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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4.01 :: 2025.04.02(수) 눅 18:15-30

눅 18:15-30

오늘 본문을 보면. 두 사람이 대조적으로 등장한다.
한 사람은 예수님을 <찾아오는> 어린 아이이며.
한 사람은 예수님을 <떠나가는> 부자 청년이다.
성경 기자는. 왜 이 두 사람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그리고 있을까?

그것은 오늘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
"계산하는 삶"이 아니라. "순종하는 삶"임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을 보면.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예수님께 묻고자 하는 청년이 찾아오는데.
이 사람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라"

이 말을 듣고. 부자 청년은. "근심하며 주를 떠나갔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그에게 많은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이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면.
오늘 나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주님은 나에게. 네게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하였는데.
만약.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나눠준다면 어떻게 될까?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네가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고 하였는데.
하나님 나라에 숨겨둔 보화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것은 투자 대비 얼마의 수익이 있는 걸까?
과연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주님을 떠나가는 것이 좋을까?"

그러다 보니. 주객이 전도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처음 찾아왔을 때는.
"어떻게 하면 내가 영생을 얻을 수 있을지" 그 질문을 가지고 찾아왔는데.
지금은 이 사람의 모습이.
"어떻게 하면 내 손에 가진 것을 하나도 놓지 않고. 다 잡을 수 있을지"
계산하고 셈하는 데.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이 이 모습을 보시며.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씀해 주시는데.
이것이 부자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하지만 어린 아이는 그렇지 않다.
그는 그냥 예수님을 보기 위해. 그를 따른다.
예수님이 그냥 자기를 만져주시길 바랄 따름이다.

계산하고 셈을 하지도 않는다.
그냥 좋으면 주는 거고. 싫으면 주지 않는 거지.
내가 이걸 가지고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통밥을 굴리고. 머리를 굴리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였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였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그들을 향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17절)"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이 하나님 나라 가운데 주어져 있는.
영적인 복과. 생명의 길이었다.

계산하고 셈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끊임없이 의심하고. 하나님 앞에 염려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기에 합당하지 아니하며.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순전한 마음으로 주를 따르는 자들에게.
주께서 그들을 기뻐 받으시며.
하나님 나라의 크신 은혜를. 그들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다.


근데… 그렇게 말씀을 보다 보니.
부자 청년의 첫번째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 은혜로. 그분의 선물로 들어가는 곳이지.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하고. 내가 하나님께 어떤 보답을 해야"
그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의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냐고?
그렇다면 니가 이렇게 해보아라.
니가 전 재산을 버리고 나를 따를 수 있겠느냐.
니가 전 재산을 버리고.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겠느냐?"

이것은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어떤 일을 이루고. 공로를 쌓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선물로 구원을 얻는 것임을.
우리 주님이 가르쳐 주고 계신다.

그래서 오늘 본문 26절을 보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얘기를 듣고.
제자들이.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며 따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에 대해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이것은 오늘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힐 때.
그때 우리 손에 가진 것을 놓을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오직 주님의 은혜와. 주님의 공로로. 구원을 받으며. 그분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우리 주님이 역으로. 역설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안아주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품에 달려가. 그분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어떠함과. 오늘 우리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신실하심과. 그분의 선하심을 의지하여.
주님께 나아가며. 주님께 머무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예배/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영생을 얻기 위해"
우리가 애쓰고. 우리가 수고하는 모든 것을 다 내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 앞에.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하셨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 그대로 수용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뼛속까지 심겨져 있는. 세상의 논리와. 셈의 법칙이 사라지고.
오직 은혜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며.
주께서 우리 가운데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있는 모습 그대로 누리며. 있는 모습 그대로 나누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은혜로만 들어가네. 은혜로만 선다네.
우리의 노력이 아닌. 어린 양의 보혈로.
그분의 임재 가운데. 오라 하시네.
우리를 부르신 그곳. 은혜로 들어가네. 주님의 그 은혜.

범죄한 우리가 어찌 서리요.
어린 양의 보혈이 깨끗게 하시네.
범죄한 우리가 어찌 서리요.
어린 양의 보혈이 깨끗게 하시네.

은혜로만 들어가네. 은혜로만 선다네.
우리의 노력이 아닌. 어린 양의 보혈로.
그분의 임재 가운데. 오라 하시네.
우리를 부르신 그곳. 은혜로 들어가네.
주님의 그 은혜. 주님의 그 은혜"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은혜 앞에 나아가며. 하나님의 은혜 앞에 머무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님께 의탁하여 드리길 원한다.

(feat. 은혜로만 들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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