 처음 만나고.
젊은 혈기/열정으로 가득할만 하더라도.
우리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고. 아무 것도 염려되지 않았다.
그저 주님과 함께라면.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주님이 '사단의 목이라도 따오라'고 하신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자신만만 하고. 기세등등한 게.
우리 지난 날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조심스럽고.
행동 하나 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나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작고 연약한 사람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절실히 알게 되고.
우리가 뱉는 말과 행동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그래서.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정말 이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신중해 지고.
"내가 정말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계속해서 자기를 검열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믿음을 잃어버리고.
바보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기도 한다.
젊은 날의 믿음이. 좋은 믿음이고.
지금의 믿음은. 안 좋은 믿음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어느 쪽이 훌륭한 믿음이고. 어느 쪽이 부족한 믿음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진솔한 신앙 고백이라는 것이다.
실로. 그렇다.
베드로가. 자신 만만하게/기세 등등하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할 때만 하더라도.
그는 정말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주님은 알고 계셨다.
베드로가 실패할 것을 알고 계셨고. 베드로가 넘어질 것을 알고 계셨다.
하지만. 주님은. 베드로를 향해. 뻰찌를 놓지 않으신다.
그저. 베드로의 마음을 받으시며. 그를 칭찬하실 뿐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렇다.
주님은. 쭈뼛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겨우 말을 떼는 베드로를 향해서.
왜 이렇게 목소리가 작냐고. 뻰찌를 놓지 않으신다.
그저. 베드로의 마음을 받으시며. 그를 칭찬하실 뿐이다.
주님은. 부족한 우리의 모습과 행동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진심을 받으시며.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기쁘게 받으시는 분이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과도하게. 오버 액션을 할 필요도 없고.
소심하게. 말한다고 해서. 쭈구리가 될 필요도 없다.
그저. 진심어린 우리의 마음을 담아.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고백한다면.
그 하나로 충분한 것이다.
오늘 하루. 주께서 나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어보실 때.
우리는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말투. 행동. 제스처. 성량. 속도.
이런 건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마음.
오늘 우리의 말과 행동에.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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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1:1-14
어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예수의 부활을 경험한 다음. 믿음과 평안을 찾을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와 사랑이.
그들 안에 있는 모든 불안과 두려움, 의심과 염려를 사라지게 한 것이다.
하지만. 온전한/완전한 변화는 아니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베드로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하고.
그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죄책감과 면목 없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아마도. 제자들 안에 여러 얘기가 있었을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앞에. 명백히 살아 계신데.
우리가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여러 사람이 회의를 나누는 중에.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근데. 나에겐. 이 말이 이렇게 들린다.
"나는. 고기나 잡으러 가야겠소.
내가 무슨 면목으로 주님을 따른단 말이오.
도무지 자신도 없고. 그분 얼굴을 보는 것도 민망해 죽겠소.
나는. 그냥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도망치고 싶은. 베드로의 마음은. 이후 장면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베드로를 비롯한. 여러 제자들은. 밤새 그물을 내렸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렇게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많이 잡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배 오른쪽에 그물을 던졌으며.
그들은.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다.
근데. 그때 베드로의 행동이 참 재미나다.
예전에는.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을 때.
베드로가 주님께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주님 앞에 엎드리며.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고백하지 않았는가!
근데. 지금은.
주님이시다는 말을 듣고. 황급히 바다로 뛰어든다.
어떤 이는. 베드로가 주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앞에서.
'나는 고기나 잡으러 가겠소'라는 말하였던. 베드로를 생각할 때.
아마도 그는. 어떻게든 예수님을 피해.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주님이시다"는 말을 듣고.
다급히 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주님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베드로는 아마도 그렇게 바다 어귀에 숨어.
주님이 떠나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베드로의 예상/기대와 달리. 주님이 자리를 뜨지 않으신다.
오히려. 숯불을 피워놓고. 고기를 구우며.
제자들과 식탁 교제를 나누고 계신다.
"이런 제길! 왜 안 가는거야!!"
결국. 베드로도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앉는다.
바로 그 때. 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얘들아.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너라."
이 말을 듣고. 또 재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도. 베드로다.
예수님을 마주하지 않고.
어떻게든 그 자리를 조금이라도 피해보고 싶은 마음에.
베드로가 재빨리 배에 올라간다.
"내가 갔다 올게. 내가 갔다 올게. 너희는 쉬어." 이러면서 말이다.
근데. 베드로가 도통 오질 않는다.
배에서 그물을 땅으로 끌어내리더니. 그 옆에 앉아서 고기나 세고 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그렇기에. 요한은.
그날 잡은 고기 갯수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베드로가. 한 번. 두 번. 여러번 고기를 세면서.
이게 토탈. 153마리라는 것을. 거듭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베드로는.
어떻게든. 주님의 낯을 피해. 도망치고 숨으려 한다.
"내가 무슨 낯짝으로 주님을 보러 간단 말인가..
내가 무슨 낯짝으로 주님을 따른단 말인가..
내가 도대체 무슨 면목으로 주님을 뵙고.
내가 도대체 무슨 면목으로 당신의 제자라 불릴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베드로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으로.
불편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근데. 그런 베드로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 우리도. 그와 같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넘어지고.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지으며.
주님을 믿고 따르기 보다. 의심하고 염려하며.
'주를 사랑합니다. 주를 따르기 원합니다'라고 숱하게 고백하면서도.
뒤돌아서면. 늘 주님을 잊고. 망각하기 바쁜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주님 앞에 나아가기. 얼마나 민망하고 부끄러울 때가 많은가…
그런 측면에서. 베드로의 모습이 참 이해가 된다.
나도. 그와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은. 열린 결말로. 묵상을 마치려 한다.
주님을 피하며. 민망해 하는. 베드로를 향해.
우리 주님은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모습 속에는.
어떤 마음이 있으실까?
베드로를 꾸짖지도 않으시고.
재촉하지도 않으시고.
몰아 붙이시지도 않으시고.
묵묵히 기다리며. 그를 지켜보시는 주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갖게 되는가?
오늘 하루. 그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주님 앞으로 나아가길 소원한다.
그래서일까? 이 아침. 이 찬양이 계속해서 생각난다.
"나 이제 돌아가"
바라기는. 오늘 하루. 우리가 주님께 돌아가며.
주님께로 마음을 돌이키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주님은. 우리를 지켜보시며. 기다리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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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0:19-31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있는. 제자들에게.
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샬롬. 평안하느냐?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바라노라!"
그러자 제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불안과 두려움은. 기쁨으로 변화 되었으며.
그들은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평안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이 일은. 의심 많은 제자. 도마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는. 예수의 부활을.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 하기까지는.
예수의 부활을. 절대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샬롬. 평안하냐?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는 주님의 말씀에.
도마는. 모든 의심을 한순간에 버리고. 주님 앞에.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주님의 은혜와 임재가. 도마의 마음에 믿음과 평화를 가져다 준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주님이 함께 하는 곳마다.
모든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주님의 은혜와 평화로 충만케 된다.
우리의 모든 의심 구름은. 찬란한 햇살 아래. 한순간에 걷히게 되고.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와 기쁨만 넘치게 되는 것이다.
오늘 한 날을 시작하며.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길 소원한다.
사실. 이 세상을 살아가며. 천국과 지옥이 따로 있겠는가.
주님이 함께 하시며.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머물며.
주님의 임재와 사랑이 가득한 곳이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며.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없으며.
주님의 자비와 사랑이 없으며.
주님의 임재와 주님의 손길이 없다면.
그곳은 지옥과 다를 바 없다.
그렇기에. 오늘을 살아가며. 주님 앞에 이렇게 기도한다.
"참 좋으신 주님. 이 시간. 우리의 마음에 임하여 주시옵소서.
불안과 두려움으로 사로잡힌 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복과 평안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 시간. 우리의 삶에 임하여 주시옵소서.
다툼과 시비로 얼룩진 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평화와 참된 자비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안에. 참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여 주시며.
우리 안에. 참된 평화와 기쁨이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함께 하는 곳마다. 모든 어두움 드러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게 되리니.
주님. 이시간 우리 가운데 임하시며.
우리의 삶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이시간 주님을 초대하오니.
주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참 평화를 내려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를 주께 의탁드리며.
사랑 많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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